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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죽고 싶어도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간다

by 숭숭현

사실 이번에 꺼낼 기억은 나보다는 우리 언니의 일상을 흔들어 놓았던 죽음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렇게 글로 꺼낸다는 것 자체가 조금 망설여졌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도 잊을 수 없는 죽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일부분만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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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띠동갑 나이차가 나는 언니가 하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니는 '내가 너 키웠다'는 말을 잊을만하면 꺼내고는 했다. 언니는 내가 초등학생 때는 따로 살았다. 언니는 다른 도시에서 직장을 찾기 위해 이도시 저도시에서 생활하며 내 생일이라던가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만 시골집에 오곤 했다. 그러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때 언니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집으로 내려와 우리와 함께 살았다. 나에게 언니는 엄청 큰 어른이자 대단한 사람이었다. 언니 말처럼 어린 나를 언니가 키우다시피 해서 그런지 나한테는 제2의 엄마였다.


내 나이 17살, 서른을 앞둔 언니에게는 20대 초반에 긴 나름의 연애를 하다 헤어졌지만 20대 후반이 돼서 재회한 남자친구가 있었다. 언니는 늦깍이 대학생이었고 국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니 남자친구는 인천에 살고 있어서 그 둘은 장거리 커플이었다. 언니가 국시에 합격하면 수도권에 있는 대학병원 규모의 병원에 취업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동시에 결혼 준비도 같이 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결혼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학생이었음에도 '우리가 곧 가족이 되겠구나'싶은 분위기를 알아챌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호칭을 형부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눈치가 없는 사람도 느낄 분위기였다.


(예비)형부가 고등학교 입학 축하한다고 선물을 사준지 일년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교하고 집에 돌아와서 언니를 찾았는데 엄마가 말하길 형부가 사고로 죽어서 언니가 급히 인천에 갔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한테 그게 무슨소리냐며, 잘못 안거 아니냐며 재차 물었었다. 엄마도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연신해댔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어제 언니 휴대폰 너머로 형부 목소리를 들었었는데 하루 아침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언니가 너무 걱정됐다. 우리는 우리지만 언니의 심정은 누가 아리오.


형부는 진짜 세상을 떠났다. 추운 겨울 날 예측불허의 교통사고로 그렇게 갑자기 명을 달리했다. 언니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그 사람의 신체를 조각내며 사인을 밝혀내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국시를 앞두고 있어서 중요한 시기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죽은 것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언니는 생각보다 덤덤해 보였다. 속은 문드러지다 못해 부패될 지경일지언정 겉은 국시 준비하느라 매우 몹시 지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심지어 언니랑 같이 침대에 누워서 언니 국시 문제 푸는 걸 같이 했던 기억도 난다. 너무 무서워서 '언니 괜찮아?'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12살이나 어린 내가 감히 예상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는 너무나도 큰 슬픔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지만 그럼에도 언니가 견디고 있었구나라고 알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언니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씻고 온다며 욕실에 들어 갔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와 함께 대성통곡하는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장 뛰어가서 언니를 한참 껴안고 있다가 언니를 씻기고 데리고 나왔다.


몇 달 뒤 언니는 형부가 떠난 그 해, 국시를 한번에 합격했다. 온전한 정신이어도 한번에 붙기 어려웠을텐데 온전치 않은 몸과 마음 상태로 국시를 단번에 합격하다니. 독한걸까 아님 마음과 정신이 분리가 잘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진짜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 나였으면 절.대.로 합격은 커녕 시험에 1도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니를 보고 느꼈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숙명을 가졌구나', '시간은 지구가 종말할지언정 절대 멈추는 일이 없구나'. 언니는 아무리 허망한 상태여도 언젠가 해야만 한다는 걸 알았던 걸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 볼 수는 없지만 언니는 살아야만 했던 것 같다. 물론 언니는 살고자 하는 힘이나 의욕은 없었을 것이다. 시간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버텼을 것으로 추측된다.


언니의 아픈 마음은 시간에 비례해서 괜찮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이 계속 아팠을 것이다. 그저 잠깐 아픈 마음을 뒤로 하고 앞으로 걸어나가기 위해 발을 떼는 법을 터득해 나갔을 것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괜찮아지지 않았으니까.


그립다. 자꾸만 '만약에...'라는 생각으로 꼬리물기를 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다면 매 분, 매 시간을 버티면서 버틴 하루를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 산 사람을 살아야 하니까. 남은 여생을 함께 그렸던 내 편이 하루 아침에 증발해 버려도 살아가야만 하는 이 잔인한 삶을 살아야만 하니까.


언니 덕분에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의 잔인성을 10대에 체감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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