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Nov 19. 2018

에도시대 성매매 산업은 어땠을까?

<유곽 안내서>를 읽고

마쓰이 게사코의 <유곽 안내서>는 요시와라 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급 유녀 가쓰라기의 실종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소설이다. 총 17개의 챕터로 나뉘어져있으며 각 챕터는 가쓰라기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가장한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영 미궁에 빠진 듯하던 사건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더해지는 과정에서 조금씩 퍼즐이 맞춰진다. 줄거리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보다는 인물들의 진술을 통해 그려지는 유곽문화(?)의 디테일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제목처럼 유곽에 대한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유곽은 일본 에도시대의 성매매업소를 일컫는 것으로, 일종의 공창제에 가까운 개념이다. 당시에 유곽이 아닌 곳에서의 사적인 성매매는 불법이었으며 걸리면 벌로 유곽에 끌려가 노비유녀가 되었다고 한다. 에도의 교외에 막부 공인 유곽이 밀집한 지역을 요시와라라고 불렀는데, 유곽이라고 모두 같은 유곽이 아니며 시설 및 서비스(?)에 따라 등급이 매우 세밀하게 나뉘어져 있었다고. 위에 언급한 노비유녀들이 일하는 유곽은 당연히 매우 하급의 유곽인 것이고. 소설은 같은 유곽 내에서도 실력(?)에 따라 유녀의 급이 달라진다든가, 유녀와 손님의 관계 사이에서 수많은 신종 직업이 탄생했다든가, 유녀들의 문화는 어떠했다든가 등의 상세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유곽 내의 다양한 생태계에 대한 부분이 특히 놀라웠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가 역삼역에 있었는데, 역삼 하면 기업 및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각종 성매매업소가 밀집한 지역이기도 했다(몇년 전까지 그랬는데, 지금이라고 뭐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높이 솟아오른 건물들 뒷편의 골목길 사이사이로 고급 룸살롱에서부터 오피스텔 성매매까지 다양한 업소(?)가 존재한다. 출퇴근길에 이 지역을 다니다보면 이런 곳들이 눈에 안 띌래야 안 띌 수가 없다. ‘놀이터’와 같은 애매모호한 간판 앞에 양복 입고 서있는 떡대가 좋은 아저씨들, 그 앞에 멈춰서는 수많은 고급 승용차들, 차에서 내리는 매우 추운 옷차림의 여성들.

이처럼 성매매업소가 밀집한 지역의 경우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는 많은 업종이 따라온다. 미용실, 네일샵, 명품 대여 및 수선집, 세탁소 등. 여성의 꾸밈에 필요한 업종들이 좁은 골목길에 한 집 걸러 하나씩 있을 정도로 많다. 추운 옷차림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은 채로 다니기 힘들어하는 그녀들을 위해 월에 얼마씩 받고 운전해서 출퇴근을 시켜주는 기사들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성매매 산업에 직접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을 넘어서 그들을 둘러싼 광의의 산업 종사자까지 계산할 경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책에서는 유녀의 옷을 지어주는 사람, 유녀와 손님 사이에 편지배달을 하는 사람, 손님들의 기사 노릇을 하는 사람 등 요시와라 내 성매매 산업에서 파생된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개중에는 손님에게 금전을 직접 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던 유녀들이 돈 대신 옷을 뜯어내면 그것을 되팔아주는 사람 뿐 아니라, 심지어는 유녀가 손님에게 애정의 징표로 손가락을 잘라서 보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 사용할 가짜 손가락을 만들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유녀들이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것 같으면서도 여러군데 수수료를 떼이고, 고객 유치를 위해 계속 비싼 옷을 지어입는 등의 투자(?)를 해야했기에 정작 큰 돈을 벌기는 쉽지 않았다거나, 그나마 유녀 인생의 가장 최고의 행운이란 괜찮은 남자를 만나 낙적(첩으로 들어가는 것)되는 것이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는 오늘날과 너무도 유사하여 좀 놀랍기까지 했다. 성매매 산업이 본래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지.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꽤 선정적일 것 같지만 불쾌하거나 적나라한 묘사는 나오지 않고, 호기심을 적당히 충족시켜주는 선에서 그친다. 이건 사실 성매매 자체를 천시(?)하지 않고 일종의 직업으로 인식하는 일본문화의 특성 같기도 했으나. 하여간 마치 겐지모노가타리를 읽는 기분으로 아 그 시절에 그랬구나, 싶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바깥세상에서는 남자가 위고 여자들은 별로 좋은 취급을 못 받지만 이 곳에서는 큰 돈을 벌어오는 유녀들이 애지중지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설명하는 대목은 오늘날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들의 여성관과 너무나도 똑같아 실소가 나오기도 했던 부분이다.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 소와 돼지에게 좋은 여물을 먹인다고 소와 돼지가 귀한 대접 받는 것이 아니지 말입니다.

마지막에 가서 밝혀지는 가쓰라기의 비밀은 기대보다는 다소 허무해서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요시와라는 속세와는 정반대라네. 일단 남자보다 여자를 높이 보지. 여자가 번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으니 남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게고. 손에 꼽히는 상위 오이란라도 되면 기루의 주인까지도 반드시 ‘님’자를 붙여 부르지.” - p.37

“가쓰라기 님은 자네처럼 중간에 이상한 헤살을 놓지 않으셔서 나도 무심코 이야기를 해 버렸다네. 그분은 미천한 놈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열심히 들어 주시고는, “나, 자네의 마음을 왠지 알 것 같아. 사람의 마음은 깊은 우물과 같아서 아무리 몸을 뻗고 들여다봐도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법이야.”하고 말씀하셨네.” -p.38

“그리고 얼마 안 가 예의 그 소동이 일어났지. 아니, 난 속사정은 아무것도 모르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는 바는 주인과 반토 정도겠지. 하지만 가쓰라기 오이란이 사라진 후부터 그 목소리를 자주 떠올리네. 나보다 훨씬 젊은 가쓰라기 님은 몸을 내밀어 사람의 깊은 우물 바닥을 봐 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결국 부부가 무엇인지는 모른 채 끝나 버린 것은 아닐까. 하하하. 거기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 -p.39

“만으로 열넷이 되는 에도의 계집아이라면 앞으로 자신이 갈 곳이 어떤 곳인지를 충분히 알고 이미 각오를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지. 하지만 나는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다네. 각오를 했다고는 해도 그것은 포기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그 아이의 표정은 포기와는 한참 달랐어. 신바람이 났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괴로운 일만이 기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것처럼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지.” -p.231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쳐서 둑 위는 모래 먼지로 뿌옇게 보였네. 그 아이는 그 강한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오로지 앞으로 걸어갔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문 그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아. 그 아이가 멋진 오이란 행렬을 보였을 때도, 이번 소동으로 놀랐을 때도, 나는 이내 그 얼굴을 떠올렸네.” -p.231

매거진의 이전글 한 여자가 모든 것을 버린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