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Nov 22. 2018

그 소설가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읽고

잘나가는 소설가가 있다. 소설가답지 않게 늘 자신감과 활력이 넘쳤다. 요즘말로 하자면 한마디로 인싸. 그는 인싸였다. 마음 먹은 일은 무엇이든 해냈다. 그의 여자친구는 눈물을 흘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는 매우 강인한 여성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그녀를 좋아하게 된 이유였다.

그는 나약한 것을 경멸했다. 약한 것을 무시했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살면서 몇 번 울어본 적 없는 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마치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끝도 없이 나왔다. 의사는 원인을 모르겠다며, 이대로는 피부가 짓무를 수 있으니 바로 바로 수건으로 닦아주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아무일도 하지 못한다. 운동은 커녕 외출조차 못한지 오래다. 그나마 잠을 잘 때는 눈물이 멈추었기에 집에 커튼을 쳐놓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그러면서 여자친구와는 헤어지고, 소설은 갈수록 엉망인 작품만을 고작 써내고, 그렇게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그의 앞에 어느날 밤, 정체불명의 초대장이 날아오게 되는데. 달리 도리가 없어 초대에 응하게 된 그 앞에 나타난 것은....다름아닌 외눈박이 고양이였다!

손보미의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읽었다. 총 9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집으로, 위의 이야기는 가장 마지막에 실린 <고양이의 보은> 속 줄거리의 일부이다.

손보미는 처음 읽어보는데, 읽으면서 굉장히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9개의 단편이 모두 제각각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일정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 세계관은 한마디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예 SF처럼 가상의 현실도 아니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며, 그렇다고 박형서처럼 상상이 자유자재로 널뛰는 이야기도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꾸는 꿈 속 이야기와 같은, 어딘가 현실과 맞닿은 듯 하면서도 몽환적이고 이질적인 분위기가 작품마다 배어있다.

그리고 공감각이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주로 밤에, 인적이 없는 공간에서, 외딴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많다.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그렇다고 스산하지는 않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밤의 공원같기도 하다. (실제로도 공원이 많이 등장한다.) 읽기 전부터 표지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 읽은 후 다시 한 번 바라보니 소설 속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참 적절한 표지라고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건조한 이야기들이도 하다. 예를 들어 김애란이나 최은영 작가 같은 경우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넘쳐나는 것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서, 그 마음에는 감탄하면서도 엄청난 몰입도로 굉장히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에 반하여 손보미의 소설들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인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듯 하면서도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로봇 청소기 같다고 해야 하나? 비유가 좀 이상한데, 말하자면 누군가 가슴이 아파 울고 있으면 직접 끌어안고 토닥토닥하는 대신 그럴 시간에 쓱싹쓱싹 집안을 청소하고 티슈를 가져다 놓고 뭐 이런, 감정적으로는 거리를 두면서도 은근한 배려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도 현실과는 조금씩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소설보다는 연극 속 캐릭터에 더 가까운. 9편 모두가 다 재미있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고양이의 보은>이란 이야기는 정말 정말 좋았다. 그리고 여성 작가임에도 남성 화자 혹은 남성 캐릭터의 시점으로 쓴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래, 나의 아가씨와 넌 눈물의 씨앗을 공유하고 있어. 눈물의 씨앗 하나를 함께 사용한단 말이야. 네가 그곳에서 그토록 운이 좋게, 울 만한 일이 없게,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이곳 세계에서 너의 눈물을 다 가져와버렸기 때문이야. 아가씨가 너의 눈물을 다 흘려버렸기 때문이라고.”

애꾸눈 고양이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아가씨는 자주 울었어. 눈물이 많은 아가씨였단 말이야. 전혀 울 일이 아닌데 눈물이 날 때가 많았지.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가씨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넌 왜 이렇게 잘 우니? 그건 울 만한 일이 아니야. 넌 왜 그렇게 나약한 거니? 아가씨도 자신이 왜 그렇게 자주 눈물이 나는 건지 잘 몰라. 그게 너의 눈물을 다 가지고 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자주 눈물을 흘리는 자기 자신이 싫어져서 또 울음을 터뜨리는 거지. 그래서 아가씨는 자주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어. 남들이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고 민감하게 굴었단 말이야. 아가씨가 너무 안됐어. 너무 불쌍해.” -p.256-257, <고양이의 보은>

매거진의 이전글 에도시대 성매매 산업은 어땠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