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인의 충칭 여행기

by 승띵

중국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덕분에 상하이 여행을 시작으로 칭다오를 거쳐 충칭까지 다녀왔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특별한 애착이 있던 건 아니다. 그저 적당한 시기에 여유가 겹쳤을 뿐이다.


영화 <중경삼림>의 '중경'이 충칭이라고 한다. 다만, 실제 영화 촬영 배경지는 홍콩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결국 나는 이름만 익숙할 뿐,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한 채로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나의 평면적인 상상을 비웃듯 입체적으로 펼쳐졌던 이 도시의 매력을 잃기 전에 하나씩 기록해보려 한다.



1. 8D 도시, 위아래가 없는 사이버펑크의 실사판



충칭의 지형은 마치 테슬라 주가와 비슷하다. 한없이 치솟는 오르막인가 싶다가도 예고 없이 내리막으로 바뀐다. 나는 분명 건물 1층으로 들어왔는데 창밖을 내려다보니 10층 높이의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오죽하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없는 도시라고 할까?


여행 내내 주요 이동 수단은 택시였다. 하루 종일 걷다 보면 택시에서만큼은 잠시 눈을 붙이며 쉴 법도 하다. 하지만 내 눈은 창밖으로 스치는 다이내믹한 풍경을 좇느라 쉴 틈이 없었다.



가장 기대했던 '홍야동'과 건물을 관통하는 '리즈바역'은 실제로 보니 훨씬 더 압도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나에게는 경이로운 이곳을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다니는 충칭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2.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대륙의 관광명소


충칭의 여러 관광지를 다니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충칭은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도시라는 것이다. 대개 유명 관광지라 해도 구색만 맞춘 아쉬운 장소들이 섞여있기 마련인데 충칭은 달랐다. 어딜 가나 개성이 넘쳤고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과거의 흔적을 세련되게 탈바꿈한 공간들. 대륙 특유의 압도적인 스케일을 유지하면서도 구석구석 섬세한 디테일 또한 놓치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잘 기획된 쇼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충칭이라는 도시가 어떤 식으로 브랜딩 되어있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루는 근교의 우롱 천생삼교(天生三橋)를 다녀왔다. 영화 트랜스포머 촬영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산책 코스만 2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걷는 내내 전혀 지루함은 커녕 압도적인 대자연의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웅장하면서도 평화로운 그 풍경은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다정한 욕심이 생겨났다.



3.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진심은 통했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무질서한 이미지와 3200만 명의 인구가 사는 대도시 충칭. 솔직히 작은 배려나 친절 따위는 기대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나의 얄팍한 편견을 무너뜨렸다.



만두 가게를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가 뚝 그쳤기에 신기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알고 보니 뒤에 서있던 아저씨가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고 계셨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내가 주문을 마칠 때까지 우산의 각도를 조절해 주시던 그 배려가 아직도 기억난다.


이건 솔직히 반할 만하잖아?!


근교 투어에서 만난 젊은 가이드는 말 못 하는 타국인을 위해 매 순간 메신저 번역기로 일정을 알려주었다. 식당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한국인이라는 말에 말없이 반찬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내가 걱정했던 무질서는 전혀 없었다. 본인 그릇에만 적당량을 덜어 정갈하게 식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경험해보지도 않고 편견을 가진 나에게 묘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괜한 걱정과 염려는 결국 내가 만든 벽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4. 훠궈의 고장에서 마주한 맵찔이의 비애


한국에서 김밥천국을 마주치듯 충칭에서는 어디서나 훠궈집을 만날 수 있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코끝을 찌르는 강력한 마라 향. 나 같은 '맵찔이'에게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본토의 훠궈를 즐기기엔 내 위장이 턱없이 약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반전은 숙소 앞 작은 꼬치집에서 시작됐다. 늘 현지인으로 북적이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꼬치 몇 개를 골랐다. 즉석에서 숯불에 구워 마라 소스를 발라내 주는 꼬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것은 내가 알던 고추장의 매운맛과 차원이 다른 매력이었다. '얼얼하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혀끝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극적인 맛에 압도당한 나는 결국 다음 날도 그곳을 찾았다. 나를 보자마자 "한궈런!(한국인!)"라고 외치며 환하게 반겨주시던 아주머니의 웃음이 지금도 선명하다.


사실 나는 먹는 것에 큰 기쁨이나 추억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충칭의 길거리 꼬치는 충격적인 맛있음이었다. 이 감동을 기록하고자 블로그에 정성껏 후기를 작성했다. 훗날 내 글을 보고 그곳을 찾은 누군가가 정말 맛있었다는 감사 댓글을 남겼다. 나의 기록이 누군가의 여행에 작은 행복이 되었다는 사실은, 충칭에서의 기억을 더욱 뿌듯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겨주었다.




무채색 일상을 보내던 K-직장인에게 충칭이 선사한 다이내믹은 남은 2025년의 활기를 북돋워주었다. 도시를 향한 그들의 자부심, 그리고 이방인을 보듬는 세심한 배려. 그 다정함 속에서 비로소 편견이라는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의 조각들을 정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준 충칭 여행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바이, 짜이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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