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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Jul 19. 2024

익숙한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있습니다. 부지런하게.

상반기에 기록한 사진들을 돌아보며 써 내려간 짤막한 회고록





어쩌면 이 글의 제목이 모든 내용을 대변하고 있어 굳이 장황하게 문장을 펼쳐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플랫폼과는 다르게 이곳만이 유일하게 나의 사진과 글이 자유로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마지막 글 이후로 어느 정도 공백이 있었던 탓에 굳어진 머리와 손가락은 한동안 갈피를 못 잡고 글씨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고, 심지어는 "에잇! 오늘은 안 되겠다!" 라며 웹페이지를 열어 로그인을 한 지 채 3분이 지나지 않아 곧바로 탭을 닫아버리는 날들 또한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몇 주 정도 멘붕 상태로 계속 시간을 허비하던 중에 이대로는 정말 답이 안 나오겠다 싶어 가장 강력한(?) 처방을 내렸다. 바로 이전에 내가 남겼던 글들을 다시 열어보는 것이었다. 항상 손이 쉽게 가지 않는 일들 중 하나인데, 사진의 결과물을 바라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는 이 이상 잘 마무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음에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뒤에 먼지 쌓인 페이지들을 다시 열어볼 때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은 정말 그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매번 몸에 있는 모든 신경들에 찌릿한 기분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 덕분에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그런 부족함으로부터 형성된 일련의 맥락들이 쌓이고 쌓여 내가 솔직하고,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적당히 담백한 글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캐치하고 나니 잃어버렸던 집중력은 곧바로 되돌아왔고, 속으로 말 한마디를 되뇌며 다시 예전처럼 막힘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할 수 있었다.



"유연하게.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한국에 돌아와 방 한쪽 구석에 보관되어 있던 컴퓨터를 다시 꺼내어 책상에 올려놓았던 게 아직까지도 며칠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집안 곳곳에 보이는 2024년 종이 달력의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치우쳐진 것을 볼 때마다 그와는 상반된 감정 또한 생생하게 내 마음속으로 전달됐다. 어떤 이에게는 늘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서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패턴을 깨부술 수 있을 자그마한 이벤트가 주어지기를 희망하며 흘려보냈던 90여 일의 시간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이 기간이 31년 인생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큼 꽤나 다이나믹하게 흘러갔던 것 같다. 예상치 못했던 만남과 이별, 그 속에서 느꼈던 기쁨, 슬픔, 당혹감, 그 외의 다양한 감정들. 몸과 마음 모두 하루하루 랜덤으로 달라지는 컨디션에 맞추어 매번 설정을 바꿔주어야 했을 만큼 나의 나날들은 틀에 박히는 것 하나 없이 스트레이트로 내달렸다.



"스트레스 상황이 인간을 발전시킨다."라는 말에는 아직까지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올해 상반기를 겪어보고 나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의 지점까지 도달하게 됐다. 평일, 주말을 포함해서 온전히 집에서 쉬었던 게 내 기억에는 단 하루밖에 없었는데, 솔직하게 이곳에서 내 마음을 털어놓자면 불안감 반, 즐거움 반 이 서로 뒤엉킨 채로 카메라를 들고 수도 없이 바깥을 서성였던 것 같다. 몸으로 하는 것은 한번 놓기 시작하면 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옛날부터 가까이하면서 살아왔기에 제동을 거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힘든 행위로 다가왔다. 더욱이 캐나다에서 좋게 말하면 '자유롭게', 나쁘게 말하면 '남 생각 일절 안 하고 공격적으로' 사진을 찍었던 내 입장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는 나에게 크나큰 긴장감을 가져다주었고, 작년과 전혀 다른 분위기와 그 속에서 느껴지는 극명한 온도 차이에서 올해 내가 어떻게, 어떤 기록을 해 나가야 할까 라는 고민을 조금 더 경직된 자세로 틈 날 때마다 하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이 과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헤쳐나가면서 나 자신이 여러 방면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고 생각한다. 멀리 가지도 않고 딱 5년 정도로만 과거로 돌아가 이 상황 속에 놓였다고 가정해 본다면 나는 아마 "역시 한국에서는 찍을 게 없어!" 라며 드라이 캐비닛에 장비들을 고이 모셔놓은 채로 틈틈이 또 다른 외국행을 도모했거나, 혹은 충무로 근방을 돌아다니며 가장 적절한 가격에 카메라를 전부 다 팔아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 상황을 작년 말부터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로 인해 여러 아이디어들을 끄적여가며 새로우면서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갈 만한 프로젝트성 기록을 해 보자는 결심으로까지 이를 수 있었다. 좋아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중적으로 다뤄본 적은 없었던 테마여서 나조차도 어떻게 될지 예상이 1도 안 갔지만, 운이 좋게도 몇몇 결과물들이 해외 매거진으로 출판되거나 웹사이트에 소개되는 등의 성과를 예상보다 조금 이른 기간 내에 이루어냈다. 내 사진들을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친구들 또한 이런 사진들에서 내 능력이 더 발휘되는 것 같다는 메시지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내 만족, 과거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 셔터를 누른다고 매번 남들에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이런 눈에 보이는 호응이나 결괏값이 전무했더라면 귀국 이후에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어떤 형태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조금은 특이점이 보이게끔 찍거나,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기록하자.'라는 말로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발전하고자 하는 나의 단순한 소망에 의해 탄생했는데, 빛과 사물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배움으로써 내 사진 영역의 확장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고 싶었고, 또 하나의 포인트는 바로 프레임 속에서 인물이 배제된 사진들은 어떤 힘과 감정들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궁금증에 의해서였다. 어떤 사진들은 획기적으로 보이지만 몇몇 컷들은 주제에 들어가기 다소 애매할 정도로 진부하거나 누구나 한번 즈음 시도해 보았던 것을 약간 다른 듯 비슷하게 카피해서 만들어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그만큼 나 스스로가 세워둔 기준 속에서 꽤나 엄격한 시선으로 결과물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내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음을 멈추기에는 내 마음속에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너무도 가득한 지금이다. 



