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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Dec 21. 2018

인간이 잔인해진 이유

<인간 폭력의 기원>을 읽고

인간의 어두운 면에 관심이 많다. 이기심, 잔인함, 지배욕구, 파괴본능, 등등. 인간이란 본디 선하기보다는 악하기가 더 쉽다고 믿기에 그러한 악한 마음을 어떻게 제어하고 다스리는지는 늘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어째서 사람마다 그것을 제어하는 능력치가 차이가 나는 것인지도. 그러던 차에 야마기와 주이치의 <인간 폭력의 기원>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교토대 총장인 저자는 원숭이와 침팬지, 고릴라 등을 연구하는 영장류 학자로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의문을 갖고 영장류를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왜 인간이 전쟁을 거듭하는지, 어떻게 그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영장류와 비교하여 연구한다.

본래 영장류와 인간은 상당히 가까운 존재이긴 하지만 책을 통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가깝고 유사한 종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인간과 98% 이상 일치하는 DNA를 비롯하여, 집단의 사회화 방식, 서열 문화 등등. 암컷이나 수컷끼리 싸우고 화해하는 방식도 인간과 대단히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하다못해 일본원숭이는 새끼들끼리 싸울 경우 부모가 개입하다가 부모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처럼 인간과 유사한 동시에, 먹이와 천적, 소화기관 등의 신체구조로 인해 종별로 모두 조금씩 다르게 진화해왔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고릴라가 상당히 신사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그러나 그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책장을 넘기던 나는 어느새 점차 지쳐가고 말았다. 인간 폭력의 기원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이야기가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인간들은 왜 폭력성을 갖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 미치겠는데 오로지 원숭이 이야기 뿐이다.  

일본원숭이, 바바리마카크 원숭이, 돼지꼬리 원숭이, 술라웨시 마카크 원숭이, 사자꼬리 원숭이, 필리핀 원숭이, 히말라야 원숭이, 타이완 원숭이, 티베트 원숭이, 캠벨 원숭이, 보닛마카크, 토크마카크, 날쌘맹거베이, 망토개코원숭이, 회색랑구르, 검은두건랑구르, 붉은 콜로부스, 흑백콜로부스, 고릴라, 보노보, 침팬지,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으아아아아아아 정말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이미 200페이지가 넘게 읽어버렸네. 그러니 결국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표지에 원숭이 그림을 봤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이처럼 다양한 원숭이 및 영장류의 진화의 역사와 습성이 자세히 소개되고, 270페이지가 넘어가면 드디어 인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책의 종장 부분에 간략하게 소개되기는 하나 저자는 결국 인간의 ‘언어’가 전쟁과 잔악함의 근원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밝힌다. 영장류도 집단끼리 싸움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일뿐 인간처럼 ‘공동체’를 위한 투신은 없다는 것이다. 희한한 것은 책의 첫머리에 저자는 결국 인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 언젠가 인류는 이러한 폭력성을 극복할 것이라고 - 나는 이 책을 읽고 오히려 회의감이 짙어졌다. 그렇지 않은가? 언어를 없앨 수도 없고 말이지.

상당히 흥미롭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영장류와 자연에게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난.....아니다...



그가 ‘원숭이’를 관찰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문학(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13

혈연관계가 가까운 수컷들이 서로 협력하여 자신들 집단의 영토를 순찰하고, 다른 집단의 영토에 침입해 그곳 수컷들을 습격해서 죽인다. 그것은 먹이가 풍부한 땅과 번식력이 있는 암컷을 손에 넣으려는 수컷의 번식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의 집단 간 다툼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집단 간 싸움을 과연 남성의 번식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이 책에서 검토해 갈 주제이지만, 나는 인류가 침팬지와는 다른 사회성을 진화시킨 것이 집단 간 싸움이 격화된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p.47

암컷은 자신의 번식과 육아를 위해 좋은 먹이 활동 장소를 확보하고, 수컷은 번식을 위해 여러 마리의 암컷과 짝짓기할 수 있도록 영토를 넓힌다. -p.92

포유류로서는 긴 임신 기간과 수유 기간이 필요한 영장류의 암컷에게 수컷이 들어오는 것은 영토 방어나 육아에 대한 협력이라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p.129

넓은 영토를 단독으로 지키는 건 노력이 필요하고, 많은 동료들로부터 침범당할 위험이 있다. 그것보다는 암컷과 짝을 지어 영토를 갖는 게 영토의 공유자를 한 마리로 한정할 수 있어 유리하다. 이런 사정은 암컷에게도 마찬가지다. -p.130

수컷의 육아 참여는 많은 새끼를 낳아 길러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p.133

