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아침을 누린다.
지진 대비를 하면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다.
꼭 필요한 것은 들고나가자고 챙기면서 보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무리 오래된 것이어도 아이들이 썼던 흔적에 이야깃거리가 있었고
내가 기록한 일기장은 나를 흐트러지지 않게 지켜준 것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인가 하는 것에서 한참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감정을 느끼면서 보냈던 새벽 시간은
내가 잊고 살던 물건들에 대해서 기억해 두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안일하게 편안하게 그저 매일매일을 살아 냈던 것 같다.
만약에 큰 지진이 온다면 이곳까지 피해가 있을 건지 많은 생각을 했는데
막상 대비를 하자니 구석구석 잘 모셔두고 잊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오사카에서 20년을 살면서도 지진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한 번은 가구를 사려고 구경을 하는데 가구점 점장 아저씨가 말을 걸어
왜 지진 걱정은 하지 않냐며 가구가 넘어지지 않게 되어 있는지를 보라고
태풍도 지진도 별로 없는 오사카 사람들이 가장 안일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일도 새삼스럽게 떠올리면서 지진이라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큰 지진이라는 것에 처음 겪는 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것 같다.
예언의 날짜가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큰 지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반드시 오긴 올 거라고 그런데 날짜는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속 매일 오늘이 될지도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대비를 하면서
그래도 생활은 이 지진에 치여 쪼그라들지 않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고문이 될 것 같은데 바위를 지고 웃으라고 하는 꼴이다.
일본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 중에 이 문제도 포함이 되었었는지
이제는 버리기도 그렇다고 껴안기도 버거운 이 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에 나도 내가 많이 답답하다.
오늘부터는 매일 어제의 대비를 해 가면서 살아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제와 같은 오늘이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 오늘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