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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띵 Apr 26. 2024

엄마, 나 전세 사기 당했어.

드디어 실타래를 풀다.

잠시 후 종착역인 여수엑스포역에 정차하겠습니다.


 가족들에게 전세 사기 당한 사실을 말하기로 다짐했던 주말, 고향에 도착했다. '그나저나 말을 어떻게 시작하지? 무덤덤하게 말하면 되려나?'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얼굴을 보자마자 말하는 건 아니다. 오랜만에 뵙는 부모님과 안부 주고받는 시간도 필요하니까. 더욱이 사랑스러운 조카와 놀기도 해야 하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혼자 사색하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연차까지 붙여 내려온 4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름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계획들은 이번 글에선 뒤로하고 제목에 걸맞은 본론부터 시작한다. 평일 아침, 조카를 등원시키고 어머니와 둘만 남게 됐다. 괜히 "엄마, 커피 마실래?", "오늘 기분 어때?" 하며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몇 번 타이밍을 보다 툭 뱉었다.


엄마, 나 할 말 있어.


 아직 본론을 얘기한 것도 아닌데 묵직한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머니는 3년 넘게 쓰고 계신 Z플립 액정을 응시한 채 대답하셨다. "응, 무슨 할 말?"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그럼 되는데... 어라, 갑자기 왜 눈물이 나지?


 말하기 전부터 눈물 흘리는 건 예상 시나리오에 전혀 없었다. 그런데 미친 듯이 눈물이 났다. 엉엉 울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 달려오셨다. 아무 말 없이 울고 있는 나를 끌어안아 주시며 말했다. "왜 그래, 아들. 무슨 일이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미안해."


 서울에서 오랜만에 내려온 아들이 울면서 미안하다고만 하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영문 모른 채 어머니도 울기 시작했다.

아들, 무슨 일이야 말을 해봐. 엄마는 다 괜찮아.
어디 아픈 거야? 그런 거 아니지? 뭔데 그래 아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진정시키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서류 하나를 꺼냈다. 그건 바로 '전세사기피해자 결정문'이다. 어머니는 눈이 똥그래진 채로 종이를 3초 정도 응시하셨다. 곧이어 다시 눈물을 터뜨리셨다. "아이고, 어떡하냐... 그 큰돈을... 우리 아들 어떡해."




 힘겹게 눈물을 삼키며 지금까지 겪었던 상황들을 얘기했다. 어머니는 듣는 내내 안타까워하셨다. 아들이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사실도 슬프지만, 그동안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고 하셨다.


왜 이제야 얘기했어, 이런 건 진작 말해야지.
가족이란 게 뭔데.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이 사실을 말하기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엄마'에게 털어놓고 나니 기분이 오묘했다.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은 상황은 그대로지만 왠지 모를 힘이 생겼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쉽게 무너지지 않을 힘. '이래서 가족이구나...' 



 어머니도 감정을 추스르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아들, 엄마 커피 마시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오랜만에 방문한 동네는 다양한 저가 커피 매장이 생겨서 좋았다. 평소 어머니가 마시는 '아메리카노 연하게, 얼음은 적게' 한 잔을 포장해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커피 여기......"


 그런데 부엌에서 어머니가 주저앉은 채 울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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