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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Dec 10. 2018

바람둥이 노벨 수상자의 최후

<솔라>를 읽고

이언 매큐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몇 번 보았지만 막상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올해 출간된 <솔라>가 처음이다.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작가들 답지않게(?) 상당히 잘 읽히고 재미도 있어서 다른 책들도 전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라>는 그 제목처럼 태양에 관한 이야기다. 정확히는 노벨물리학 수상자인 주인공이 태양광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다룬다. 소재만 들으면 상당히 지루할 것 같지만 내용전개가 완전 더글러스 케네디 뺨칠만큼 스펙터클하다. 5번의 결혼과 이혼, 외도, 발각, 성공, 좌절, 재기, 그리고 파멸. 전형적이고 자극적인 플롯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래서 초반에는 약간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재미있어서 좋긴한데 그렇다면 문학성이 높은 작품과 대중소설의 차이점은 뭐지?”하는 것 같은. 물론 읽을수록 선명히 느껴진다. 자극적인 소재를 통한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는 것이.

<솔라>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인 노벨 물리학 수상자 마이클 비어드의 여성편력과 그의 태양광 연구. 주인공은 못생겼지만 지성미로 어필하는 지식인 캐릭터로서 이성에게 유달리 관심이 많은데, 한마디로 여자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결혼을 무려 5번이나 했을 뿐 아니라 결혼생활 중에도 틈만 나면 바람을 피운다. 그는 유능한 동시에 대단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관계에 있어서는 상당히 불성실하다. 또한 그런 스스로에 대한 자기 객관화 따위는 전혀 없는데, 소설이 그런 주인공을 얼마나 무자비하고 거침없이 다루는지 읽으면서 아주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주인공에게 무자비한 작가는 오랜만이다. 건조하고 담담한 톤으로 전달되는 엄청난 시니컬함!

태양광 사업을 비롯하여 물리학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여간 소설 속 전개를 따라가기 위해 반드시 그 이론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궁금증이 생겨 물리학자인 남편에게 읽어주면서 이거 맞는 말이야? 하고 물어보았더니 개소리라고. 다 떠나서 상당히 재미있다. 그럼 된거지 뭐.

환경보호를 합시다, 지구를 지킵시다, 와 같은 교훈적인 내용은 1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왠지 모를 위기의식까지 느껴지는 것은 덤. 이런 것이 거장의 힘인가.

마지막 문장은 이 소설의 핵심이자 백미이다. 너무나 완벽한 마무리였다.


비어드는 딸을 맞이하려고 일어서며 심장에서 무언가 부풀어오르는 듯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딸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데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사랑인 것처럼 보이려고 해도 이제 믿어주는 사람이 있긴 할까.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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