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6일

by 이승윤





아침 7시에 울린 알람을 제쳐두고 15분 정도 뒤적거린 뒤에 겨우 일어난다. 다리는 어제 운동의 여파로 군데군데 알이 배겼지만 이 고통이 나쁘지만은 않다. 어제저녁에 하우스 메이트인 Tim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덕에 기분도 조금은 올라온 상태. 창문을 열어보니 비는 멈췄지만 계속 흐리멍덩하다. 머리만 감으려고 했는데 반듯한 모양새에 그냥 옷만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Tim 도 출근 전에 아침으로 시리얼에 우유를 부으면서 지금 시간엔 사람들도 별로 없을 텐데 왜 이렇게 일찍 나가냐고 나한테 묻는다. 카메라를 가리켰더니 “Ah..” 하는 제스처와 함께 구경 잘하라고 인사를 건넨다.(이참에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그는 프랑스 계통의 스위스 사람이며 일본에 거주한 지 3년 정도 된 친구다.)



여전히 거리에서는 위축되어 있지만 애써 당당한 척하며 걷는다.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씨와 같은 눈빛을 띄며 바삐 움직인다. 유일하게 신나 보이는 인물은 7살 정도로 추정되는 병아리 모자를 쓴 어린이다. 나는 저 나이 때도 자주 우중충했던 것 같은데.. 이것도 분명 왜곡된 기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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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매섭다. 너무나 강하게 분다. 기온이 높아도 손이 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이트리 밑에서 한 장 찍고 싶어 주섬주섬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낸다. 오늘의 첫 사진이 화면에 나타난다. 너무 클리셰 같은 모습이라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집중력은 살아있는지 반듯한 구도와 앵글에 한숨 돌린다. 더 이상의 영감이 없어서 곧바로 아사쿠사 역으로 향한다.



관광객 무리와 직장인들의 모습이 확연하게 갈라져 눈앞에 나타난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많아 벌써부터 어지럽다. 별로 어렵지 않게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나왔던 지하상가 음식점을 찾아낸다. 아침시간이라 라멘집 하나 빼고는 전부 닫혀있었지만 장소가 주는 분위기가 심오하고 인적도 드물어서 몇 장 찾아내 기록한다. 과거의 자료들은 잊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기본적인 구도를 잡은 뒤에 노출을 맞추고 셔터를 누른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등장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마저도 제대로 요리하지 못하는 수준이니 안정을 찾을 때까지 이런 식으로 다듬어보려 한다. 이전보다는 연차가 조금 쌓였으니 금방 제 페이스로 돌아올 거라 생각, 아니 바래본다.



무작정 앞만 보고 움직였더니 어느새 이케부쿠로 역 앞에. 사실 캐나다 시절 생각하면 인도가 반듯하게 나 있어서 이 정도 걷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리들이 정말 정말 너무나 비슷하게 생겨서 거리(Distance) 인지가 떨어지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달은 적응하는 달로 생각하고 일단 눈에 다 때려 박는다. 나는 이 부분이 꽤나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서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이 과정을 먼저 진행한다.



근처에 빅카메라 매장이 있어 정신없게 만드는 강풍도 잠시 피할 겸, 흑백필름 한 통을 구매하기 위해 들어선다. 하루에 한 문장씩 일본어로 뱉어내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한 개 구매하고 싶습니다.” 까지 해냈다. 그다음부터는 눈치껏 알아들어서 성공적으로 구매 완료. 생각보다 종류도 많이 없거니와 가격이 겁나게 비싸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한 롤 내지 두 롤이면 충분할 듯싶다.



퇴근시간이 되기 전에 집 근처 역으로 돌아간다. 개찰구 입/출입 결제를 모바일페이로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신세계지만 왼손잡이인 나는 이마저도 넘어갈 때마다 남들과는 달리 2% 정도 더 고통받는다. 지도 가이드 보는 법을 완전히 터득해서 이제는 실수 없이 잘 찾아 열차에 올라탄다. 반대편 열차의 사람들과 잠시 눈이 마주치고 나서 유리에 반사된 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다크서클이 이렇게 심했었나?



이틀 전에 갔었던 반찬집에 또다시 들른다. 가끔씩 생각나는 중국식 볶음면이 가판대에 놓여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칠리새우와 같이 집어 들고 계산대 앞으로. “봉투가 다 떨어져서 담아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분명 알아들었는데 입에서 “부탁드립니다.” 가 자동녹음기처럼 재생된다. "이 사람 뭐지..?"라는 표정이 보여 한국인이어서 일본어 잘 못한다는 말로 화재를 진압한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일들에 신경이 곤두섰었는데 이제는 그냥 웃으면서 넘긴다. 조금 느낌 있게 다가온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