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엽 May 14. 2023

좋은 서비스 만들지 마세요

좋은 서비스 대신 좋은 지표를 만드세요

IT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밥 먹듯이 하는 말이 '좋은 서비스'입니다. 세상에 없는 좋은 서비스, (만약 이미 존재하고 있는 서비스라면) 기존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서 세상을 혁신하고 우리 사업과 조직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모든 스타트업의 꿈이자 사명입니다. 그렇기에 '좋은 서비스'라는 말은 반복해서 사용될 수밖에 없죠.


우리는 아마존의 고객지향적 경영 철학이나 (ChatGPT가 추천해 주는) 위와 같은 수많은 경영 구루들의 격언들을 접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서 고객을 만족시키면 우리 회사는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마치 성경 구절처럼 절대 명제로 받아들이곤 하죠. 

하지만 이 말이 진짜 맞을까요? 정말 우리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요?




'좋은 서비스'에 관해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타트업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힌트를 발견했습니다. 스타트업은 거의 항상 실패와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우리 서비스 너무 좋은데, 다들 좋다고 말해주시는데...
왜 고객들이 사용하지 않지?


이 말 한마디에 위 문제에 대한 답이 모두 숨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우리 서비스 너무 좋은데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해당 서비스의 '공급자'입니다. 서비스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권한도, 능력도 없습니다. 서비스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유일한 사람은 바로 "고객"입니다. 고객 관점에서 좋은 서비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런 함정에 빠질까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해당 서비스의 진정한 OWNER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기업에서도 오래 근무를 해왔습니다. 대기업에서는 아무도 '우리 서비스'나 '내 서비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회사의 서비스'이라고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직접 만들기보다는 수 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단계에 의해서 만들게 되니까요. 서비스를 창출하는 복잡한 과정에서 나는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나라는 존재와 만들어진 서비스의 거리가 굉장히 멉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비스와 나와의 거리가 매우 가깝습니다. 아이디어의 도출, 기획, 디자인, 개발, 세일즈, 마케팅 등 많은 영역에서 내 의견이 반영되고 내 노력이 담긴 서비스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정말 자식 같은 느낌이 드는 서비스가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오너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즐겁고 몰입이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객관성을 잃게 됩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제3자의 입장에서 좋은 서비스인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내 입장에서 판단해 버리는 것이죠. '우리 애가 참 똑똑한데 이상하게 공부를 못 한다'라고 말하는 부모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서비스를 판단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고객입니다.



2. 다들 좋다고 말해주시는데

물론 내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우리 회사의 서비스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도 많지만... 앞서 찾은 힌트에서 그런 판단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고객'이라고 결론 내렸으니, 여기서 그 부분을 더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에서 좋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은 '고객'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빠지는 함정은 '말'입니다. 이 서비스 좋다고 말해주는 데에는 어떠한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결국 고객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 서비스의 사용(무료 서비스)이나 구매(유료 서비스)입니다. 좋다고 말해주는 것은 사용이나 구매의 전제조건이 될 순 있지만, 동일한 의미는 아닙니다. 사용이나 구매를 했다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좋다고 생각해도 사용이나 구매를 하진 않기도 합니다. 더 좋고, 값싼 다른 옵션이 있을 수 있고, 기존에 사용하던 서비스를 바꾸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기도 합니다. 혹은 일부 좋은 요소가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기존 서비스보다 오히려 못하거나 비슷한 수준일 때도, 좋다고 말은 해주지만 사용해주진 않습니다.

우리는 고객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짜 사용이나 구매, 혹은 그것과 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측정해야 합니다. 말처럼 쉽게 공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귀찮고 비용이 발생하지만 우리 서비스가 정말 좋기 때문에 기꺼이 하는 행동을 측정해야지, 우리 서비스가 진짜 좋은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제 생각이 미쳤을 때, 몇 년 전에 읽었던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비슷한 개념을 읽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저자 알베르토 사보이아는 소비자의 니즈를 판단하는데 '적극적 투자 지표'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견/격려/비난/설문/투표/댓글/좋아요는 모두 투자점수가 0점입니다. 실제 고객의 니즈가 있다고 판단할 수 없는 지표라는 것이죠. 실제 구매를 하는 행위가 투자 점수 250점으로 가장 높고, 현금 보증금을 내는 것이 50점, 30분간 제품 시연에 참석하는 것이 30점입니다. 고객이 돈이나 시간과 같은 비용을 실제로 지불하는 행동만이 고객의 수요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내용은 제 생각이 아니라, 몇 년 전에 읽었던 책 내용이 무의식에서 잠자고 있다가 튀어나온 것이었습니다.

공짜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행동으로 좋은 서비스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3. 왜 고객들이 사용하지 않지?

이 부분이 결론입니다. 좋은 서비스는 무엇일까요? 스타트업에서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좋은 서비스는 결국 '고객이 사용하는 서비스'입니다. "좋은 서비스"라고 칭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기꺼이 사용해 줄 정도로 좋은 서비스"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앞에서 찾은 힌트들과 결합해서 이제 결론을 내보도록 하죠.

1. 좋은 서비스인지 여부는 내가 아니라 고객이 판단해야 합니다.

2. 고객의 말이 아니라 시간과 비용이 드는 행동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3. 가장 좋은 판단 기준은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좋은 서비스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사용하는 행동, 혹은 사용하는 것에 준하는 행동을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 필요 없고, 좋은 지표가 나오는 서비스를 만들면 됩니다.




최근에 일을 하면서 "우리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지 말고, 좋은 지표를 만들어야 됩니다"라고 강경하게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 서비스를 좋게 만들기 위해 몇 달째 애쓰고 있는 동료에게 모진 말일 수도 있지만, '좋은 서비스를 만들면 다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야'라는 함정에 빠져서 저 역시 수도 없이 많은 사업 아이템을 실패해 본 적이 있기에, 꼭 해야만 하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빠진 함정에 동료 역시 빠지지 않길 바랐으니까요. 

그때 제시한 의견을 좀 더 정돈하여 이렇게 글의 형태로 옮겨보았습니다. 막상 써놓고 나니 누구나 다 알 법한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수많은 스타트업인들이 이 함정이 빠져서... 좋은 서비스는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고객도, 매출도 없는 서비스로 끝이 나곤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누군가가 그런 실패를 맛보지 않도록 조금이라마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하네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진짜 고객의 행동을 유발하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를 응원하고, 저 역시도 그런 멋진 서비스를 만드는 일원이 되길 희망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작가의 이전글 제너럴리스트의 성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