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4

Welcome to Banff National Park





4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남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질구레한 집안일들과 토요일에 있을 하이킹 여행이었다. 금요일 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뒹굴었어도 피로가 전부 사라질까 말까였을 테지만, 휴식은커녕 계속 바삐 집 안팎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저녁을 먹을 때가 되어서는 무거운 눈꺼풀을 지탱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혹여나 그는 내일 제시간에 눈을 뜨지 못할까 봐 간단하게 인스턴트 라면과 밥을 후딱 말아먹고 나서 5분 단위로 여러 개의 시간을 설정한 뒤, 9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일찍 잠에 들었다. 



다행히 그의 기우와는 다르게 첫 번째 소리에 침대를 벗어난 남자는 간단히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카풀을 해 줄 친구와 만날 장소로 향했다. 아침은 다 같이 모여서 먹을 예정이었기에 그는 빈 속으로 열차에 올라탔고, 제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다. 7시가 안 되었던 때였음에도 어둠을 벗어나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고 있던 하늘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잠시 뒤 검은색 스포츠카가 창문을 내린 채로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미안. 좀 늦었네. 어제 늦게까지 논문 쓰고 자니까 너무 피곤하더라." 



"얻어 타는 입장인데 뭘. 내 생각엔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할 것 같다 야."







고속도로 중간에 위치해 있던 한 주유소에서 모인 다섯 명의 사람들. 각기 다른 아침 메뉴를 포장해 차 안에서 해결하면서 그들은 점점 국립공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섰다. 얼마 안 가 이 지역이 익숙했던 친구가 고른 이날의 장소에 도착해 간단히 옷가지와 짐들을 정비하고 그들은 곧장 걸음을 옮겼다. 하이킹이 익숙지 않은 몇몇 인원들을 고려해 선택한 이곳은 경사가 다른 곳들에 비해 무뎌서 몸이 가벼웠던 남자 입장에서는 오랜만의 등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도착한 중간 지점에는 계곡물과 함께 아직 다 녹지 않은 눈이 경사면에 쌓여있었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조금 험난한 여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어 그전에 충분한 휴식과 함께 모두 잠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는 직전 여행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울창한 수풀과는 다른 모양의 무미건조하면서도 웅장한 암석들을 흑백의 톤으로 담고서 다시 걸음을 재촉해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너무 힘든데? 난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올라와. 정상에서 보는 뷰는 차원이 다를 거야." 



인생 첫 하이킹이자 본인보다 한 살 많은 인도에서 온 형을 뒤로하고 그는 계속 정상으로 향했다. 남자와 새벽부터 함께한 그의 친구마저 숨을 헐떡일 정도로 마지막 10분은 보통내기가 아니었지만, 결국 그들은 함께 산 정상에 도달했다. 도착해서 꺼내 본 스마트폰에서는 고도 742 미터가 표기되어 있었다. 별도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그들을 포함한 다른 등산객들은 주변 바위 비탈에 기대어 숨을 돌렸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남은 일행들을 기다리며 남자는 이때를 위해 아껴놓았던 에너지 바 두 개를 모두 먹어치웠다. 



약간의 스모그가 끼어 있던 날씨가 오히려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움직이면서 두 남자는 저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는 산맥들과 기다란 강줄기로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한 번이라도 와 보려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광활했던 경치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들이 보였고, 그렇게 다 같이 어정쩡한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갔다. 







예상했던 대로 정확히 오후 4시에 맞춰서 그들은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수고했다며 서로에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화장실을 잠시 들른 뒤에 그들은 차를 타고 근처에 있던 타운으로 넘어가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자 했다. 이곳에서 남자는 캘거리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푸틴이라는, 감자튀김에 그레이비소스와 치즈를 더한 캐나다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었는데, 미국에 있을 때부터 그레이비소스를 멀리했던 그의 입맛이었지만 워낙 허기졌던 것과 더불어 무얼 더해도 맛있을 재료들이 섞인 음식이어서 그랬는지 남김없이 한 그릇을 싹 비워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고속도로 바로 옆에 있던 폐건물에 들렀다. 일행 중 한 친구가 스케이트보드 타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이 장소가 그들 세계에서는 나름 성지 중 하나라며 잠깐 이곳에서 바퀴를 굴려보고 싶다는 말에 잠시 차를 멈춰 세웠다. 오래전에는 작은 상점과 함께 미니카트 코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온갖 낙서와 먼지들로 뒤덮여 있던 이곳. 조금 오래 보드를 타나 싶었는데 하이킹의 피로감과 직전에 마셨던 몇 잔의 맥주 때문에 그는 머리가 아파 바로 신발끈을 풀었다. 다들 지친 기색들이 역력한 채로 처음 모였던 주유소에 내려 작별인사를 나눈 뒤 남자는 친구와 함께 다시 그의 차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캘거리 타워가 보일 때 즈음 고개를 뒤로 돌리니 뒷좌석에 타고 있던 인도인 형은 많이 피곤했는지 입을 벌린 채로 잠에 들어있었다. 



-Fin

Copyright ⓒ SY Lee   All Rights Reserved. 

이전 06화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