과거의 나는 소위 말하는 ‘자연’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가시간도 대개의 경우 대도시의 복작거리는 곳에서 노는 것만 좋아하고 산, 들, 바다 같은 것은 질색하는,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야경이나 빌딩숲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그런 사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에 점점 더 관심이 간다. 요즘 들어서는 산책 하다가 문득 가만히 서서 주변의 동식물을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징그럽다며 외면하던 곤충들도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곤 한다. 거미나 개미나 공벌레나 기타 자잘한 벌레들.
아마 인간도 지구를 구성하는 생명체의 일부이며 동물의 한 종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런 듯하다. 인간의 기이한 행동이나 어찌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한 해답을 자연을 통해서 구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큰 차원에서 보면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꿈틀거리는 과정일 테니까.
어떤 특정한 목적 없이, 의미 없이, 그저 태어났으므로 살아가고, 살아있으므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삶. 어쩌면 생명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죽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며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세상사의 허무함을 받아들이고 잊어보려는 노력일 수도.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런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사이는 자연과학 책들이 재미있다. 자연에서 산책하며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을 써낸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 침팬지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점을 짚은 로저 파우츠의 <침팬지와의 대화>, 모두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같은 선상에서 이원영의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도 흥미롭고 즐겁게 읽은 책이었다.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는 제목 그대로 동물행동학자인 저자가 여름철 북극에 가서 동물들을 연구하며 썼던 그날그날의 일기를 묶어 편집한 자연과학 에세이다. 북극에도 여름이 있어? 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사계절을 겪는 유일무이한 국가라는 세뇌를 받고 자라나 사실 지구 상의 모든 땅이 사계절의 변화를 겪는다. 지역에 따라 그 기간의 길고 짧음과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론 여름이라고 하더라도 북극의 여름은 우리가 아는 여름과는 썩 다르다. 기온이 10도 전후로 절대 덥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러나 평상시 영하 몇십 도에 달하는 북극의 날씨를 생각하면 여름은 여름인 것이다. 북극에서는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봄-여름-가을의 세 계절이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북극에 사는 생명체들은 이 짧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고, 겨울철을 날 채비를 한다.
동물행동학자이며 그중에서도 조류를 전공한 저자는 북극에 사는 새들을 연구하기 위해 이 시기에 맞추어 북극을 찾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동식물을 관찰한 내용이 재미있을까 하고 긴가민가한 이들도 있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아주 재미있다. 새들도 종에 따라 성격이 매우 다르며 우리가 기존에 ‘새대가리’라고 폄하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주 똑똑하다는 사실, 북극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구일지뿐 아니라 한국에서부터 싸간 홍어를 먹었더니 텐트 안이 불쾌한 냄새로 가득 차서 북유럽에서 온 동료가 아주 어두운 얼굴을 했다든지, 한 번은 북극늑대들이 찾아와 저자와 동료들이 만들어둔 화장실을 모두 파헤쳐 흩어진 배설물들을 다시 묻느라 무척 고생을 했다든지 등의 자잘한 에피소드도 무척 재미있고, 중간중간 저자가 연구활동을 위해 찍은 북극의 아름다운 동식물 사진이 곁들여 있어 ‘보는’ 재미 역시 만족시켜준다.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무척 웃었던 대목이 있는데, 저자가 산책하다 동물의 분변(똥)을 발견하고 취하는 행동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질색을 하며 피했을 똥을 보고 저자는 무척 기뻐하며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조심스레 채집하여(!), 소중하게 보관까지 한다. 박사 이상의 연구자들은 무언가의 덕후임에 틀림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똥을 보고 기뻐하며 소중히 보관하는 행동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이지 찐 진성 덕후의 모습이 아닐는지.
그밖에도 북극에 사는 온갖 생명체의 이야기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자연은 정말이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고 변화가 무쌍하다는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절대적인 사실이나 진실을 이야기할 때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근거로 들고는 한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의 결합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자연에 있는 수천수만 가지 종을 살피다 보면 제각기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펭귄들이 동성애를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북극이라는 척박한 곳에 사는 몇 안 되는 생물들 역시 그 존재와 삶의 방식이 제각기 다르다.
일례로 세가락도요라는 새의 경우 일반적으로 암컷 한 마리와 수컷 한 마리의 일부일처제로 번식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연구진들이 그린란드에 있는 세가락도요를 6년간 관찰한 결과 48쌍 가운데 6쌍에서 혼외수정이 있었고, 심지어는 번식 이후에 배우자 중 한 쪽이 달아나 남은 한 마리가 양육을 오롯이 책임진 경우도 있었다 한다.
또 어떤 새는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크고, 그러므로 짝짓기 시기에 암컷들이 수컷을 놓고 서로 다툰다고 한다. 그런 뒤 승리한 암컷이 수컷과 알을 여러 개 낳고 남은 알은 수컷이 품고 키운다고. 그러므로 사실상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자연의 섭리’ 또는 ‘신의 섭리’라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지하철에 붙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현수막 광고가 연달아 훼손당했다는 뉴스, 성소수자의 인권이나 동성애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자연의 섭리나 신의 섭리를 들먹인다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이것은 사실 어떤 ‘혐오’에 대한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한다.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모습은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으며 결국 ‘자연의 섭리’라는 것은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명제 외에는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 그나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하게 적응하는 종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다.
이 계절에 무척 어울리는, ‘서늘한 여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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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죽어야 누군가 산다. 이게 북극에서만 유효한 명제는 아닐 것이다. 하나의 개체 입장에서 죽음과 삶은 뚜렷한 경계로 나뉘어 있지만, 생태계의 물질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차이가 아니다. -p.137
수컷이 부르는 노래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노래를 자주 많이 부른다는 것은 먹이를 잘 찾는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다른 개체보다 먹이 찾는 효율이 높아서 그만큼 노래를 부를 일도 더 많다는 뜻이다. 흰멧새 연구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노래를 많이 하는 수컷들은 실제로 새끼들에게 먹이를 많이 주었고 결과적으로 새끼들을 더 잘 길렀다. 그래서 수컷의 노래를 그 자체로 육아를 얼마나 잘하는 수컷인지를 나타낸다. 암컷은 수컷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노래 부르는 실력이 꽤 좋은 걸! 먹이도 잘 잡고 새끼들도 잘 키우겠어!’ 하며,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p.2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