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어떤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댓글을 달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따로 기록으로 남긴다. 팬덤이 무척 많은 작가인데, 사실 나는 해당 작가의 글을 읽으며 ‘너무너무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희한한 점은 그래서 싫으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는 점.
읽으면서 글 자체에 아주 큰 감명을 받은 적은 별로 없으나 특이하게도 작가 자체에 대한 호감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글만 읽어도 느껴지는 경쾌하고 발랄하며 밝고 건강한 에너지. 글을 쓰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기 쉬운 자의식이 없다시피 하고, 예리하되 예민하지 않고, 시기와 질투도 없으며,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가식이나 위선처럼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원망과 미움마저도 산뜻한 사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의 엄청난 팬이 아님에도 작품을 내면 꼬박꼬박 챙겨 읽었던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읽고 나면 늘 겨울에서 봄이 막 넘어가는 시점에 거실 한 켠에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을 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혹은 아직 많이 나빠지지 않은, 나빠질래야 나빠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그런 와중에서도 다투고 화해하고, 용기를 내며 세상과 맞서 싸우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때 드는 기분 같은 것.
다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그를 무척 좋아하게 되고, 그의 작품도 꼬박꼬박 챙겨 읽는 와중에도, 그를 ‘사랑’하게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나 역시 좋아하게 되었지만, 아주 아주 흠뻑 빠져 사랑하게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밝음, 경쾌함, 상냥함, 무해함, 건강함 덕분에.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감정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어떤 것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꼭 그 대상이 좋거나 훌륭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누가 봐도 좋거나 훌륭한 것은 당연히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고,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희한하게도 결정적으로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딘가 부족한, 연약한, 비틀려진 순간을 찾아낼 때 같기도 하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작가들은 한결같이 열등감, 비뚤어진 자의식, 찌질함, 고독, 결핍, 외로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며 손톱을 씹다가 내 작품을 낙선시킨 심사위원들의 소설책을 모두 내다 버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마음 같은 것. 혹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술집을 떠나지 못하고 홀로 남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의 느낌 같은 것. 무언가를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이 풍기는 필사적인 느낌 같은 것.
문득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인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인 비숍과 그의 연인이었던 수아레스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는 부분. 사실 수아레스는 처음에는 비숍을 대단히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들을 꺼리고,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며, 팬이라고 시를 낭송해달라는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하는 비숍을 두고 수아레스는 그녀가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속물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숍 역시 수아레스의 지나친 자신만만함, 과열된 에너지를 보며 부담스럽고 이상한 사람이라 여긴다.
그렇게 자신의 집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비숍을 내보내지 못해 안달하던 수아레스는 연인인 메리의 부탁으로 안간힘을 쓰며 참아보지만, 결국은 견디다 못해 방으로 찾아가 비숍을 비난한다. 대체 저녁시간에 당신의 팬이라는 사람들이 시 낭송을 부탁했을 때 거절했냐고, 너무나 무례한 행동이었다고.
이를 두고 비숍은 이야기한다. 자기의 결과물에 너무도 자신만만해하고 만족스러워하는 당신이 부럽다고. 난 내 작품이 부끄럽다고. 난 내 자신이 싫고 두렵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아레스는 비숍의 냉담함 뒤에 숨겨진 연약함과, 거만함 뒤에 숨겨진 수줍음과, 그녀가 지닌 고독과 외로움을 알아본다. 타인이 보지 못하는, 오해하는, 설령 오해가 아니라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 이면의 어떠한 것을 알아보는 것.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그늘과 슬픔, 우울과 고통, 결핍 같은, 흔히 누구도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되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오히려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