올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흑백사진'에 대한 나의 생각과 표현은 더욱 짙어져 가고 있다. 이 두 개의 요소가 서로 만나 상당히 좋은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컬러보다 단순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깊게 들여다볼수록 이 톤만큼 Colorful 한 방식도 없다는 생각, 그리고 이런 세심한 한계로 인해 피사체에 많은 집중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과 관련된 것과는 별개로 나는 모노크롬 톤이 나 스스로를 편하게 드러내기에 최적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가을 즈음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흑백사진을 찍냐고. 방금 언급한 말도 그에게 건네주었지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그가 이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컬러화면으로 TV를 즐긴 세대의 사람이야. 그래서 이 톤이 나에게는 더 특이하고, 때로는 이상하고, 흥미롭게 다가와. 어른 세대들이 처음 컬러로 된 뉴스 혹은 스포츠 경기 방송을 접했을 때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싶더라고. 물론 나도 컬러를 사랑하지만, 내가 조금 더 길게 나만의 사진 여행을 하려면 흑백사진을 택해야 그나마 희망이 보일 것 같더라."








주제와 관련된 장면들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들을 할애했지만 인생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보다는 순전한 우연으로부터 탄생한 것들이 훨씬 많았다. 월척을 낚거나 아무 의미 없이(의미가 없었다기보다는 집중이 흐트러졌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한참을 헤매고서 집 도어록을 눌렀던 경험을 모두 겪었기에 이 울타리 안에만 갇혀있기에는 조금 위험할 것 같아 4월 이후로는 카메라를 들고 밖을 나간 날에는 반드시 한 장의 사진을 찍고 돌아오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울이 주 무대가 되었고, 이전에 자주 갔었던 곳과 새로운 장소들을 찾아다니면서 아주 특별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드는 구도와 장면을 잡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시켰다. 올해 참 이상하게도 토요일에 빗줄기를 많이 접했는데, 옷가지가 젖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내가 사진을 만나고 나서부터 거무스름한 흐린 날씨로부터 만들어지는 특유의 톤을 잡기 위해 부단히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겼던 것을 생각하면 이 매체가 가진 특유의 동기부여와 힘이 상당히 중독성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레임 속 인물들과의 물리적 거리는 다시 멀어지거나, 심지어는 아예 제외가 된 채로 담겼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이런 것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난날에 대한 자기반성과 더불어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멀리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아름다운 기록을 할 수 있으며, 결론적으로는 환경이 아닌, 나의 시선과 관점의 미숙함이 내 사진에 불만족을 야기시켰다는 것을 올해 제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물론 다시 '이방인'의 타이틀을 달게 된다면 나는 이전처럼 최대한 타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겠지만, 내가 가볍게 부르듯이 하는 이런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는 올해 덕분에 계획했던 플랜 A와 더불어 또 다른 제2의 루트로도 내 실력이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남은 6개월의 시간 동안 어떤 사진들이 나에게 다가올지 기대보다 불안이 크게 앞서서 나를 압박하고 있다. 2차례의 해외여행과 한 번의 국내 소도시 탐방이 계획되어 있는데, 머릿속에 세워진 기대치라는 장벽이 너무나 높게 형성되어 있지만 이런 기회들을 잘 살려 한번 더 뛰어넘어 볼 용기를 내 본다. 물론 항상 이렇게 시니컬하고 괜히 무게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내던지면서도 외출 전 카메라를 가방에 넣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항상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보다 설렘을 크게 느끼는 나는 참 가식적인 사람이 아닐까? 그래도 투덜대며 의무감으로 셔터를 누르는 것보다는 몇백 배 더 나은 상황이니, 곧 다가오는 주말에 또다시 집중과 무의식을 왔다 갔다 하며 거리에 숨겨진 보석들을 찾아 나서볼까 한다. 과거의 나를 넘을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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