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서양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사람들도 동양 사람을 만나면 먼저 "중국인인가요? 아니면, 일본인?"하고 묻는다.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하면 말을 잇지 못하고 난감해한다. "그럼, 한국인?"하며 물어봄직도 한데,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처럼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한국이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래도 요즈음 북한의 핵 문제가 세계적 뉴스거리가 된 탓인지, 남·북한의 대치상황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듯하다. 기껏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 아니면 남한? 설마 북한은 아니지?"라며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 태반. 아마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사람이라면 한두 번 경험했을 법하다. 그렇다 치더라도 네덜란드와 한국은 아주 오래 전에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65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60여년 전 망망 바다에서 길을 잃고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다가 조선과 조우한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1630~1692이 그 주인공이다.
암스테르담에 머물면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들어보았던 특별한 외국인인 네덜란드인 하멜에 대하여, 네덜란드에서는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네덜란드 어딘가에 혹시 하멜의 흔적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암스테르담에서 80km정도 떨어진 고린헴Gorinchem에 하멜 박물관이 있었다. 고린헴은 하멜이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곳이다. 햇빛과 바람을 음미하기에 더 없이 좋은 봄날 동기언니인 문선언니와 함께 하멜 박물관을 찾았다. 벽돌로 쌓은 아치 형태의 창과 계단식으로 생긴 상부가 독특해 보이는 3층짜리 건물이다.
1층 전시실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1층 전시실은 하멜이 살던 17세기 당시의 생활양식을 짐작케 하는 물건들로 꾸며져 있다. 침상, 벽난로, 하프시코드(옛날 우리나라 풍금처럼 생긴 건반악기), 다양한 크기의 담배파이프, 오늘날의 지리와는 거리가 있는 세계지도, 나침반, 물의 깊이를 측정하는 납으로 만든 수심 추, 천문 관측 장치 등…, 특히 눈에 많이 띄는 항해용 물품들을 보며 당시 해상을 제패했던 네덜란드인들의 왕성한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배에서 그들이 즐겼던 음식도 있다. 햄, 치즈, 말린 생선, 피클, 그리고 맥주! 크~!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난다. 어쩌면 이렇게 지금의 식품과도 똑같은지 신통하기만 하다.
하멜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2층에 있는 미니어처이다. 하멜표류기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극적인 미니어처인데 그냥 봐도 재미있고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태풍으로 제주도에 표착한 하멜 일행과 구조하는 제주 군사들, 제주도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적발되어 한양으로 압송되는 하멜 일행…, 그리고 갖은 간난 끝에 마침내 조선을 탈출하기까지, 하멜이 조선에서 겪었던 전 과정을 상세히 표현하고 있다. 인형의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작은 크기인데도 사건사건마다 어찌나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왕의 심문을 받는데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 볼기를 맞는 모습 등 한 인간으로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이들이 직면해야 했던 불안함과 두려움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도 이렇게 미니어처로 보니 미안하지만 너무 귀여워 보인다. 조선에서는 그들을 돌려 보내주지도 않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해서 전라도로 유배되어 잡역에 종사하면서, 밭도 갈고 지게도 지고 빨래도 하고 물도 긷고...... 갖은 고초를 당하며, 아무런 미래도 보상받지 못하고 살아가야 했던 그들.
장장 13년 후, 1666년에 드디어 탈출 성공! 그 긴박함이 인형의 몸짓에서 드러난다! 항해를 시작했을 때 64명이던 사람들은 난파당할 때 절반 가까이 죽고 36명만이 살아남아 조선에서 13년간 지내다가 겨우 8명만이 탈출에 성공했다. 일본의 나가사키가 그들의 기착지였다. 하멜표류기에 의하면, 최초 탈출자 8명이 떠난 당시에 조선에 8명이 살아남아 있었는데 나중에 7명이 또 조선을 떠나고 1명만이 조선에 남아 살았다고 한다. 엄중한 감시를 당하며 뭐만 잘못하면 볼기를 맞기 일쑤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 구걸도 하고 관에서는 노동력을 착취하질 않나 하나 둘 사람들은 죽어가고 엄청난 간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겨우 탈출했다니 참 슬픈 기록이다.
<하멜 표류기>는 17세기 동인도회사 소속의 네덜란드 출신의 서기였던 하멜이 일행 36명과 함께 목적지인 나가사키로 가지 못하고 미지의 세계였던 조선 땅 제주도에 표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후로 일본으로 다시 탈출하기까지 조선땅의 이방인으로서 억류되어 있었던 13년 20일 동안의 기록이다. 내가 짐작했던 것은 표류한 그들이 조선에서 적당히 호의호식하며 조선을 살핀 후 나중에 고향이 생각나 잘 돌아온 후에 책을 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에 13년이나 있었다는 사실도, 박연이란 조선 이름으로 이름까지 바꿔가며 비슷한 케이스로 먼저 조선에 들어와 평생을 살았던 벨테브레와 만났었다는 사실도, 시대상황과 맞물려 나름 조정의 골치거리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된 정보였다. 네덜란드로 돌아간 다음에 이 기록을 남긴 목적이 조선에 억류된 기간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한 일종의 보고서였다는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역사의 귀중한 기록이 경제적 동기로 인해 남겨졌다니!
박물관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하멜의 동상도 있다. 조선을 유럽에 처음으로 알린 <하멜 보고서>를 왼쪽 팔에 낀 채 오른손으로는 먼나라 조선을 가리키듯 허공을 가리키며 서 있다. 이와 동일한 동상이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 위치한 하멜 기념관에도 있다고 한다. 강진은 1657년에서 1663년까지 6년 동안 하멜이 머문 곳이다. 하멜의 동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툭 튀어나온 동그란 두 눈, 웃고 있는 입,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머리,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 있는 제주의 돌하르방 한 쌍. 해외에서 외교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생김새만큼이나 질감도 독특한 돌하르방을 보면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