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도서관에서 책을 찾느라 서가를 흝어내리다가 우연히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루시드폴과 이석원의 소설책!!! 루시드폴은 우리가 아는 그 루시드폴 맞고, 이석원도 우리가 아는 그 이석원이 맞다. 그러니까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둘다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만큼 글을 잘 쓰는 줄은 알았지만 소설까지 낸 줄은 미처 몰랐다. 물론 그 결과는 폭망. 나도 서가에서 처음 봤으니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 존재조차 몰랐을 정도로 대폭망이었을 것이다. 독자의 대다수가 가수시절부터의 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뷰에서 드러나는 냉정함이란....잠깐의 호기심을 억누르기 충분할만큼 냉혹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잘나가는 뮤지션들이 왜 소설을 썼을까? 에세이집도 아니고? 소설을? 굳이???
나는 ‘글쓰기’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기분 좋을 때 뭔가 흥얼거리거나 신나서 몸을 들썩거리는 것처럼 화가 나거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하면 그것을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고 싶어한다. 딱히 글을 잘 쓰거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그렇다. 아마 스스로를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무엇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또 쓰고 싶어하는 것 같고. 요즘에는 ‘소설쓰기’ 역시 특별한 사람 몇몇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많이 쓰다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어떤 세계의 절대자, 창조주가 되고싶은 그런 마음.
실은 나에게도 소설을 쓰고싶은 욕망이 있다. 쑥스러워서 남들 앞에서는 잘 말하지 못하지만. 이는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어딘가에 투고를 해서 등단을 한다거나, 작품이 알려져 작가로서 성공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소설을 쓰는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마치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용변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고싶은 것처럼, 나만이 아는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가 늘 가슴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서.
물론 생각과 다르게 늘 잘 되지 않는다. 머리속에서 반짝거리던 아이디어는 지면에 옮기면 그렇게 시시할 수가 없고 곧 제풀에 지쳐 그만둬버린다. 그것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패턴이었다. 여러가지 작법서를 읽어보기도 했지만 대개가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효과만 있을 뿐 쓸모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나름 글 좀 쓴다 자부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므로 잘 읽히고 재미있긴 하지만 실제로 글을 쓸 때는 솔직히 말해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곽재식의 <항상 앞부분만 쓰다 그만두고 마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는 지금까지 읽었던 작법서 중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담겨있었던 책이었다. 제목부터가 완전 내 얘기다. 곽재식 작가는 상당히 성실하게 작품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꾸준히 소설을 써서 지금까지 몇백편의 단편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소재를 찾는 법, 그것을 발전시키는 법, 글을 쓰다 막혔을 때 해결하는 법 등등.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들었다고 당장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다. 공부 잘하는 법 책을 읽었다고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이. 따흐흑
실화를 옮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겪은 일을 내 이야기로 옮기는 작업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살펴보는 것이다. (....) 이런 문제는 스스로 깊게 돌아보고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대체로 가까이에서 벌어진 일보다는 먼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 부담이 적고, 최근에 벌어진 사건보다는 몇백 년 전의 일이 부담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p.52
한편으로 내가 직접 겪은 일을 소재로 쓸 때는 그렇게 해서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내가 내 일에 관해 쓸 때는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구질구질한 변명이나 넋두리나 늘어놓는 글이 될 가능성도 높고, 사건 속의 선행과 악행, 선인과 악인 구도도 더 재미있는 방향으로 마음껏 나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p.53
소재의 한 결은 직접 본 일에서 가져오되, 바꿔치기 수법을 어느 정도 활용해서 사건이나 배경은 실제와는 다른 것으로 고쳐 쓰는 것도 방법이다. -p.53
이때 정말로 ‘나’라면 어떻게 할지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가장 좋은 선택, 나 자신이 진짜 할 선택에 끝까지 매달릴 필요 없이 더 재미있는 이야기, 내가 더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면 그 방향으로 가면 된다. 내가 아니라 잘 아는 사람, 존경하는 위인 혹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얼간이가 할 만한 선택도 상상해본다. 그게 더 재미있다면 그 방향으로 밀고 나간다. -p.56
다른 이야기를 가져와서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방법을 쓸 때 유의할 점은 원래 이야기 속 인물이 그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 원래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내 생각과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와 성격이 있어서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그 사람은 참 멍청하군’ 하고 넘어간다면 상황을 잘 이해했다고 할 수 없고, 그러면 그 상황에서 이야깃거리를 충분히 살릴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야깃거리는 더 풍부해지고, 갈등을 더 와닿는 모습으로 피워낼 수 있다. -p.56-67
‘메모해두고 묵히기’ 방법은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거나 SNS를 보다가 나도 뭔가 한마디 더 하고 싶어 확 솟구치는 순간에 쓰는 것이다. -p.69
소설 쓰기의 핵심은 어떤 성격이나 성향, 장단점을 가진 인물을 만들어두고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하는 것이다. 그렇게 떠오른 것을 하나하나 써나가면 그것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