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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l 22. 2020

게임을 대신해서 전기 피아노

중년의 선택

게임에 몰두하려는 아이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소리가 나면서 녹음이 되는

좁은 일본집에 두기에는 적당하고 조율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전기 피아노를 샀는데

게임을 하려고 하면 난 피아노로 총소리도 내고 새소리도 내어 이야기를 만들고

여러 소리에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 그것들을 연결하면 어떤 장면이 되는지 물었더니

나중엔 두 아이들도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피아노를 두들겼는데

그렇다고 게임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 줬다.


아들이 5학년 봄에 가을에 있을 학급별 연주에 피아노 부분을 정하는데

겨우 바이엘 60번을 치던 뭘 몰라 용감한 아들은 손을 번쩍 들어 피아노를 하겠다고

실력을 물은 선생님은 걱정이 되었는지 둘이서 오른손 왼손을 나눠하라고 했는데

혼자서 양손으로 하겠다고 해서 몇 번을 물었는데 몇 번을 자신 있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엄청 자신 있게 전하는 아들의 표정에 말은 못 하고 자꾸 상황만 물었는데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었다면 아이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해내야 할 것 같아

악보를 보여 달라고 하면서 전부 몇 마디인지 세어 보라고 하고 난 분석을 했다.

같거나 비슷한 것을 찾아내고 완전하게 달라서 연습을 더 해야 하는 것을 분리해

적어도 한 달 안에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 같이 연주를 할 때 반주를 넣어야 한다고

그러려면 몇 마디씩 해야 하는지 반복이 되는 것을 빼고 계산을 해 보라고 했다.


아이는 그저 날짜와 나누어서 이 정도면 할 수 있다고 자신을 했는데

고작 몇 마디를 10번 연습하라는 것도 녹음해서 나머지 9번은 재생 스위치만 눌러

아이의 어깨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에 이상해 살며시 가 보고 놀랬었다.

그래도 무안하게 만들면 연습을 아예 하지 않을까 봐 열 번 다 했다는 말에 칭찬을 하고

다음 연습부터는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싶다면서 곁에 앉아 있었다.


이랬던 아이가 매일 연습을 한다는 것은 그저 몰라서 하는 말이라는 생각에

왜 연습을 해야 하는지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꼭 해 내고 싶은지를 물었더니

제법 각오를 하고 있는 듯해 보여 그럼 도와주겠다며 꼭 해 내자고 약속을 했다.

그래서 매일 두 마디의 연습을 하면서 녹음을 해서 들려줬더니 느끼지는 것이 있는지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찡그리는 얼굴로 앉아 악보를 보면서 연습을 했었다.


그때 나도 매일 아이가 연습에 지치지 않게 하려고 힘들어 포기하지 않게 하려고 

칭찬을 하면서도 그 내용이 매일 달라야 아이도 진짜로 믿어 줄 것 같아서

손가락의 힘이 좋아졌다거나 악보를 안 보고도 했다거나 오래 앉아 있게 되었다고

이러다가 진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냐고 하면서 곁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거의 한 달이 지나니 들을만하게 두 페이지의 곡을 한 번에 이어서 해 냈는데

그걸 선생님과 학급 아이들이 엄청 칭찬을 했는지 아들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 낸 이 성과는 아들에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그래서인지 아들은 웬만해서는 포기나 실망이라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이렇게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이번 합주는 학년에서 최고일 거라고 했는데

우리는 가을이 오기 전에 미국으로 간다고 학교에 통지를 하고는

담임 선생님에게 피아노 담당은 어쩌냐고 크게 한소리를 들었다.


미국에 갈 거라고 일을 진행시킨 것은 봄부터였으니 난 미리 알고 막았어야 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이제야 그때 그 선생님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떠나는 준비에 바빠 담임 선생님께 사과를 제대로 했었는지 기억을 찾는데 없다.


미국에 가서도 아이들은 영어가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지니

친구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니 게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영어가 되면 공부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 공부는 생각하지 않는지

이러다가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도 놓치겠다는 생각에

피난 생활 같은 집안에 거금을 들여서 뚜껑도 없는 전기 피아노를 샀었다.












그리고 거금들인 것이 소중해서 뚜껑 대신 헝겊으로 내가 만들었는데

옷감이 두툼해서 좋다고 아들과 같이 고른 색이 집안과 어울리지 않아

꽃무늬의 천을 덧씌워 만들었더니 엄청 묵직해져 뚜껑 역할을 잘 해냈다.










그 피아노는 아이들을 도와 게임에 빠지지 않고 공부를 무사히 마치게 했는데

지금 그 전기 피아노는 15년이나 지나니 건반이 흔들리고 소리가 난다.

그걸 아들은 작은 기계와 연결해서 노트북으로 피아노 소리를 바꾸는데

그 소리는 웅장한 홀에서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내가 들어도 완벽하게 들리니 본인은 얼마나 좋을지 이런 걸 즐기며 살고 있다.


두 아이는 서로의 악보는 존중하기로 해서 둘이 같은 곡을 치는 경우는 없게 하더니

좋은 곡을 게임이나 드라마에서 들으면 쳐보고 싶다고 악보를 찾아 주기도 하고

간혹 연탄곡을 다 큰 두 아이가 의자에 엉덩이를 겨우 걸쳐 앉아 치는데

이 모습을 보면서 저 허름한 피아노가 많은 것을 해 주었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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