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트 #9. 너의 이야기

by 이승훈

각막을 이식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승훈이에게 당장이라도 알리고 싶었으나,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면 너는 또 네 탓이라고 돌리며, 내 얼굴을 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수술 날짜가 다가올 때까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수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본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초에 승훈이와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본부장님이었고, 출판일정도 있어 언제까지나 이 일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본부장님에게 걸었다. 몇 번의 수화음이 가더니 곧 본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작가님."

"안녕하세요 본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혹시 오늘 시간 되시나요? 회사로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아 제가 오늘은 좀 곤란한데."

"그럼 괜찮은 날짜 말씀해주시면 찾아갈게요."

"죄송합니다 작가님. 이번 주에 제가 급한일이 있어서요."

평소와 사뭇 다른 본부장님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신 걸까. 당장 이번 주에 수술일정이 잡혀있었기에 본부장님을 꼭 만나야 했지만,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전화로나마 대략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몸이 조금 안 좋아서요. 이번 주에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출판일정도 있어서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네."

"아 승훈이에겐 말하지 말아 주세요. 사실 제가 아픈 것도 모르고, 알면 또 예전처럼 자기 탓으로 돌리며 괜히 자책할까 봐 걱정이 되네요."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은 병원과 수술일정을 묻더니 말릴 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혼란스러웠다.

'내가 잘못한 게 있었던가'

확실히 평소의 밝은 본부장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좋지 않은 일이 생겨 기분이 안 좋으신거라 생각하며, 난 서둘러 입원 준비를 시작했다.


수술 전날, 병원 냄새가 가득한 병실에 나 홀로 누워있었다. 시력은 갈수록 나빠져 이제는 바로 앞에 있는 물체까지 흐리게 보였고, 복도를 걸어 다니기도 힘들어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바깥공기를 쐴 수 있었다. 병실에 누워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언제부터인가 네게서 연락이 없었다. 출판일로 당분간 연락을 못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전화 한 통 없을 줄은 몰랐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지만, 수술 전 날 네가 없는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래도 수술을 받고 나면, 다시 너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헤어질 걱정 따위 없이 제주도에서 너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폈다. 그때 누군가 병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급격히 나빠진 시력에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곧 향수냄새를 맡고는 본부장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본부장님은 손에 병문안 선물을 한껏 들고 있었다. 어서 자리로 안내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왜 오셨어요. 안 오셔도 되는데."

"그래도 와봐야죠. 작은 수술도 아니고."

"그럼 빈손으로 오시지. 뭘 이렇게 사서 오셨어요."

"당연히 사와야죠. 몸은 어떠세요?"

"괜찮아요. 처음 해보는 수술이라 떨리긴 하는데, 그래도 이겨내야죠."

"잘 하실 겁니다. 각막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네. 사실 말씀 안 드린 게 하나 있는데, 이식받는 각막은 색맹 환자의 각막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네."

"어떻게 들리실진 모르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승훈이가 죄책감에 시달리며 저를 일부러 안 볼 필요도 없으니까요. 둘 다 색은 없으니까, 이제는 잘 지내지 않을까요."

"뭐 그렇죠. 제가 수술 전날 쉬지도 못하게 너무 늦게 왔네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수술 끝내고 뵙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본부장님은 그렇게 병실을 떠났다. 나는 곧 너에게 문자를 남기기 시작했다.


'출장 가서 일은 잘하고 있어? 나 거짓말한 게 하나 있는데, 사실 나 내일 수술해. 각막이식수술. 언제부터인가 눈앞이 조금씩 흐리게 보여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실명이 될 수 있다지 뭐야. 다행히 이식받을 각막이 빨리 찾아져서 내일 수술 들어가. 네가 들으면 놀라겠지만, 이제 우리 헤어질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해줄테니까 출장 잘 끝내고 빨리 옆으로 와줘. 보고싶어.'


네게 문자 한 통을 남겨둔 채로 내일 수술을 위해 잠을 청했지만,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차가운 수술대에 누웠다. 나를 눕혀놓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로 인해 수술이 더욱 실감 났다. 의료진은 준비가 끝났는지 내게 다가왔다.

"자 이제 마취합니다."

마취가스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점점 정신이 흐려졌다. 천천히 숫자를 세는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스치는 한 가지 의문.

'내가 본부장님에게 각막이식 수술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나?'

나는 그렇게 깊은잠에 빠져들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새로 이식받은 눈으로 처음 세상을 보게 된 날 내 앞에 본부장님이 있었다. 색이 없는 세상. 아직 눈에 적응되지 않아 완전히 말끔하게 보이는 건 아니었으나, 사람을 구별하고 물체를 보는 것엔 이상이 없었다.

"일어나셨어요?"

"아. 네 본부장님."

"눈은 괜찮으세요? 잘 보이나요?"

"네. 아직 조금 흐리긴 하지만, 점차 선명해진다고 하네요."

"다행이네요."

잠시 본부장님과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승훈이는 아직 안 왔나요? 아니면 잠깐 나간건가.."

