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Oct 07. 2020

내 옆의 유토피아

득템.   달가량을 당근마켓에서 상주한 결과 드디어 원하던 것을 득템했다.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한다는 어떤 분에게서 책장을 사기로  것이다. 옆으로   위로 다섯 칸짜리 큼지막한 책장을 무려  개나.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요즘 미니멀리즘이 대세이기도 하고, 나중에 짐이   가구는 되도록  늘리고 싶고, 더군다나 5 책장 같이 사이즈가  가구는 운반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 그간 참고  참았으나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자리가 없어 책장 사이사이 빈틈에 낑겨 들어가다 못해 자꾸만 위태롭게 수직으로 상승하는 책탑을 보고 있자니 나오는 것은 오로지 한숨뿐.

이러다간 찾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사게 되는 참극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결국 기존에 있던 작은 사이즈의 책장들을 처분하고  사이즈로 새로 들이기로 했다. 덕분에 인터넷을 뒤져 난생처음 용달을 수배해 보는 경험도 해보았다. 사람   부르면  십만 원은 기본으로 드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에 깜짝 놀랐다. 대신에 나도 같이 도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용달 기사님을 도와 지하주차장에서부터 책장이랑 낑낑대며 씨름을 하고 있자니 문득 내가  그랬을까,  일을 벌였을까 싶은 후회감이 밀물처럼 몰려왔지만 때는 이미 늦은 . 비틀거리며 책장을 옮기고, 기존에 있던 책장은 다시 당근마켓을 통해 처분하고, 그런   한쪽에 몰아둔 책무덤을 정리해서 꽂다 보니 하루가 훌쩍 가버렸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깜깜했다.

하루 종일 책먼지에 둘러싸였던 탓인지 자꾸 재채기가 나오고 책을 만지는 일이 보통 중노동이 아니라 몸도 무척 고되었지만, 그래도 표지도 보이지 않았던 책들이 예쁘게 꽂혀있는 책장을 보고 있자니 절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나  면을 가득 메운 만화책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책들을 보기 좋게 꽂아둔 칸을 바라보고 있자니 밥을  먹었는데도 배가 부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개중 일부는 개봉조차 하지 않은, 서점에서 출고 당시 그대로 여전히 비닐에 쌓인 상태였는데, 가만히 손을 뻗어 그러한 책들을 만지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만화책들은 아직 뜯지도 않았구나,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뜯어서 찬찬히 읽어야지. 그리고선 문득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이라니... 비닐조차 뜯지 않은  책들을 처음   10년도  전이었는데.  사이에 그토록이나 여유가 없었단 말인가.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오늘이야 책장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평소였다면 아무리 바빴다고 한들 만화책    시간을 내고자 하면   것도 없었는데. 하다못해 페이스북 하는 시간만 조금 빼서 쓰더라도 말이다.

비닐옷을 입은 만화책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10 동안 무슨 이유로 뜯지도 못하고 전시만 해두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이유는 있었다. 평소에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원고 마감을 해야  때는 마감 때문에 바빠서,  한가한 다른 때는 소설을 읽어야 해서,  다른 날에는 다른 책들을 읽어야 해서, 혹은 신간을 읽고 서평을 올려야 해서, 그것도 아닌 날은 약속이 있어서,  어떤 날은 집안일을 하거나 외출을 해야 해서, 어떤 때는 그냥 피곤해서,  다른 날은 괴로워서, 어떤 순간에는 슬퍼서.

결국 매번 우선순위에 밀렸다는 이야기인데, 아마 앞으로도 그러한 우선순위가 당겨지는 일은 없을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럴 거면 자연스레 뭐하러 이렇게 무거운 것들을 그리 이고 지고 싸매고 다녔나 싶은 의문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곳이 마땅치 않은 책들을 책장까지 사가며 고이 간수해  이유. 아무래도  책들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상징물이 아니었던가 싶다. 어떠한 심적부담도 없는 유토피아와 같은 상태에 대한 상징물.

그러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이란 말은 당장 쳐내야 하는 일이나, 해내야 하는 일이나, 아직 완성하지 못한 마감이나, 아이들로 인해 소용돌이치는 감정이나, 인정욕구, 관심욕구, 명예욕구 등으로 인해 안달복달 끓어오르는 마음 등의 모든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했던 것이다.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그런 순간이 되어야만 뜯어서  만한 책이라고 여기며 여태껏 간직해온 것이다. 마치  한가운데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그중에 어느  군데 점을 찍어  훗날 여행을 가리라 다짐하는 것처럼.

하지만 사는 동안, 적어도 이전의 10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바쁘다거나 약간 여유로운 날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나날들에서조차 ‘완벽하게마음이 평온한 순간은 없었던 것이다.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정신이 없고 마음이 볶이는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 ‘마음의 여유가 있을  결코 오지 않는 순간일지도.

하지만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오지 않으면 어떠한가 싶기도  것이다. 유토피아 같은 순간은, 실제로 오는 것이 아닌 꿈꾸며 사는 그동안에  의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오로라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언젠가 사막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언젠가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로 결심한 것처럼, 그런 유토피아와 같은 상태에 언젠가는 도달하기를 기다리며 사는  또한 나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여행  자체보다 여행을 기다리는 순간이  의미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오늘은 비닐에 꽁꽁 쌓여 십 년을 기다린 책들   권을 뜯어서 읽어볼까 한다. 마음의 여유 따위 없고,  일도 엄청나게 많긴 하지만, 비닐을 벗기고  책을 읽는 날이 내게 있어서는 유토피아의 상징 같은 것이었기에, 그렇게라도 유토피아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상태가 되어 보고자 한다. 유토피아가 이리도 가까이 있었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