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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07. 2018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을까?

김박사는 누구인가를 읽고

이기호 작품집 <김박사는 누구인가?>를 읽었다.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특징을 하나 발견했다. 이기호의 소설 속에는 항상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 작품에 결함이 있다는 뜻은 아니고, 이야기들마다 매번 어떤 ‘결정적인 것’이 의도적으로 감추어지거나 생략되어 있다.

이를테면 언제나 상냥하고 다정하던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개같은 년”이라는 욕을 내뱉었던 이유라든지, 삼촌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애지중지하던 차를 어느날 갑자기 집 앞에 버리고 잠적해버린 사연이라든지, 어릴 적 영재였던 친척 동생이 먼 훗날 백치처럼 변해버린 경위라든지. 상황과 주변인물들의 반응, 주인공(관찰자)의 고뇌 등은 상세히 묘사되지만, 이야기가 끝나도록 사건의 결정적인 이유나 원인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 지하철에서 고등학교 친구를 마주친 적이 있다. 같은 반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한 시절은 내내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야자를 하다가 옥상에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주말에 도서실에 나왔다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같이 나누어 먹곤 했다.

대학교 졸업반 즈음인가, 하루는 지하철을 탔는데 바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하다가 곧 알아차렸다. 그 아이였다. 쌍커풀 수술을 하고 살을 많이 뺀 상태였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고, 서로를 알아보았고, 서로가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후에 그 아이는 바로 고개를 돌려서 눈을 다른 곳으로 향했고, 나는 두 정거장 후에 내렸다.

왜 우리는 모르는 척 했을까. 단순한 어색함이라고 하기엔 마주치던 시선 속에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었다. 그 아이의 마음은 둘째치고, 당시엔 똑같이 고개를 돌리며 모르는 척 해버린 스스로에 대해서 훨씬 더 놀랐었다. 나는 왠지 화가 나 있었다. 살을 빼고 쌍커풀 수술을 한 그녀에게. 그 때 나는 내가 왜 그러는지를 몰랐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지만. 이기호 역시 결정적인 것을 생략하는 까닭은 작가 스스로도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집 <김박사가 누구인가?> 에 실려있는 단편, ‘김박사가 누구인가’에서 김박사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나면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죄의식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거절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망상을 참아내는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기도 한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
(....)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는 선에서, 그렇게 적당히 타협하면서 지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그게 조금 쓸쓸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게 또 우리였으니까.”
 
“나는 그저 아내 마음만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게 내 한계일지도 모르고, 또 옹졸하고 이기적인 마음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뭘..... 나는 내가 가진 것들만 잘 참아내는 사람이 맞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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