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7일

by 이승윤





Tim의 출근준비 소리에 깼지만 꾸역꾸역 8시 반까지 침대에서 버틴다. 근처 지역박물관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추어 나간다. 도쿄에 도착한 이후로 처음 해가 쨍쨍하게 나를 밝히지만 이놈의 바람은 도대체 왜 멈추려는 생각은 둘째치고 점점 더 강해지는 걸까? 여기 사람들은 적응이 되어서 그런 지 옷차림들이 평균적으로 나보다는 얇아 보인다.



건축물 디자인 때문에 왔는데 기대 이하다. 건물의 윗부분보다는 바닥면이 더 아름다워 보여서 한 장. 내부는 어떨까 싶어 결제하고 올라가 본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Hokusai의 작품들을 본 것은 꽤나 기분 좋은 성과다. 나는 파도를 볼 때 잔잔함을 위주로 보는데, 그는 강함을 위주로 본 것 같았다. 거칠어 보여도 안정적이어서 좋았다.



30분 정도 후에 나왔는데 바로 앞 놀이터에 아이들이 빼곡하다. 한 아이만 선생님 옆에서 울부짖고 있다. 괜스레 마음이 시리다.



도쿄 역을 향해 걷는다. 다리를 건넌다. 다리 밑 공터에 사람 4명이 보인다. 각 인물마다 다른 위치에서 하는 행동이 제각각인 게 흥미롭다. 내 화각에서는 너무 멀어서 아쉽지만 그냥 지나친다.



오피스에 어울리는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눈앞을 채운다. 시간은 12시 15분 정도.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날들과는 달리 도쿄의 중심부에 조금은 가까워진 게 느껴진다. 바람은 여전히 차다.



포토존으로 많이 찾는 도쿄 역 주변이 나한테는 분노 제조기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지도 어플에서 ‘평소보다 유동인구 적음’이라고 떠 있는 게 그저 웃음벨이다. 오히려 여기보다 근방에 있는 인터내셔널 포럼과 다른 건물들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시간 좀 들여 집중해서 찍었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 소위 ‘구겨졌다.’라는 표현을 스스로 자주 쓰는데, 너무 심해서 후보정도 안 먹힐 정도다.



점심메뉴 고르다 보니 어느덧 긴자의 중심부까지 도달한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대기줄로 꽉 채우고 있어서 피로가 배로 쌓인다. 여기서는 답이 없겠다 싶어 모 명품 브랜드 건물까지 보고 빠져나가는 걸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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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 디자인으로 인해 왜곡되어 그려진 모습이 썩 마음에 든다. 이 날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썼다. 집중하다 보면 그냥 빠져 있는다. 지금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이었는데 재밌게 가지고 놀았다. 결과물은 역시나 별로지만 멘탈적인 면만 보고 긍정하며 다시 움직인다.



추후에 깜깜한 심야시간이 됐을 때 둘러보려 했던 야키토리 거리까지. 한 가게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천막 안 흐릿한 풍경을 너무나 찍고 싶어서 기웃거리다 결국 감정에 휩쓸려 다가간다. 안내하시는 분이 나와서 몇 명이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만다. 옆에 오픈된 주방도 보여서 긴장을 무릅쓰고 셔터를 누른다. 아저씨가 그냥 막 찍어도 된다고 가리킨다. 웅크리고 있던 아드레날린이 터져 나와 본능에 업혀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뭔가 대화가 통할 것 같아 오늘의 문장을 뱉는다. “영어로 된 메뉴판 있나요?”



안내를 받고 자리한다. 음식 단어는 유튜브로 꽤나 배워서 주문이 수월하다. 원래 술을 잘 안 먹지만 오늘은 하이볼도 한 잔 더한다. 도쿄에서의 첫 야키토리이니 전부 시오로 주세요.



고즈넉한 내부 분위기에 나 빼고 모두 짝이 있지만 곧이어 1인 손님들이 연이어 들어온다.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오른다. “한국에 있을 때 혼자라는 이유로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던 적이 몇 번이었지?” 다인 테이블에 편하게 자리 잡은 것도 참 오랜만이다. 파, 닭 엉덩이살, 돼지 염통이 차례대로 나온다. 냄새부터 작살이다. 한 점씩 맛 보니 이들이 왜 이렇게 술을 찾는지 알겠다. 부모님도 같이 드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안내부터 결제까지 서로 한국어/영어/일본어를 돌아가며 쓴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나에겐 몇 배 이상의 경험이다. 잡혀있던 긴장이 덕분에 많이 풀린다. 고마웠어요 모두.



아까 지나왔던 긴자 거리를 달아오른 얼굴로 다시 마주한다. 술기운 때문에 사람들 눈빛이 덜 신경 쓰이는 점은 좋다. 술에 기대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느 정도 필요할 수도 있겠다.



집 근처 역 출구를 걸어 나온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시간은 아니지만 수많은 건물들에 가려져서 더더욱 눌린 듯 보인다. 사진들에 불만은 가득하지만 되려 일상적인 면은 만족감과 편안함으로 채워진다. 이런 금요일을 얼마 만에 맞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집까지 향하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도 내일 조금 더 나은 결과물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계속 피부에 닿아 따끔거린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