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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pr 29. 2022

[기억저장소] #7. 남자의 기억

 이제 막 갈린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붓자 거실은 순식간에 향긋한 냄새로 가득 찼다. 간이 늦어 커피 대신 차를 내릴까 했던 도준의 고민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만큼 향기로웠다. 원두에 뜸을 들인 뒤, 물 붓기를 수차례.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내려졌다. 도준은 내려진 피를 옆에 두고 종이와 펜으로 무언가를 적은 뒤, 피를 들고 손님이 있는 '기억의 방'으로 들어갔다.

'밥 먼저 먹어요. 손님이 와서 보고 갈게요.'

 도준이 져온 커피를 남자 앞에 내려놨다. 남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미소를 지었다. 입에 맞는 듯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고맙습니다."

"입에 맞으신가요?"

"아주 맛있."

"입니다."

도준의 말을 끝으로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참을 말없이 자의 손에 든 커피잔만 바라봤다. 커피잔에 티스푼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도준이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건가요?"

평소 같았으면 묻지 않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한참 넘겨 찾아온 남자가 보통의 경우는 아니었다. 도준의 말에 잠시 당황한 남자가 들고 잔을 내려놨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안쪽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종이에는 남자의 이름과 함께 손님들에게 가는 문자 내용이 적혀있었다.

'당신의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손님에게 꼭 문자만 가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편지로 직접 배달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M'의 도장이 확실히 찍혀있었다. 이는 손님 중에서도 'M'이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참을 종이만 쳐다봤다. 이상했다. 아무리 특별한 손님이라도 이곳에 시간을 넘겨 찾아온 적은 없었다. 편지가 잘못 배달된 걸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남자의 이름과 'M'의 도장이 너무나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도준이 급하게 종이를 접어 다시 남자에게 건넸다.

"아닙니다. 보통 이곳을 찾는 분들 중에 이 시간에 오시는 분들은 없어서요."

도준이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올까요?"

"아닙니다. 기억을 지우러 오신 게 맞다면, 분명 이유가 있겠죠. 만, 그게 어떤 기억이든, 기억을 지우신다면 그 기억은 제 소유가 됩니다. 다시 돌려받지 못하실 겁니다."

도준의 말에 남자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도준의 입에서 다시는 돌려받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니,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남자는 역시 조금  달랐다. 보통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고민 없이 기억을 지웠다. 그만큼 자신들을 괴롭히던 기억이었다. 지우는데 별다른 고민이 필요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 대신 한참을 침묵했다. 문득 도준의 마음에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기억이기에 이토록 망설이는 걸까. 배고픔도 잊은 채 어느덧 남자의 입모양에 집중하고 있었다. 빨리 저 기억을 보고 싶었다. 슨 대단한 기억인지. 기억의 방 정 가운데에 놓인, 손을 뻗어 잡기 딱 좋은 위치에 놓을 만큼 좋은 기억일지. 도준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결정에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받으신 편지는 아무나 받을 수 없는 편지입니다. 이곳 역시 보통의 사람들은 찾아올 수 없는 곳이고요. 지금 기억을 지우지 않고 나가신다면, 다시는 이곳에 찾아오실 수 없으실 겁니다."

설명을 해주는 듯했지만, 사실 도준은 남자의 선택을 재촉하고 있었다. 마치 제품을 파는 영업사원처럼 자연스럽게 기억을 지우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그만큼 저 기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도준의 말에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얼만큼 강력한 기억이길래 망설이는 걸까. 이곳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저 기억은 무엇일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남자는 결심했다는 듯 도준에게 말했다.

"지우겠습니다."

남자의 말을 신호탄으로 도준은 서둘러 남자를 의자에 편하게 눕혔다. 곧 남자에 지우고 싶은 기억을 천천히 떠올리게 했다. 남자의 미간이 잠시 찌푸러졌지만, 곧 몸에 힘이 점차 풀렸다.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남자가 기억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 벽장 한 곳의 문이 열렸다. 숨겨진 공간이었다. 도준은 서둘러 그 칠흑 같은 어둠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기억 속에서 처음 마주한 풍경은 병원이었다. 여기저기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가 보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이곳이 산부인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병원 로비 곳곳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남자를 찾았지만, 남자의 모습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는 투명인간이라는 사실이 이럴 때는 참 불편했다. 1층에 없는 걸 확인하고 2층으로 향했다. 복도를 걸어 다니며 문이 열린 곳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중 한 방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급하게 멈추고 다시 방을 쳐다봤다. 흰머리와, 주름은 없었지만, 분명 기억저장소를 찾아온 남자의 모습이었다.

"찾았다."

남자는 유리벽에 머리를 댄 채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도준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남자의 옆으로 다가갔다. 남자의 시선 끝에는 한 아이가 간호사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제야 남자가 왜 이런 표정으로 이곳을 쳐다봤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도준이 투명인간이 아니었더라도, 남자는 도준이 바로 옆에 온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는 그만큼 아이에게 푹 빠져있었다.

