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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om Jun 25. 2024

무섭다고 느껴지는 하늘길

그저 아이들을 보러 가는 건데

이번 LA 가는 비행기에서 생각 정리를 해야 했었다.

이대로 생을 마치면 무엇이 아쉬운지 걱정이 되는지 등에

떠나온 집안은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해 두고 왔는지도

내가 가진 것은 아이들에게 잘 전달이 되어 쓰게 될 건지

어떤 약속을 해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는지 하는 것들

그런 다 쓸데없는 것들을 하나씩 집어 보게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에게 고통만 없다면 다른 걱정을 안 해도

잘 큰 아이들은 지금 이대로만 살아도 성공은 한 것이고

나도 이 정도면 잘 헤쳐나가면서 완성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비행기에 앉아서 무사히 도착하게 해 달라는 그런 것이 아닌 

잘못되면 한 번에 죽을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내가 밝아지고 밥을 먹으라고 주는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륙을 하자마자 잠 속으로 들어가서 흔들렸는지 몰랐는데

서 있기도 힘든 그런 요동 속에서도 밥을 나눠 주고 있었다.

받은 주스가 넘칠까 봐 얼른 반 이상 마셔버렸는데도

굴렁굴렁 넘치려고 하니 비빔밥을 비빌 짬이 없었다.

둥실둥실 흔들리는 속에서 밥을 먹으며 커피도 마시는데

쉬지 않고 흔들리는데도 다들 리듬에 맞춰할 건 다 했다.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일 년에 두 번 LA와 오사카를 비행기로 다녔었는데

그걸 모두 통틀어서 이렇게 많이 길게 요동을 치는 것은 처음 같았다.

지구의 기류가 이상하다는 뉴스는 많이 들어서 떠나는 날 주변에

태풍이 오고 있는지 확인도 했었는데 흔들림이 쉬지 않고 왔었다.


그동안은 비행기를 타면서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 겁을 주면 나는 객사하는 사주는 아니라고 했다며

호기 좋게 이 비행기는 나 때문에 무사할 거라고 장담도 했었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도 겁을 먹거나 걱정을 했던 적이 없어

긴 비행에 일어나 걷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었는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던 것 말고는 평온했었다.


마일리지를 위해서 무조건 대한항공만 탔던 덕분에

한국인의 총명함으로 당연하게 잘 도착할 거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다녔었는데 이번엔 겁을 먹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인가 할 정도로 느낌이 달라졌다.


아이들에게 가는 것이 이전까지는 비용과 체력에 달렸는데

이젠 비용과 체력이 넘쳐나도 지구가 허락을 해야 하는 것으로

내가 가고 싶은지가 아니고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구나 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감지했다.


달라진 지구의 짜증에 망쳐놓은 우리가 적응을 해야 한다고

점점 비행기의 흔들림이 심해지고 많아질 거니 익숙해지자고

예전 같으면 무슨 문제가 있나 하겠지만 그냥 흔한 일이라고

하늘길에는 당연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착륙을 한다며 땅을 향해 내려가는데도 비행기가 흔들렸다.

내가 먹은 멀미약의 약 기운이 없어졌는지 멀미를 하는데

멀미약을 먹고 비행기를 타서 멀미를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니글거리는 기분에 비행기가 얼른 땅에 내리기를 기다리는데

마지막까지 흔들리는 그 몇 분은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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