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년의 내 집

중년이 생각하는 노년의 집

by seungmom

일 년 사이에 중년을 지나 노년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는지

박람회에 다녀온 듯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며 느꼈다.


나의 부모님도 살던 집의 반도 안 되는 공간으로 줄였지만 그것도 넓어 보여

이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지내는 약 16평 정도의 이 집도 크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십 년이 지나면 집의 크기를 더 줄여 나의 노년을 위해 미리 준비하려고 하는데

더 나이 들어 환경을 바꿔야 하는 변화를 겪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노년이 언제부터 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중년의 삶과는 당연히 다를 것이다.


노년의 집은 쓸모없이 되어가는 육체를 멀쩡한 정신에 맞춰서 살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소박하게 느려진 육체에 맞게 집안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집안의 일을 확 줄여 주기 위해

반질거리게 닦아야 하는 가구와 빨아 갈아 끼워야 하는 커튼을 줄여 주는 것으로

뭐든 바로바로 치울 수 없으니 조금은 늘어놓아도 정신을 사납게 하지 않을 정도라면

노년의 삶의 질은 좋아질 것 같다.



2층 집에 살던 치과의사 부부에게 거의 10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와 인사를 갔더니

전에는 다양한 취미로 화려했던 대화의 내용이 이곳저곳이 고장 나서 수술했다는 것으로

80이 되면서 불편해진 1층의 식당과 부엌과 목욕탕의 일직선의 동선을 문턱이 없이 해 놓고

모든 생활을 이 공간 안에서 살면서 2층 계단은 아예 쓰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친구들을 불러서 밤새 떠들었던 응접실의 모습은 남아 있는데 빈 공간에는 상자들로 가득해서

왜 이렇게 되었냐고 하니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집에 오면 치울 것이 쌓여 있었는데

그것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이런 삶이 되었다고 했었다.


여유가 있어 큰 공간에 그 공간을 청소해 주고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몰라도

당장 청소가 구석구석 손이 가지 않아 집은 현관에서 먼 곳부터 창고로 변해 가고

그 속에 있던 물건들은 햇볕 보기가 힘들어지고 물건이 있다는 것조차 잊히는 것 같다.



나보다 3살 많은 혼자 사는 친구는 이때까지 살던 곳을 아들 부부와 두 명의 손녀에게 넘겨주고

자신만의 11평 공간을 새로 만들어 더 늙기 전에 새로운 자신만의 공간에 익숙해지려고 한다는데

익숙하던 집 계단 2층에서 내려오다가 미끄러지고 나니 더 늙으면.. 하는 걱정에 결심을 했다고 한다.

완성된 공간에서 하는 말이 모든 것이 팔을 뻗으면 손이 닿는다면서 난방비도 엄청 절약이 된다며

이제까지 쓰지 않았던 물건도 눈에 보여서 자주 쓰게 되니 딱 좋다고 하며 웃었다.



며칠 전에는 돌아가신 시부모가 살던 집을 정리하려고 들어가 산다는 친구 집을 가 보았다.

시골의 넓은 2층 집에 방만 6개나 되는 그 집에 물건이 정말 빈틈이 없이 가득 차 있었는데

많이 버렸다고 했는데 아직도 이러냐고 했더니 자신들의 짐까지 가지고 와서 더 그렇다고 한다.

90이 다 되어도 정정하셨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정리를 미처 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데

집이 커서 그랬는지 물건도 엄청나서 1년을 넘게 버렸다는데도 표도 안 나는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을 봐 오면서 노년의 집이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쓰던 것들도 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런 물건들로 가득 찬 집에서 노년을 보낸다면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저 숙제처럼 부담만 커지게 만들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이제까지의 집이라는 생각과 많이 달라지는데

아이들이 와서 머물 수 있다는 것도 아이들에게 남겨 줄 수도 있다는 것에도

매일 치워야 하는 입장에서 매월 관리비를 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올 수 있도록 그냥 이 집에서 살까 하니

아이들은 줄어든 관리비로 호텔에 가면 된다고 한다.


며칠간 비가 오고 나니 밖이 탁트여 바다까지 선명하게 보이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와 이 산 중턱까지 구불구불 올라오는 버스를 타는 보람이 있구나 했다.

아들의 나이보다 오래된 이 집을 고르면서 이 집에서 노후를 보내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집도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노년이 되면 집은 마지막 내가 기댈 곳이 되는데

손을 뻗으면 무엇이든지 지팡이의 역할을 대신하고 물건은 모두 한눈에 보여

떠오르지 않아 가지고 있으면서도 쓰지 못하고 미련하게 살아가는 것을 막아주는

딱 그 정도의 크기라면 된다는 생각인데 이것이 내가 터득한 이상적인 노년의 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0년 론으로 내 집 장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