'쿵'

곧 소음과 함께 시야가 뒤틀렸다. 기억이 변하고 있었다. 드문 일이었다. 보통은 특정한 부분의 기억만을 지웠다. 가령, 최근에 할머니의 죽음으로 이곳을 찾은 여자 역시 할머니와의 행복했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웠을 뿐, 할머니의 존재는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와 함께한 모든 기억을 지우려 하고 있었다. 남자가 그토록 고민하던 게 납득이 갔다. 화면은 마치 타임랩스처럼 빠르게 움직이다 곧 한 순간에 멈췄다. 멈춘 곳에는 남자가 지친 얼굴로 아파트 복도를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문 앞에서 깊게 한숨을 쉰 남자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삐빅'

도어락 비밀번호 입력음이 끝나자마자 문에서 한 아이가 달려 나왔다. 얼굴 많이 달라졌지만, 간호사가 안고 있던 아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는 늘 있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남자의 품에 안겼다.

"엄마랑 잘 놀고 있었어?"

"응. 오늘 엄마랑 자 사러 갔다 왔어."

"진짜?"

"응. 근데 엄마가 과자는 사줬는데, 장난감은 안 사줬어."

한참 신나서 얘기하던 아이가 그때의 생각이 났는지 울먹거렸다. 남자는 그런 아이가 귀여워 죽겠는다는 표정었다. 조금 전 지칠 대로 지쳐 보이던 표정과는 정반대였다. 남자가 가방을 뒤지더니 무엇인가를 꺼냈다.

"짠!"

아이의 눈이 커졌다. 남자의 손에서 장난감을 낚아챈 아이가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왜 사 왔어. 애 버릇 나빠진다니까."

"그냥. 사주고 싶었어."

남자의 마지막 말과 함께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기억은 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 날, 수능을 보고 주민등록증이 나오던 날,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하던 날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갔다. 도준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 이렇게 많은 기억을 지우는 건 지금까지도 없던 일이었다. 잊고 싶은 기억이라면 잊어야 한다는 게 도준의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기억을 지우는 건 도준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스쳐가는 기억 속에서 도준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기억은 장면에서 멈췄다.

 사람들의 말소리 사이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이 상주와 절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부조를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이었다. 남자는 상주복을 입은 채 장례식장 한쪽에 앉아 있었다. 여기저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글쎄, 딸이 이번에 남자친구랑 여행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지 뭐예요."

"올해 나이가 몇이라고 그랬지?"

"올해 스물아홉이라고 하더라고요. 안됐어요. 젊은 나이에."

도준이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평소 점잖게 정장을 차려입고 다니던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풀어헤친 셔츠의 윗단이 남자의 심정을 말해주는 듯했다. 도준이 남자의 옆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왜 지우고 싶은 기억은 다 누가 죽는 꿈인지..."

사소하다면 사소한 기억도 많았다. 연인과 헤어진 기억, 면접장에서 창피를 당한 기억,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차인 기억. 하지만 기억저장소를 찾는 대부분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기억이 아이러니하게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됐다. 도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는 조문객들이 오면 본능적으로 절을 하고, 멍하니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곧 기억이 흔들리고 경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의 끝이라는 신호였다.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미동도 없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도준은 그런 남자를 뒤로하고 기억의 경계 밖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남자는 아직 기억 속을 헤매고 있었다. 먼저 기억에서 빠져나온 도준이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시계를 쳐다봤다.

"나올 때가 됐는데."

도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서랍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서랍 안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구슬 하나가 들어있었다. 도준이 구슬을 벽장 한 곳에 올려두었을 때 곧 등 뒤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어디죠?"

도준이 남자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문을 나가 첫 번째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나가세요. 이곳에서의 기억운 모두 잊을 겁니다."

남자가 중얼거리며 문을 향해 사라졌다.


 서윤은 낮에 본 스위스의 감동이 가시지 않았는지 커피를 마시면서도 내내 재잘댔다. 서윤의 말이 계속 이어졌지만, 도준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지웠던 남자의 기억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이렇게 많은 기억을 지워본 건 처음이었다. 물론 기억 몇 개를 동시에 지우는 일이 가끔 생기긴 했지만,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통으로 지우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도 남자가 사랑한 딸의 기억을. 처음 겪는 일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남자가 원한 일이라지만, 한 사람의 일생 중 꽤 많은 부분을 바꿨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도준씨!"

"네?"

갑자기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서윤 탓에 하마터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놓칠 뻔했다. 다행히 커피잔은 여전히 손에 매달려 있었지만, 커피는 이미 식을대로 식어버린 뒤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니에요."

"아닌 게 아닌데? 무슨 일 인데요."

"사실 아까 온 남자 때문에요."

"왜요? 그분 기억이 잘 안 지워진 거예요?"

"아뇨. 오히려 깔끔하게 지워졌죠."

"근데 뭐가 문제예요?"

도준은 서윤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의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지웠다고,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다고. 도준의 말이 끝나고 서윤은 고민에 빠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기억을 지워주는 일에 호의적이지 않던 서윤이었다. 그런 서윤에게 기억을 통째로 지운 일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럼 그 남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거나, 가족 중 누군가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러면요."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가족들이 병원에 데려갈 테고, 병원에서는 충격으로 인한 단기기억상실증으로 진단하겠죠. 딸과 함께한 기억은 남자에게 평생 없을 겁니다."

"꼭 지워야 했을까요? 철천지원수도 아니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이었는데 그 기억을 모두 지워야 했을까요?"

"너무 사랑해서,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랬겠죠."

"전 잘 이해가 안 가요. 만약 저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사람과 함께한 추억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아요. 평생."

도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억을 지우는 일에는 서윤과 의견이 달랐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준 역시 어느 정도 서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송두리째 뽑아낸다니. 만약 도준 자신이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기억저장소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회의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어색한 침묵 사이로 밤은 계속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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