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그들의 영원한 사랑

영화 <연인>을 보고 (스포를 안 할 수가 없다.)

by 서리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을 읽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처음 몇 단락은 이게 뭐지? 하면서 읽었다. 읽다 보니 독특하네, 하며 작가가 궁금했다. 검색! 아~ <연인>의 작가였다. 책은 물론이고 영화도 보진 않았다. 영화 포스터만 보고 소문만 들었다. 엄청 야하다는 소문.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라 그 유명한 영화를 난 보지 않았다.(일부러 보지 않은 게 맞다. 고상한 척한 거지.)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라기에 작가에 대한 궁금함이 커져서(타인의 사생활은 왜 그렇게 재미난지.) 바로 OTT서비스에 리모컨을 가져갔고, 플레이를 눌렀다. 성인인증을 하란다. 옆지기에게 문자를 남겼다. 인증해 달라고. 잠깐의 기다리는 시간 동안 또 검색! 나무위키를 읽었다. 양가휘 배우를 섭외하기 쉽지 않았고, 결국 섭외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제인 마치 역시 이 영화를 통해 청춘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둘의 정사장면은 30년이 넘은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베드신으로 손꼽힌다 한다. 적당히 읽는 동안 성인인증이 완료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클로즈업된 인체와 종이에 펜이 긁히며 시작되는 화면, 나이 든 내레이션의 과거를 회상하는 목소리는 바로 몰입하기에 좋았다. 메콩강 배경의 로우-시에나톤 풍경이 여행에 목마른 나를 휘감았다. 그 가운데 베이지색 원피스의 소녀는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낡은 카바레 신발은 별로였지만 모자는 남자용이라지만 원피스와 함께 잘 어울렸다. 정성 들여 바르지 않은 듯한 립스틱 역시 소녀다움이 묻어났다.(영화 중반에 느꼈는데, 아마 엄마의 코디인 듯하다. 딸을 길에 내모는 듯해서 불쾌하다.) 그녀에 비해 깔끔한 차의 뒷좌석에서 내린 남자는 말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과 하얀 정장이 역시나 눈에 띄면서도 수수한 듯한 얼굴이 소녀와 잘 어울렸다.

프랑스인인 백인의 베이톤 의상과 중국인인 유색인의 새하얀 의상, 의도된 것일까? 손을 떨면서 조심스레 소녀에게 담배를 권하는 그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둘의 만남은 어여쁘다고 느껴졌다. 함께 차를 타고 기숙사까지 가는 길에 덜컹거림, 그 후 그의 손길이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조심스러운 터치, 깍지를 끼고 조금 더 가까워지지만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고 헤어진다. 기숙사는 거의 회색빛에 침대만 덜렁 있는 듯하다. 가난한 소녀는 그 지역 부호의 아들인 그와 매일 잠자리를 한다. 따뜻한 푸른빛의 '독신남의 집'에서. 그들은 연인이 된다. 극찬을 받았다는 양가휘의 엉덩이는 정말 예쁘다. 누구나 깨물고 싶어 할 것 같다.(우리 집에 그런 엉덩이가 하나 있다. 아가일 때는 많이 깨물었는데 이제 어엿한 청소년이라 못 깨물어서 아쉽다.)

소녀의 집은 끔찍하다. 큰아들만 끼고 사는 엄마, 아편에 빠져 폭력적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장남, 유약한 남동생과 함께 고달픈 가족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현실세계에서 도망가지 않고 힘든 삶을 견디고 있다. 그런 가족에게 친구라며 그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백인이 아닌 그를 무시한다. 게걸스럽게 먹기만 하는 그들은 피부만 하얀 하층민의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도움으로 오빠는 빚을 갚고 여행비도 마련한다. 하지만 둘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그녀와 결혼할 바엔 죽는 게 낫다고 한다. 결국 정약결혼을 하고 소녀는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소녀도 프랑스로 떠나게 되고 남자도 떠나는 그녀를 차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소녀는 배에서 그의 차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바라보며 눈물을 참지만 쇼팽의 왈츠에서 무너진다.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그는 중년의 작가가 된 그녀에게 전화로 여전히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 말한다.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영원해진다.


작가는 작가가 되어 경험을 글로 남겼다. 소녀 시절의 가부장제와 백인우월주의의 억압아래 이루어지지 못한 찬란했던 사랑을 영원 속에 가둔 것이다. 작가의 특권이다. 아직 책은 읽지 못했다. 영화 촬영 당시 작가와 감독과의 불화가 있었다고도 하고 성인 멜로 영화라는 혹평도 있지만 영화가 글 못지않게 잘 만들어졌다고 한다. 내게는 작가의 애달프음이 느껴지면서도 감독이 그 감정을 절제 가득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아 아름다운 영화로 감상했다. 그럼 이제 텍스트로 만나 볼까?(읽어야 할 책이 또 쌓였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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