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5일

by 이승윤





모처럼 제대로 잔 느낌이다. 예보대로 비는 계속 쏟아지는 중이다. 조금 기분이 나쁠 법한 마음을 바로잡고 어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하기로 한다. 그래봤자 헬스장 회원권 끊는 일이 전부인데 이런 간단한 행동도 여기서는 크게 다가온다.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아직까지도 생소한 거리로 나선다.



어제 가 봤던 기억을 더듬어 오늘은 지도 확인 없이 찾아가 보기로 한다. 한 미용실 간판이 너무 인상 깊었어서 그걸 포인트 삼아 제대로 도착. 직원을 맞이하기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미리 번역기를 켜 놓는다. 어제와 같은 직원과 인사하고 멤버십 가입을 하려 하는데 젠장. 전부 일본어다. 미국 프랜차이즈인데 영어로 된 가이드가 없다니! 서로 번역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고받으면서 하나하나 진행한다. 정보입력은 다 했는데 마지막 금액 부분에서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닌데도 괜스레 민감해져서 자꾸 물어보았지만 해결이 안 된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른 장소를(=지점을) 추천해 달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투철한 서비스 정신인 지, 아니면 동정 섞인 감정에 그랬던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전혀 상관없는 구민센터 체육관을 알려준다. 여기는 일일권도 있으니 더 편할 거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얼마 안 가 온갖 감정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해외에서 자국민들끼리 뭉쳐 다니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해 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기대기는 싫으니까 "나는 생각보다 x나 센 놈이다."라고 되뇌며 다시 걷는다.



도착한 이곳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매 순간 달라지는 상황은 나한테만 해당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또다시 용기 내서 카운터로 다가간다. 역시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운 좋게도 영어가 지원되는 키오스크 기계를 안내받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해 보는 것이니 바로 일일권을 끊고 들어간다. 실내용 운동화가 따로 있냐는 말 하나 때문에 이마저도 약간 지체됐지만 'Shoes'라는 단어를 기가 막히게 캐치해 내 무사히 넘어갔다.



집중도 잘 안되는데 무리하면 다칠 게 뻔하니 그냥 가볍게 실내자전거와 머신 몇 개를 끄적거려 본다. 이렇게 얘기해도 1시간이 조금 넘게 운동을 했다. 정리하고 다시 라커룸에 돌아와 샤워를 하려는데 샤워실이 어딘 지, 여기가 맞는지, 수영장으로 곧바로 연결된 곳이 아닌 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들에 행동은 괜히 더 조심스러워진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서 삭발한 채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렸던 과거와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쳐 있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늠조차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환경 문제는 아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망가져 있었다.



어르신들 따라 들어갔더니 작은 욕탕과 샤워실이 나온다. 단편의 이미지인데도 이들의 인프라가 너무나 부러웠다.(사실 여기 도착하자마자 본 층별 안내도에서부터 이미 말이 안 된다고 느끼긴 했다.) 머리까지 다 말리고 밖으로 다시 나왔지만 여전히 비는 강풍과 함께 흩날리듯 내린다. 다음 주까지 온다고 되어있던데 이래서 언제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나 하는 걱정이 또다시 불어닥친다. 애매한 시간인지라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서 끼니를 때우기로 한다. 여기도 키오스크는 존재한다. 너무나 감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딴 건 다 눈에 안 들어오는데 유독 가격만 섬세하게 때려 박힌다. 영수증과 함께 빈 테이블에 자리한다. 청각은 믿을 수 없으니 시각에 의지한다. 3개월 동안 잘 부탁한다 내 두 눈알들아.



일단 다시 집으로. 옷가지들을 널어놓고 노트북을 챙겨 가까운 스타벅스로 간다. 분명 영어로 대화했는데 오히려 이제는 내가 더 어색하다. 도심지는 소통에 있어서 훨씬 수월할 거라고 하던데 내일부터는 날씨 상관없이 그냥 돌아다녀 보는 걸로. 오늘의 일과는 어찌어찌 다 마무리됐으니 두서 1도 없는, 순전히 감정에 기댄 글을 앉아서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쉬는 틈에는 유튜브 영상이 아닌 내일 갈 곳들을 지도로 찾아보는 걸로 대신한다. 완전히 끊고 사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여기 생활을 하면서 조금은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퇴근길 러시아워가 끝나고 어두운 시간이 되어서 자리를 떠난다. 주변이 다 상권이라 저녁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 오늘도 그냥 끌리는 거 먹는 걸로 한다. 이번 주의 템포는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