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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Dec 24. 2018

고독한 두 영혼이 만나

<어둠의 왼손>을 읽고

딸을 키우면서 아들과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은 생각을 자주 한다. 첫째는 거들떠도 안 보던 인형이나 소꿉놀이를 끼고 지내는데다가, 벌써부터 옷이나 머리 모양을 신경쓴다. 엄마 화장품도 마구 뒤진다. 2살짜리 그 작은 애기가 말이다. 반면에 첫째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던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 등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정말로 남과 여는 타고난 성차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그러나 확언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인형과 주방놀이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과 자동차와 공룡에 홀릭하는 여자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고로 성차는 늘 어려운 주제이다. 아이들이 각각 남성, 여성으로 태어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 아이들 개개인이 타고난 개별 특성인지는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사회문화적 영향일 수도 있다. 티비나 그림책 속 남과 여, 가까이는 엄마와 아빠부터 확연히 차이가 나니까. 어쩌면 첫째와 둘째라는 차이도 있을지도 모르고. 이처럼 성차는 모든 문명을 백지(?)의 상태로 돌리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어슐러 K.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은 성차가 없는 세상을 다룬 소설이다. 우주 어딘가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매달 돌아오는 발정기 때에만 자신이 원하는 성의 모습을 택할 수 있는 종족이 사는 행성이 있다. 이종족인 아이가 문명교류를 위한 특사로 이 게센이라는 행성에 찾아오며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다.


지구인은 아니지만 성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는 곳에서 살던 아이는 성차가 없는 게센인들을 바라보며 매사 혼란을 느낀다. 때로는 남성처럼, 때로는 여성처럼 보이는 그들을 앞에 두고 아이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지 기준을 잡기 어려워한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늘 성기가 돌출되어 있고 언제든 성교를 할 수 있는 아이는 성도착자나 다름없다. 이처럼 책의 여러 대목에서 성별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성차 관련 고정관념이 오늘날에는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1976년, 무려 40여년전에 나온 소설이란 것을 감안하면 그 발상과 전개가 놀랄만큼 뛰어나다.

물론 그러한 사회정치적인 이슈만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이것은 고독한 두 영혼간의 아름다운 결합, 우정에 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문명과 문화와 성격과 여러가지 차이로 솔직하지 못하고 서로를 자주 오해하던 두 사람이 상대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각 장은 게센인 에스트라벤과 이종족인 아이의 시점으로 번갈아 전개되는데, 그러면서 그들이 심리적으로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이 실감나게 묘사된다. 두 사람이 빙원을 통해 도주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서술하는 대목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도 박력있고, 아름답고, 장엄한 장면이었다. 에스트라벤과 아이 두 명의 주인공 또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이제껏 르 귄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것은 SF 장르를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SF의 대모라기에 그냥 전형적인 우주선과 우주인과 외계인과 우주전쟁, 뭐 그런 이야기일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전형적인 SF 장르의 특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단순히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넘어서 어떠한 기품이 느껴지는 이야기. 읽고나면 마음 깊숙한 곳의 무언가가 바뀐 듯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르 귄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더 일찍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지금에라도 읽은 것이 다행이다만.



인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괴롭히는 불확실성,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지’입니다. -p.113

누구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그 심리적 효과는 엄청나다. 17~35세의 모든 사람이 ‘출산에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에서는 다른 세계의 여성들처럼 생리적, 육체적으로 완전히 출산에 ‘묶일’일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담과 특권을 거의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며, 모든 이가 선택에 대한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세계의 남성들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남성들도 없다. -p.142

그의 둔함은 무지 때문이다. 그의 거만함은 무지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 대해 무지하고, 우리는 그에 대해 무지하다. -p.225

나는 사람들이 같은 환경에서도 매우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들은 오르고레인 사람들이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집단의 목적을 위해 협동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교육을 태어날 때부터 받은 사람들이었다. 독립심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약했다. 화를 잘 내지도 않았다. 이들은 전체를 이루었고, 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모두가 그것을 느꼈고, 모두 한데 모여 생명력을 교환하며 전체로 있는 것은 밤이 되었을 때 모두에게 피난처이자 위안이 되어주었다. -p.243

싫어하느냐고요? 아닙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개인이 한 국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티베는 그런 말을 합니다만 저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알고, 도시, 농장, 언덕, 강, 바위들을 알고, 가을이 되면 언덕 위의 어떤 경작지 위로 어떻게 해가 지는가를 압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경계를 긋고 이름을 붙인 뒤 이름이 적용되지 않은 곳은 더는 사랑해선 안 된다니 말이 됩니까?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기 나라가 아닌 곳은 미워한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냥 자기애입니까? -p.292

친구. 새 달이 시작하면 친구가 애인이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친구란 무엇일까? 남자로 한정이 된 나는 될 수 없었다. 세렘 하루스와도, 그의 종족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둘 다 아니면서 둘 다이기도 한 그들은, 달의 변화에 맞춰 주기적으로 변태를 하는 그들은, 인류의 요람에서 비밀리에 바꿔치기 된 그들은 나의 육친도 친구도 아니었다. 우리 사이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다. -p.294

상상할 수도 없이 빠른 속도로 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면서 겨우 몇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가 고향에 두고온 사람들은 늙고 죽으며 자식들이 늙어간다....... 마침내 내가 말했다. “저는 저 혼자만 추방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저를 위해서, 저는 당신을 위해서지요.” 아이가 말하더니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p.305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요인은, 그 사람이 남자로 태어났는가 여자로 태어났는가입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그것은 그 사람의 기대, 행동, 사고방식, 윤리성, 태도 등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함니다. 단어, 기호 사용, 의복, 심지어 음식까지도요. -p.322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햇빛 속을 걸을 때 그 뒤를 따르는 어둠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에돈두라스가 말했다. “왜 어둠이 내 아이들을 따라다니지?” 에돈두라스의 케메르 상대가 말했다. “그건 아이들이 시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야. 그래서 죽음이 아이들의 뒤를 쫓아가는 거야. 아이들은 시간 속에 있어. 태초에는 태양과 얼음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림자는 없었어. 우리 수명이 다하는 최후의 순간이 되면 태양안 자신을 잡아먹을 거고 그림자는 빛을 먹을 거고, 그러면 얼음과 어둠 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야.” -p.327

그리고 나는 그토록 보게 될까 두려워했던 것, 에스트라벤에게서 보고도 애써 못 본 척해 왔던 것을 다시금 보고야 말았다. 그가 남자인 동시에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두려움의 근원에 대해 설명해야 할 필요성은 두려움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마침내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에스트라벤을, 그의 진정한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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