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며
일찌감치 다이어리에 날짜에 동그라미, 별표까지 하고 기다렸다. 구교환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다. 구교환을 처음 만난 건 <메기>였다. 그의 연인 이옥섭감독의 영화다. 신선한 캐릭터였다. 독특한 걸 좋아하는 내게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직 <만약에 우리>를 못 봐서 아쉬운 참에 짜잔! 하고 나타났다. 하루하루 벼르며 기다려서 본방사수를 했다.
구교환뿐 아니라 강말금과 오정세도 기대되는 배우다. 고윤정 역시 요즘 대세라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작가가 믿음이 갔다. <나의 아저씨>, <해방일지>를 만든 작가라니 말 다 했다. 그의 드라마는 출연하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 구조가 맘에 든다. 주연과 조연이 크게 갈리지 않아 진짜 인생이 그려진 듯 한 그림이 된다.
첫회를 보고 짜릿함을 느꼈다. 거침없는 황동만(구교환역)의 짜증! 찌질함! 황동만 뿐 아니다. 모두가 짜증냄이 저변에 깔렸다. 그리고 황동만 뿐 아니라 모두가 찌질하다. 본인은 황동만 보다 낫다는 우월감이 우스워보인다. 20년째 데뷔 못한 만년 감독지망생의 시기, 질투, 열패감을 고스란히 퍼부어대는 황동만, 그러한 황동만의 행동과 말에 지친 8인회 친구들 모두가 사실 불안함을 이겨내려 애쓴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불안한 것 아닐까?
어느 날 DSLR카메라가 생겼다. 싸이월드시대부터 카카오스토리까지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올리는 것을 좋아했다. 카메라가 생기고 인스타그램이라는 어플을 알게 되고 사진이 더 좋아졌다.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니며 남들 눈에 별것 아닌 것도 찍어댔다. 그런 사진은 개인 SNS에나 올리는 정도였는데 NGO단체 행사에서 사람들을 찍게 되었다. 또 영화제에서 관객들 사진을 찍어 홍보도 하고 기록도 하는 일이 이어졌다. 나의 사진이 쓸모 있음을 느낄 때 그 희열은 하루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게 되고 나는 점점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됐다. 내 사진의 가치가 나의 가치와는 다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사진의 가치가 평범해지면서 나의 가치는 내 사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밀려들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찌질한 나의 본성이 드러나면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또 다른 것,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줄 무엇인가를 찾았다. 그 무엇이 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난 지금도 찾아 헤매고 있다. 찾고 있다는 그 자체가 견딜 수 있는 방패가 된다. 그래서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황동만과 나의 차이는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표출을 하느냐 안 하느냐 뿐 아닐까? 아직 40대인 황동만은 나보다 안에서 밖으로 끌어올릴 기운이 더 많이 남아있나 보다.
2회에선 황동만도 파워를 어디서 파는지 물어보긴 한다. 사랑을 안 해서 파워가 없다는 은아(고윤정)의 대답은 황동만을 깨운다. 아! 어쩌면 나는 사랑을 해서 동만이와 다른 파워가 있는 걸까? 그래서 파워의 방향이 문제 있지도 모르겠다. 동만이는 밖으로, 나는 안으로 쓰고 있는 걸까?
이제 황동만을 그대로 바라봐 주는 은아가 있다. 초록불의 인연인 은아와 함께 어떤 연대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미 많은 명대사들이 터져 나왔지만 앞으로 주옥같은 대사들이 얼마나 쏟아져 나올지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12부작이니까 앞으로 5주는 더 주말이 행복할 수밖에 없겠다. 황동만과 함께 나도 함께 싸울 시간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