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독립
젊었는 때엔 혼자 사는 것이 자립이라고 하며
독립을 성취한 것으로 대단하게 평가해 주는데
나이가 들어 혼자 사는 것은 독거인이라고 하며
아무리 혼자서 즐긴다고 해도 초라해 보이는지 불쌍하게 본다.
혼자서 먹는 끼니는 배부르게 먹어도 궁상맞다고 하고
매일 재미있게 열심히 살아도 외롭게 보인다고 하며
잘못하면 고독사가 뒤를 따라오게 된다며
이것이 나를 대신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장본인인 나는 이 독립을 쟁취한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장 큰 것은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난 것이다.
혼자 사는 체질인지 혼자서 밥을 먹으면 먹는 양이 조절이 된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느끼져 두 번 손이 가지 않는다.
미국에 아이들을 놔두고 일본으로 나와야 했을 때 나는 혼자의 삶을 마음먹고
내가 살 수 있는 장소를 한 번은 꼭 해 보고 싶다던 한적한 전원생활로 시작했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산이 보이고 논과 밭이 보이는 그런 작은 집을 구했는데
그 집은 아이들과 처음으로 떨어져 생활을 하는 나에게 포근함을 주었다.
화려하게 바뀌는 계절에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었다.
창문에 붙어 있는 벌레들의 배와 다리를 놀래면서도 억지로 봐야 했고
태풍에 흔들리는 벼를 보려고 뒤집어지는 우산을 포기하고 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5년이나 살았는데 이젠 계절이 가져다주는 감동도 적어지고
이런 안일함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도전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에 다시 이사를 했다.
복작거리는 도시로 수영장이 가까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를 구했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겨우 한 층을 내려가는 것에도 힘에 부쳤고
논두렁길을 걸으며 했던 걷기 운동이 무릎에 부담이 되는 것 같아 물에서 하려고
경제적인 여건에 부담이 되지 않게 찾았더니 우연하게 산 중턱의 집이 되어
자전거로 해결하던 생활을 포기하는 대신 멋진 경치와 신선한 공기를 얻었다.
도심지는 시골보다는 외국인의 편견이 덜한 것 같아 마음이 편했고
노인 인구가 많고 산비탈이 많아 그런지 마켓에서 배달 서비스도 해 주었다.
무거운 생수를 자전거도 없이 어떻게 사다 먹을 것인지 고민을 하면서
이삿짐에 생수를 사서 넣어 두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이렇게 혼자 살게 된지 6년이 되어간다.
미국에서 일 년의 반을 보내니까 정확히 하면 3년이 되어 가는 거다.
그 3년의 시간을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의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썼다.
거의 다 아이들 것으로 사진과 책등 추억거리들을 추리고 버렸다.
처음엔 이런 것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서 울면서 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나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지 덤덤해졌다.
내가 한국에 있다면 여기서 다문화라는 단어가 빠질 텐데
이곳이 나의 나라가 아니니 나는 다문화人 인 셈이다.
일본이라는 곳에는 다문화 같은 부드러운 호칭은 없다.
그런 이곳에서 혼자서 살고 있는 중년 독거인이다.
일본에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 인 것에 긍지를 가지며
그 많은 구속 속에서 옴짝달싹을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지나
내가 나를 보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용기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다문화 독거인으로 흡족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