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원했던 게임기
나는 아이들의 눈을 위해서 게임기를 철저히 막았다.
아들에게 3학년이 되면 눈이 어느 정도 이겨낸다고 하더라며
그때까지는 절대로 사 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했는데
그것이 잘 먹혀서 그랬는지 학교를 다니면서는 조용해졌다.
부유한 유치원과 달리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서는
게임기가 없는 친구들도 있다며 자신의 처지에 납득이 되었는지
사 달라고 조르는 대신 게임기가 있는 친구에게 빌붙었는데
그렇게 한 번씩 놀아보고는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게임 기계도 없는 아이가 게임 전략본을 빌려다 보는데
상상을 하면서 게임 전략을 그려보는지 열중하는 모습이 진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짠해지는데 나는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버텼는지
3학년이 되어 사 줄까 하니 이젠 괜찮다고 거절을 했었다.
그때 나는 아이가 가지고 놀고 싶다는 것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아이에게서 그 시절을 빼앗았나 하는 후회를 잠시 했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건 금전적인 것도 성향도 믿음도 다 각각인데 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어떤 가치관으로 그것에 대해 신념이 있다면 못하게 하는 것도
그 아이가 우연하게 만난 부모의 인연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니까 이런 엄마를 가져서 최신형 게임보이를 살 수 없었지만
게임보이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새것이 나오니 주변에 방치된 것들이 많아
나는 그것들을 빌리거나 얻거나 해서 아이들에게 제공을 했었다.
그런 게임보이 다음으로 가지고 싶은 게임기는 아이들이 사겠다고 해서
허락은 하는데 도와줄 수 없다고 하니 그동안 모아둔 것으로 산다며
두 아이가 한참을 의논하더니 합의를 봤는지 당당하게 나가서
주문을 해야 살 수 있는데 운 좋게 바로 살 수 있었다고 사 들고 와
설치를 하는데 엄청 요란을 떨었던 것이 플레이스테이션2 였다.
그때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파이널 판타지 X도 같이 샀는데
게임의 화면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나도 언젠가는 꼭 해 봐야지 했었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여름 방학에 일본에 들려서 산 플레이스테이션을
미국에 가져와서 정말 신나게 놀았는데 너무 심해진다는 생각에
나는 그 시절에는 거금이었던 뚜껑도 없는 전기 피아노를 사들이고
게임하는 것이 번거롭게 매번 게임기를 설치해야 하도록 만들었다.
어쨌거나 난 게임을 하지 말라고 아이들과 크게 싸우지는 않았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화려한 멋진 화면에 같이 감탄을 했는데
속은 쓰라렸지만 기왕 할 거면 마음 푹 놓고 대대적으로 즐기라고
그래야 한 보람을 느껴서 만족도도 클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을 하자니 매번 선을 연결해야 하는데
피아노는 그냥 앉으면 소리가 나니 편했는지 게임하는 시간이 줄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눈만은 조심하라고 잔소리 비슷하게 했었는데
띨 아이는 작은 게임 대회여서 1등이 가능했다는 겸손한 실력자이다.
그러니까 난 아이들과 게임에 대한 전쟁을 아주 잘 치렀다고 자부했었다.
순전히 내 생각대로 내가 환경을 만들고 그래서 성공했다고 믿었는데
이제와 교육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여건이 도운 것으로
아이들의 성향도 있었고 내가 휴대폰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도 있어서
일본에서 살았던 그 시절 주변 아이들이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게임보이를
아이들은 원하기는 했어도 사 달라고 떼를 쓰지는 못했었던 것 같았다.
다 커서 게임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본 적이 있었는데
사 달라고 하고 싶은 데 말은 대놓고 꺼내지 못하고 참아내는 표정에
그 가여운 그때의 눈망울을 기억해서 언제나 마음이 찡한 나에 비해서
아이들은 한때의 해프닝처럼 가볍게 아쉬움도 없이 기억해 내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아마도 아이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내가 사 주지 않아 자신들의 거금으로 산 첫 게임기라는 것에서
나만은 꼭 기억해야 한다고 잘 보관해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