리처드 랭엄의 설에 따르면, 암컷들이 군거성을 발달시키고 또한 영토를 갖는 경우는 무리 내의 먹이 활동 경쟁을 완화시키기 위해 한 마리의 수컷을, 거꾸로 영토를 갖지 않을 경우는 무리들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복수의 수컷들을 받아들인다. 전자는 단일 수컷 - 복수 암컷의 무리, 후자는 복수 수컷 - 복수 암컷의 무리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해 보니 영토를 갖는 것은 단독 생활이나 짝 생활을 하는 종에 국한돼 있고 단일 수컷 - 복수 암컷 구성을 보이는 종의 활동 영역은 이웃 무리들과 중복돼 있었다. 복수 수컷 - 복수 암컷의 무리 구성을 보이는 종에도 분명한 영토를 지닌 종은 없었다. -p.135-136

인간 남성의 고환은 고릴라보다 크고 침팬지보다는 작다. 정자의 밀도도 딱 그 중간이다. 이 특징은 정자 경쟁이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정도다. 인간 여성에게는 성피가 없고 발정 징후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성행위가 배란기로 한정 되는 건 아니다. 성행위 빈도나 출산 시기에 계절에 따른 편중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복수의 남녀가 일상적으로 얼굴을 마주치는 인간 사회는 결코 침팬지와 같은 난교를 허용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릴라처럼 수컷이 배우자 관계의 독점을 확립하고 있는 사회도 아니다. 아마도 거기에 가족을 만든 인간의 불가사의한 성 특징이 감춰져 있을 것이다. -p.148

고릴라 암컷들 사이의 관계는 정말 담백해서 서로 너무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보였다. (...) 이처럼 암컷들이 혈연관계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서로 사귀기 때문에 고릴라 암컷은 부모 슬하를 떠나 낯선 동료들 한테로 옮겨 가 탈 없이 지낼 수 있다. -p.159

혈연관계가 없는 암컷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말리는 것은 고릴라 사회에선 수컷의 역할이다. 그러나 다른 암컷이나 아이들도 싸움을 말리는 일에 끼어들었다. 수컷이 없으면 암컷들이 공존할 수 없다고 볼 수는 없다. (....)
그것은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고릴라는 동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서열 관계 속에 넣어 해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원숭이는 서로의 서열이나 혈연관계에 따라 가세해 줄 상대를 정하고 그 관계가 손상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고릴라는 상호 관계와 무관하게 그 상황에 따라 싸움을 막으려 한다. 나아가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을 이용해 상대와 관계를 맺으려 한다. -p.159-160

아라시야마에서는 서열이 높은 수컷 주위에 언제나 눈에 띄는 암컷이 있었다. 이들 암컷은 이전에 이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교미기가 끝난 뒤에도 수컷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했다. 서열이 높은 수컷 곁에 있으면 먹을 때 다른 암컷보다 우선적으로 먹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암컷이 수컷을 뒤따르기 시작한 갓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 추수 관계에 있는 수컷과 암컷은 점차 서로 교미를 피하게 된다. 교미를 통해 암수 간에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윽고 그 친밀함이 교미를 저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다카하타 유키오는 친밀성은 성과 길항 작용을 한다고 생각했다. 근친 사이의 교미 회피도 혈연을 인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친밀한 관계를 만든 것이 그 원인이라는 얘기다. -p.164

인간 사회의 근친상간 금지는 생존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성적 경쟁을 완화시키기 위한 구조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p.173

유아기의 돌보기를 매개로 암수 간의 성적 관심을 억제하는 영장류의 보편적 경향은 인간 사회에서는 근친상간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비성적 친화 관계를 형성하는 쪽으로 발달해 왔음이 분명하다. -p.174

고기 분배는 주는 ‘나’와 받는 ‘너’라는 양자 관계 속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막사에서 생활하면서 함께 사냥하는 ‘우리’라는 문맥 위에서 참여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케우치 기요시는 그것을 마르셀 모스의 ‘부채 이데올로기’에 대비시켜 ‘공재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p.293

수렵 채집민이 물건을 통해 양자 간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꺼리는 데 비해 유인원은 오히려 그것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보노보는 분배를 조름으로써 소유자의 자제를 제안한다. 거기서 소유자는 자기 안의 타자와 만나게 된다. 타자의 욕구를 자기 욕구와 같은 수준에서 느끼고 그것을 공존시키기 위해 분배에 동의한다. 그것을 구로다 스에히사는 ‘공감’이 싹트는 것으로 파악했다. -p.294

그리고 침팬지나 보노보의 먹이 분배에서 나타나는 마음의 움직임은 자기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이나 타자 이해, 소유, 가치 등의 출현과 연동돼 있으며,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규범이나 자연 제도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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