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에 이사하기

by 승띵

최근 이사를 했다. 일부러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삿날을 잡았다. 귀신이나 악귀가 돌아다니지 않아 해를 끼치지 않는 날이라고 한다. 지난 3년 동안, 내 삶은 손(客)들로 북적였다. '전세사기'라는 불청객이 내 일상과 평온을 헤집어 놓았고, 그 난장판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귀인이 내민 따뜻한 '손(手)'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되면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피해자 결정 후 3년 내에 신청해야 한다는 조항 앞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그 지독했던 날들이 벌써 3년 다 되어가는구나' 씁쓸함이 밀려왔지만 한편으론 그 모진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낸 스스로가 대견했다.


귀인과 함께 살았던 양재동에서의 추억.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오답 노트가 아니었을까? 전세사기를 당한 건 분한 일이지만, 그 덕분에 나는 사람의 온기가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지 절실히 배울 수 있었다. 텅 빈 마음을 글쓰기로 채우며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것도, 결국 그 시간들이 내게 남긴 흔적이니까.


그동안 맘고생을 다독이듯 새로운 보금자리는 참 마음에 든다. 가장 좋은 건 동네의 정적이다. 허허벌판의 삭막한 고요함이 아닌, 사람 사는 기운이 맴도는 따뜻한 공기다. 집 근처 공원과 도서관, 그리고 묘하게 정겨운 주민센터까지 가까이 있다.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내 취향으로 이 공간을 채워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 귀인도 이사를 간다. 나를 위해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어주던 집을 정리하고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됐다. 그 소식에 나는 기뻤다. 시기와 질투가 앞섰던 내가 누군가의 앞날을 이토록 응원한 적이 있었나. 타인의 행복을 빌어줄 만큼 내 마음 근육도 조금씩 자라난 모양이다.


결국 모든 것은 흘러간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일도,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머물렀던 삶도. 이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흘러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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