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ungmom Oct 08. 2023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처럼 버렸다.

일관성이 없는 엄마


아마도 지금의 안정된 느낌으로 봐서 그럴 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정말 빈티가 나게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아이들의 어릴 적 물건은 추억 타령을 하면서 고이 모셔두었고

빈 상자도 언젠가는 쓰일지 모른다고 빈틈만 있으면 넣어 두었다.


이렇게 열심히 잘 보관하고 있었던 물건들 중에 쓰이는 것은 있는지

내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과감히 버리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 집을 정리하면서부터로 나에게서 물건의 의미가 달라지고

그 후로는 미련 떠는 일이 줄어들어 버리는 이유가 많아졌다.


그러니까 이렇게 현명해지기 전에는 씀씀이가 야무진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아끼라며 버리지 말라고 조심해 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랬던 결과로 딸아이는 혼자 살면서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두었는데

낡아서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셔쓰도 고장이 나서 쓰지 못하는 것들까지

모조리 그대로 가지고 살고 있어서 왜 이러고 살고 있냐고 물으니

엄마가 하던 대로 하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


3년 반 딸아이가 혼자서 잘 지낸 것은 정말 고맙고 대견한 일인데

물건들의 자리가 있는데도 나와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진열이 되어 있었고

코로나로 요가를 집에서 한다고 책상과 전기 피아노를 벽으로 붙여 놓아

내 입장에서 보면 엄청 헷갈리게 이해가 안 되는 신기한 집이 되어 있었다.


딸아이에게 왜 이런 것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니 하고 물었더니

내가 사다 놓은 것이고 내가 쓰던 것은 그냥 두어야 할 것 같았다고 한다.

딸은 딸대로 내가 챙겨 두었던 살림을 버리지는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그게 미안하고 나도 이제와 쓸데없는 것을 많이도 모아 둔 것에 한심했다.


누군가가 아니고 내가 그렇게 해 두었던 것이어서 헛웃음만 나오는데

정말 이건 왜 이렇게 두었을까 하는 질문에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이런 이유 없는 일을 할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그럼 3년 반 전에는 그런 인간이었었나 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이러고 뭐든 아끼면서 필요하면 이것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며

아이들이 그냥 버리라는 것을 내가 놔두었다고 하는데 기억에 없다.


딸보다는 나를 위해서 나의 궁상끼를 없애자고 집안을 뒤지면서

이제는 다 큰 아이들에게 가는 일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을

잘 버리지 못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가끔 한 번씩은 들려야 할 것 같다고

이런 궁상을 심어준 것이 나니까 내가 해결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막 버리기 시작했다.

버리자고 마음먹으니 버릴 게 얼마나 많은지 몰래몰래 가져다 버리다가

나중엔 대 놓고 딸아이가 보이는 곳에 모아 두었다가 가져다 버렸다.


딸은 내가 이러고 살았다고 한다.

순전히 내가 아끼면서 버리지 말라고 가르친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 와서 버리면서 살라고 한다며 일관성이 없다고 화를 내더니

심각한 병에 걸렸냐고 물으며 너무 달라졌다고 한다.


3년이나 지나간 약들부터 구분하고 하얗게 거품문 건전지도 버리고

아낀다고 안 썼던 우산의 손잡이가 끈적거려서 그것도 내어 놨다.

딸이 날 보고 무슨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처럼 과감하게 버린다고

예전의 엄마는 아니라는데 지금의 나는 비우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버리는 일에 탄력이 붙으니 망설임이 사라져 버렸는지

딸아이가 연구실로 출근을 하면 그동안 머릿속에 그려놨던 계획대로

뒤지면서 탈색이 되거나 굳어졌거나 끈적거리는 이유가 있으면 버렸다.

금이 가거나 이가 빠진 그릇들도 냄새나는 플라스틱 그릇도 버리고

부산에서 내가 보낸 소포의 포장지나 비닐 등도 차곡차곡 개어 버렸다.

아들이 쓰다가 놓고 간 체형이 달라져 절대로 입지 못하는 셔쓰도

면이 다 빠진 수건들도 고무가 삭아서 늘어진 운동복도 버렸다.


그래도 딸아이의 옷은 아이가 있을 때 의견을 물어 가면서 추려 냈는데

아이가 망설이면 내가 버려도 된다고 결심을 부추겼다.

이렇게 하고 나니 집안도 산뜻해지고 딸아이의 서랍이 널널해 졌는데

매일 뭔가가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니 버린다는 핀잔이 사라졌다.












떨어져 버린 책상 서랍을 실과 목공본드로 수리를 해 놓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아들의 기타를 열심히 닦아 케이스에 넣어 두었다.

딸이 하루종일 근무하는 날에는 무조건 집안을 뒤지면서 치웠더니

떠나는 날에는 만족이 되어서 인지 조금도 미련이 남지 않았다.


내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가 만들어 준 것인지 자리를 잡은 아들이 만들어 준 것인지

마음이 편해 생각이 단순해졌는지 버릴지 말지가 쉽게 결정이 되었다.

이런 것도 다 때가 있었는지 살만큼 살았다는 의미인지

신나게 버리고 부산에 와서 다시 신나게 버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큰 아들과 같이 지내며 얻은 습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