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를 읽고
어느 날 항공사에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유나가 자살을 한다. 폭군처럼 군림하다가 일련의 사건 이후 십여년 넘게 가족과 연을 끊고 지냈던 아버지 정근은 딸의 장례식장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뒤로 아버지는 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 나서고, 그 고비마다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데...
박민정의 <미스 플라이트>는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건일지라도 그 안에 수많은 인물들과 각자의 사연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얼마나 입체적일 수 있는지도.
소설이 보여주는 인간의 입체성에 매료되다가도, 가끔씩 현실 세계의 인간들은 어쩌면 소설 속에서처럼 입체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건 아마도 살면서 만났던 누군가들의 악의 뒤에 숨겨진 연약함을, 선의 뒤에 숨겨진 비겁함을, 굳이 상상력을 발휘해 알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그리고 읽는 이유는 결국은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유나가 그토록 원망하던 유나 아버지가 그들 눈앞에 있었다. 오랫동안 주한이 상상한 유나 아버지의 이미지는 파란 공군 제복을 입었거나, 전투복을 입고 모래주머니를 찬 우락부락한 군인의 모습으로, 병사들에게 얼차려를 시키거나 함부로 정강이를 걷어차는 괴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밥상머리에서 유나의 따귀를 때리는 괴물의 이미지이기도 했다. 지금 주한의 눈앞에 있는 유나 아버지는 목이 늘어난 면 티에 낡은 항공 점퍼를 입은 노인네일 뿐이었다. 미군 애들이나 마셨던 것 같은데, 따위 말을 하지만 익히 아는 대로 불명예 제대한 옛날 군인, 그냥 아저씨였다.”
“아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줄 수조차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