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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Sep 13. 2024

'눈과 얼음의 땅'이라 불리는 곳에서의 짧은 여름 나기

처음 밟아본 북해도의 땅.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인연과 이야기들.





7월 말에 가족과 함께 홋카이도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오사카와 오키나와에 이어 나에게는 세 번째가 되는 일본행이었는데, 별 탈 없이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크게 이질감 없이 돌아올 수 있었던, 꽤나 괜찮은 여행으로 기억 속에 남겨졌다. 이후에 근 3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꽂꽂이 앉아 필름과 디지털 파일이 한데 섞인 150여 장 조금 안 되는 사진들을 둘러보며 작업을 했고, 모든 데이터들이 '홋카이도 여행' 폴더에 정리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나는 본격적으로 얼마 안 남아있던 2024년 하반기를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할 수 있었다.



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 여행기를 써 내려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냥 귀찮아서'라는 이유는 다행히도(?) 옵션에 포함되지 않았었지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패키지여행 특성상 짧은 시간에 많은 장소들을 움직였던 탓에 나 자신이 이전 글들처럼 내용의 밀도를 높일 자신이 없어서였다. 글, 사진, 이외에도 모든 창작물에서 화자의 태도와 감정들은 청자에게 숨기려야 숨길 수 없이 곧이곧대로 전달된다는 것 또한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이번 이야기는 나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정보 전달'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그냥 여기는 이러이러해서 좋았다." , "이 도시는 상당히 북적거려서 마음에 드는 스트리트 사진 몇 장 건질 수 있었다."와 같은 글은 안 쓰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스타일이 나쁘다는 말은 결코 아니지만, 한 번 관철된 생각은 쉽게 바꾸지를 못하는 본인의 성격상 이런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시시콜콜한 아집 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시기가 한 풀 꺾이고 나서 계속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최근에 불현듯이 이때의 고민이 다시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품고 있었던 내 마음의 상태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났던 게 시발점이 됐다. 어디서, 어떤 연유로부터 바람이 새로이 불어왔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분명 확실했던 것은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난 뒤에 느꼈던 만족감과는 상반된, 비행기를 타기 일주일 전의 나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과거의 경험들로 비추어 보았을 때 언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고, 차갑고, 가까워지기 힘든 곳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고정관념들이 이번에도 이어지게 된다면 내가 구상하고 상상하던 사진들을 얻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다행히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남겨진 채 해피 엔딩을 맞이했지만 결정적으로 이런 전과 후로 극명히 나뉜 온도차에서의 흥미로움이 힌트가 되어 다시 키보드를 두드려 보기로 했다. 적어도 본인 스스로가 바라보았을 때는 꽤나 괜찮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동일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과거의 나를 통해 이러한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더 빠르게 털어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한몫 거들었다. 빠듯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만을 놓고 보아도 이전보다 훨씬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이유들이 있었을까? 나는 이 주제로 이번 글을 풀어가 보려 한다.









내가 추구하는 사진의 기본 틀은 꽤나 명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그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법을 이용해 프레임에 담아내자'이다. 물론 본인은 현재 거리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기록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꼭 그 부분만이 나의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기에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는 시간에는 최대한 다양한 장소들을 둘러보려 애를 쓰는 편이다. 요일 별 각기 다른 지역으로 매일 이동을 했던 터라 눈앞의 이미지에 적응하기도 전에 슬라이드가 휙휙 바뀌는 것이 꽤나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앞서 설명한 나만의 가이드라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서너 시간의 부족한 잠자리, 쌓여가는 피로감에도 그 자리를 떠나기 직전까지 행했던 수많은 발걸음들, 그리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의 시선으로부터 만들어진 흑백의 이미지들은 올해 한국에서 찍었던 사진들보다 조금 더 그 당시에 마주했던 상황 자체의 느낌과 질감을 세세하게 담아내고 있는 듯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인도 모르는 새에 물이 서서히 고이기 시작한 때부터 계산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오직 순수한 마음과 함께 셔터를 누르는 시간을 만나는 것이 상당히 소중해졌는데,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인 "외국에 나가면 그 흔한 쓰레기통마저도 너무나 흥미롭게 보인다."라는 요소가 적용되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 걸 수도 있겠지만, 본격적인 거리 사진을 찍기 시작한 때부터 남들에게 "진심으로 내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진이 과연 몇 장이나 될까 라는 의구심은 항상 어깨 한편에 이고 지내왔던 것 같다. 자극적인 것, 시선을 끄는 것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던 이유는 바로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던 타인의 관심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으리라.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어본다면 퇴짜 맞을 사진들이 무수히 많지만 이 당시, 특히 소운쿄 지역에서의 노이즈가 잔뜩 낀 필름 사진들과, 굵은 빗방울들이 무수히 쏟아졌던 이른 새벽 아사히카와에서 찍은 일상적인 장면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이게 너무 좋아서."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캐나다에서 잠시 지내면서도 계속 느꼈지만 나는 사진적으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기를 노리고 간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겨울철에 선호도가 조금 더 높은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음에도 잠시나마 시끌벅적하고 즐거운 여름철 거리의 축제들 또한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 두어 시간의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오타루에서 머문 시간이 줄어들었던 게 그렇게나 아쉬울 수 없었지만, 처음 마주했던 일본에서의 색다른 분위기를 아주 조금이나마 맛보기에는 충분했다. 그룹을 인솔해 주셨던 가이드 분께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예정된 루트를 따라가지 않고 내가 계획했던 장소들을 따로 빠져나와 구경하러 갔던 것 또한 결과적으로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 작은 동네에서 나는 관광적인 요소보다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묻은 것들을 보고 싶었고, 주민들이 모이는 어시장과 지하철역, 자그마한 골목들, 그리고 전통적인 색이 짙게 입혀진 행사장 주변을 홀로 돌아보며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냈다.



