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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Dec 28. 2017

한국의 추위는 산뜻했다.

중년의 17년 겨울

12월 10일 한 달 전보다 엄청 추워졌다.

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 가셔서 나도 덩달아 한국으로 날아와 지내고 있는데

한 달 전에 왔을 때엔 따사로운 햇살에 단풍이 여기저기서 자랑질을 해

아버지의 모습에 펑펑 울었던 얼굴로 길거리의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으로 

전쟁 때 20대의 청년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나중엔 꼭 부산에서 살겠다고 했다는데

내가 국민학교 때 부산으로 이사를 와서 그대로 꾹 부산 사람으로 눌러 사시면서

매번 겨울이 되면 부산이 왜 좋은 지를 읊으시면서 만족 해하셨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의 말로는 부산의 겨울은 추운 게 아니라고 하지만

11월에 오면서 들고 온 옷들을 겹겹이 끼어 입고 버티려니 궁상맞아 보이는데

해운대가 살던 동네로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 속을 걷다가 어쩔 수 없이 뛰면서

12월에는 매번 아이들이 있는 따뜻한 미국에서 지내 이런 추위는 새삼스러웠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되는지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에도 그렇게 춥게만 느껴지지 않아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두 분의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의문이 생겼는데 이유를 찾았다.


여관보다는 조금 좋아 호텔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지내는데

얼마나 따뜻한지 실내 온도를 확 내려놓고도 살짝 창문을 열어 놓아야 잠이 왔다.

이런 따뜻한 곳에서는 절대로 옷을 다 챙겨 입지 못한다고 들고 나와

찬 바람이 불어 시원하게 산뜻한 느낌을 만들어 주면 그때 겉옷을 입었다.


일본 고베 집에서는 11월 말이 되면 두꺼운 옷으로 조끼에 양말까지 입고 있어야 하는데

일본은 집이 추워 어디에도 푸근하게 몸을 녹일 곳이 없었던 탓에 날씨보다 더 춥게 살았다.

그런 내가 한국에선 방에만 들어가면 따뜻하다 못해 더워서 반팔로 지내게 되니 

쌩하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도 시원하고 산뜻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정말 추운 날에는 춥다 춥다를 중얼거리며 덜덜 떨리는 것을 즐겼는데 

병원이 주는 압박과 병원의 냄새를 날려주는 차가운 바람이 고마웠고

아버지의 모습보다 더 춥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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