"그게 작가님.."

"네?"

본부장님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일까. 네가 나를 다시 떠난 걸까. 이번엔 제주도가 아닌 더 멀리,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간 것일까. 불안한 마음에 본부장님을 재촉했다. 한참을 망설인 본부장님은 갑자기 눈물을 보이더니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깨끗하게 보관된 한 통의 편지였다. 급한 마음에 막무가내로 편지를 뜯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녕 ?

이 편지를 받았을 때면 수술을 마치고 나왔겠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 내가 왜 지금 너의 옆에 없는지, 왜 규식이 네게 이 편지를 주고 있는지, 그것부터 설명해야겠지. 긴 이야기를 모두 말하기에 이 편지 한 통으로 힘들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이야기를 해볼까 해. 너와 헤어지고 네가 없는 삶이 힘들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매일을 술과 함께 살았어. 술로도 부족해서 정신과 치료와 함께 우울증약까지 먹었지. 그렇게 매일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지내다보니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더라고. 도저히 못 참겠어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말기암이라더라. 인생 참 얄궂지? 어렸을 때부터 색맹으로 지냈고, 겨우 너를 만나서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너의 색을 내가 뺏어오고. 서로 원하지도 않던 이별을 몇 번이나 했는데, 이제는 말기암이라니. 멀리서라도 너를 지켜보고, 네가 가는 길을 응원하려고 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못한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의사에게 애원했어. 어떻게든 살게 해 달라고. 어떤 방법이든 좋으니, 제발 살게만 해달라고. 근데 그마저도 안된다더라. 이미 전이가 될 대로 된 상태라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입원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내가 살 날을 조금 늘리는 수준. 허탈함에 눈물도 안나더라. 집에 돌아와 가만히 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봤어. 내 삶은 왜 이런 걸까.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믿지도 않는 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지.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더라. 그렇게 며칠 동안 집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않다가 결심했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건 해보고 죽자. 그렇게 집을 내놓고 제주도에 원하던 집을 샀어. 규식이에게는 힘들어서 내려간다고 둘러대고 제주도에 내려와서 혼자만의 삶을 살기 시작했어. 매일 수북이 쌓인 약을 털어 넣으며 하루하루 쌓아가다보니 어느새 1년 가까이 살고 있더라고 내가. 의사는 6개월정도 이야기했는데 말이야. 기적이었지. 그러다 문득 규식이에게 네 소식을 들었어. 네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기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쏟아지더라. 주체할 수도 없이 눈물이 흐르고 흘렀어. 네가 나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되는 것 같았거든.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쌓이고 또 쌓였어. 어떻게든 너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서울에 올라왔고, 너와 함께 잠깐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시간 말이야. 의사에게 물어보니 색맹인 내 각막도 이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생각했어. 어쩌면 이게 네게 보답하는, 네게 줄 수 있는 선물이지 않을까. 너는 몰랐겠지만, 내 몸은 이미 한계였어. 네가 잠든 새벽에 화장실에서 피를 한 바가지 토하기도 하고, 진통제가 없으면 쪽잠도 잘 수 없는 수준이었거든. 나는 의사에게 내 각막을 네게 지정기증하겠다고 말했고, 너에게 출장을 간다는 핑계로 병원에 입원했어. 그제야 규식이에게 모든 걸 털어놨지. 화내지 않았냐고? 엄청 화냈지.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슬퍼해주었고. 규식이에겐 미안한 마음뿐이야. 정말로 모든 것에 있어서 최고의 친구였고, 가족 같은 존재였으니까. 어떻게든 치료를 하자고 나를 설득했지만, 내가 또 한고집하잖아? 내 각막을 네게 기증할 계획까지 모두 말하니 규식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 너도, 나도 참 기구한 운명이라면서 말이야. 죽기 전에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 대사를 믿지 않았는데, 이제 정말로 느껴져.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네게도 미안한 마음뿐이야. 내가 색맹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좋은 눈을 네게 줄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만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았잖아. 색을 못 보는 내가 너를 통해서 색을 보는 그런 마법 같은 일 말이야. 어쩌면 내 눈은 너를 만나서 오히려 더 빛날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신은 여기까지 계획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 마지막을 너에게 알리지 못해서, 마지막 얼굴도 보여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너만은 내게 미안해하지 말고 이 눈으로 아름다운 것들만 담아줘. 하늘에서 네가 담는 모든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볼게. 너무나 미안하고, 또 너무 고마웠어. 어디서든 영원히 잊지 않을게.

죽을만큼 너를 사랑했던 내가.>


편지와 함께 제주도 너의 집에서 본 화분 밑 열쇠가 함께 봉투에서 떨어졌다.

"제주도집은 작가님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본부장님이 슬픔에 젖어 간신히 말을 건넸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눈이 너의 눈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이식받지 않았을 텐데. 조금이라도 너를 더 살게 했을 텐데. 각막을 빨리 찾아서 다행이라며 좋아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혐오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본부장님 역시 그런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그렇게 너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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