이런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도 사람들 주변에서 카메라를 자유롭게 가까이 들이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참 이상하게도 그런 애매하게 남은 경계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계기는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캘거리 다운타운에 처음 발을 들였던 날에 한 행인이 "너는 내가 대놓고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줬는데도 왜 카메라를 내려놓는 거야?"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난 이후부터 나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듯이, 이때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있던 이곳 사람들에 대한 내 선입견과 무의식적인 눈칫밥 때문에 눈동자만 열심히 굴리고 있던 차에 먼저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 건 그들이었다.



일본어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던 내가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어는 '사진' , '포토' , 최대한 멀리 나아가서는 'Show me'가 전부였지만, 그 정도 만으로도 짧은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제일 신기했던 것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오히려 더 카메라와 사진들에 관심을 보이셨다는 것. 입으로 뱉어내는 것보다 번역기 앱에 열나게 타이핑을 해가며 말을 주고받았던 모습에 서로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는데, 나로서는 이런 이벤트가 있었기에 후에 남아있던 삿포로에서의 일정까지 잘 나아가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화'는 쉽지 않더라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주차장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한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추어 도착해 헐떡거리는 숨을 가라앉히고 3시간 정도 도로 위를 달리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서도 조금 더 용기 내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올해 3월에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아스팔트 위에서 스쳐 지나가는 타인들과의 물리적, 감정적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쌓였던 스트리트 포토에 대한 어색함은 삿포로에 도착한 이후부터 그 껍질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원래 그래왔듯이 마음에 드는 장면이 보이면 고민 없이 셔터를 눌렀고, 유심히 도시의 모든 것들을 관찰해 가면서 나는 인공적으로 밝혀진 빛들로 가득 찬 도시를 배회했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카메라 렌즈를 반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날 선 눈빛으로 쳐다보며 욕설처럼 들리는 강한 어투의 말을 중얼거리는 인물들 또한 여럿 마주쳤다. 숱하게 겪어서 이제는 위축이 되지 않는 레벨까지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약간의 찝찝함이 항상 끝에 묻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마다의 관점 차이, 법적인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이 주제를 애써 정당화하고 싶지도,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 나의 입장이다. '개인의 즐거움'과 '타인의 불편함'이라는 2개의 요소들을 매번 아슬아슬하게 저울질해 가며 최적의 밸런스를 찾으려 애를 쓰지만 어떻게 보면 여기서 황금비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해가 갈수록 이러한 결론에 가까워지니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들로 그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저 서로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거나, 언어가 안 통하면 긍정적인 제스처를 건네어 악의가 없음을 표시하는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의 여러 전설적인 포토그래퍼들이 그래왔듯이.



본인은 개인적으로 sns 페이지들을 1차적인 만남에서 잘 공개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다르게 적극적으로 오픈을 하면서 도움을 톡톡히 받기도 했다. 아사히카와 역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 그리고 이른 아침 삿포로 시내에서 기록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면서 우연히 마주친 두 중년들과의 짧은 이야기들은 모두 결과물들을 같이 공유함으로써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처음에는 외국인인지, 아니면 약간 모자란 현지인인지 헷갈리는 외모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번역기 앱에서 도출된 간단한 인사말과 더불어(고마워요 파파고!), 과거 내가 행했던 기록들을 이어서 보여주니 그들의 표정과 경계는 금세 허물어졌고, 빠르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여태껏 작업물들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스스로에게 크게 만족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곧 남들에게도 같은 의미로 비추어질 것이라는 삐뚤어진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의 본심이 어떠했는지는 그들만이 알고 있겠지만 적어도 이로 인해서 본인이 악의가 아닌, 긍정적인 의도로 자신들에게 접근하여 의중을 물었다는 것이 자연스레 전달되었다고 생각해 더더욱 크게 다가왔고,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타인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신뢰를 단시간에 얻기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납득이 갈 만한 결과물들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항상 되뇌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심지어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본이라는 나라 속에서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다고 느꼈기에 한껏 더 자신감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모든 게 끝이 났다는 걸 인지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괜찮은 결괏값을 얻어서 그랬는지, 혹은 둘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정된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 버클을 허리에 채우자마자 4일 동안 체내에 농축되어 있던 피로감은 빠르게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2시간 반 정도의 짧은 비행시간이었음에도 10분도 안 되었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나는 고개를 무게가 쏠리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꺾어가며 단잠에 빠졌다. 도착한 인천공항의 날씨도 이륙했을 때와 비슷하게 먹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수하물을 찾으러 이동하는 와중에도 이틀 뒤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것과, 어떻게 하면 여독을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거리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전만큼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까지 기분이 다운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계획했던 여행의 본래 목적을 잘 달성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렇게 나의 첫 북해도 여행은 막을 내렸고, 미래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과 동시에 지금 현재 눈앞에 떨어진 하루를 살아가며 새로운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난 이후, 두 남자와의 대화)

"그래서 홋카이도는 어땠어요?"



"너무 좋았죠. 말로 표현을 못하겠네요.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을 갈 거예요?"



"올해 해외는 한 곳 남았고.. 시간이 된다면 한국 안에서 조금 돌아보다가 내년 초에 도쿄에 잠시 머무를 것 같네요."



"도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도쿄는 도쿄의 문화가 따로 있어요. 아마 이곳이랑은 많이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거기서도 좋은 사람들과 사진들이 저에게 왔으면 좋겠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진 정말 좋아요. 계속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가 보려고요. 이곳을 떠나기 전에 두 분을 만나 영광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는 이만 호텔로 돌아가 볼게요!"



"조심히 가세요! 굿바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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