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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김을 보게 만든 일본집

일본집은 나이가 드니 더 춥다.

by seungmom

눈을 뜨고 이불로 머리끝까지 덮고 잤던 얼굴을 내밀었는데

코가 시리더니 내 입김이 보여서 놀래 다시 이불을 덮었다.


갑자기 일본에 와야 하는 일이 생겨 모든 일정을 뒤틀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아이들과 지내려고 미리 비행기표도 샀었는데

이것도 이 나이에서는 강행군인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이번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각자의 집에서 지내기로 하고는

나는 급하게 먹을 것을 챙겨서 부산을 떠나 고베집에 왔다.


일 년 반 만에 온 집은 저번에 3년 만에 왔을 때 보단 충격이 덜했다.

사람은 최악을 보내게 되면 뭐든 적응이 되는지 척척 해 냈는데

아직은 한겨울도 아닌데 해가 지면 집안에 온기가 사라졌다.


나를 이곳에 오도록 만든 날짜가 LA에 가는 날짜와 너무 가까워

LA로 가는 것을 관두고 나니 이참에 생각했던 물건 정리를 하자고

고베에서 지내는 시간을 여유롭게 늘려서 비행기표를 샀었다.


3년 만에 왔을 때도 오래된 물건들로 버릴 것이 많았는데

이번엔 미련 떨던 마음이 사라져 그런지 버리는 일이 쉬워져서

내가 읽을 거라고 들고 왔던 80년대의 책들도 모두 잘 싸서 버리고

줄어든 물건을 벽장 한 곳에 모아서 제습제을 넣어 두기로 했다.


매일 이런 일로 정신없으면서 버리는 날짜까지 정해져 있어

그 날짜에 맞춰서 다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엄청 서둘러야 했다.

습기 제거제 넣어 두는 장소가 줄어들도록 물건을 모았는데

그러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잊고 있던 물건에 새로웠다.


이 집을 사게 된 동기도 생각나고 이사를 혼자서 해 낸 것도

옷장을 옮기다가 깔려 죽을 것 같았던 사건까지 떠올렸는데

그랬던 집이 이젠 그저 보관소 정도의 역할을 하는구나 했다.


빨리 마치고 이 공간을 즐겨 보자고 열심히 했더니

점점 할 일이 없어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그랬더니 이제야 이 집이 춥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창이 많은 이 아파트는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회사에서 지어

제법 견고한 콘크리트 아파트로 맨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창이 많아서 햇볕이 드는 시간 동안에는 그냥 앉아 있어도 살만한데

해만 지면 갑자기 확 식어 버려 할 일이 없어도 움직여야 한다.

집안에서 입는 옷은 밖에 나갈 때 보다 더 많이 껴입고 있는데

그러니 몸이 두리뭉실해서 움직임이 정말 둔해 갑갑하다.











부산의 오피스텔보다는 훨씬 넓고 작은 방이지만 3개나 되는데

나는 베란다와 현관의 딱 중간인 식탁이 있는 공간에서만 지낸다.

작은 전기난로의 효과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 지속이 되는데

베란다와 붙어 있는 침대가 있는 방은 바깥이구나 하며 드나든다.











해서 침대의 이불은 자기 전에 전기담요를 최고로 해서 데워 놓는데

추워서 불편했던 등을 누워서 뜨끈한 요에 넓게 펴서 지지면서

얼마나 움츠리고 지냈는지 굳어진 사지가 늘어나고 있는 것에 놀랬다.

그렇다고 이런 온도로 잘 수는 없어 담요의 온도를 내리고 자는데

잠이 오기 전까지 휴대폰을 보면서는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이 차가워

손을 교대로 바꾸면서 이불 안과 밖이 얼마나 다른지 절실하게 느낀다.


그러지 않아도 비염으로 코가 막히는데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잔다.

잠이 들 때는 우아하게 목까지 덮었던 이불을 언제 그렇게 덮었는지

깨어서 보면 몸을 작게 말어서 머리까지 모두 이불속에 두고 있었다.

이게 나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나 하지만 정신이 들면 심각해져서

얼굴을 이불 밖으로 내미는데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해진다.


벌떡 일어나면 좋겠지만 당장 입을 옷도 습기로 눅눅해져 있어서

떨면서 전기난로를 켜 놓고 햇볕이 들어오게 블라인드를 올리고

입을 옷을 난로 앞에서 흔들면서 밤새 스며든 습기를 떨어낸다.


전에는 손 하나 씻자고 뜨거운 물을 기다리는 것이 낭비 같았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런지 한참을 추워 떨면서 기다려야 해도

뜨거운 물이 나와서 손을 씻고 있으면 추웠던 몸까지 보상을 받아서

한참을 틀어 놓고 흘려보내는 물도 데우는 가스도 아깝지가 않다고

버젓이 매번 뜨거운 물을 쓰는 것 보면 가치관이 달라진 것 같다.


나는 이 일본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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