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채털리부인의 연인>을 보고
고전소설 가운데 부인 시리즈가 있다. 〈마담 보바리〉, 〈델러웨이 부인〉, 〈채털리 부인의 연인〉 — 이렇게 세 부인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집 책꽂이에 있는 3권이기도 하다.) 그중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넷플릭스에 있기에 책 읽기 전에 먼저 감상했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 보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읽고 있던 책이 많기에 그 차례를 기다리는 것보다 넷플릭스의 유혹이 압도적이었다. (넷플릭스 해지가 임박하기도 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D. H. 로렌스의 작품인 동명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선정성이 농후하여 출간이 힘들었다고 한다. 작가가 타국인 이탈리아에서 자비로 겨우 출간을 했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출판 금지가 풀리기까지 3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영화도 청소년 관람 불가지만 텍스트로 묘사한 만큼은 못 따라가지 않을까? 책 먼저 읽고 보면 실망할지도 몰라. 그래서 플레이를 눌렀다. (헉! 노출수위가 상상이상이었다.)
시대극의 배경은 초록색이 많이 깔려서인지 시작하자마자 기분이 좋다. 집안 인테리어의 앤티크한 분위기나 배우들의 스타일도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그런지 매력적이다. 다만 그들의 단조로운 일상생활은 참 재미없다. 가만히 테이블에 앉아 있거나 초원이나 거리를 걷는 게 전부다. (테이블에선 사무를 보기도 하겠지만) 아! 가끔 말이나 마차를 타기도 한다. 귀족들의 일상은 왜 그리 따분하기만 한 건지, 특히 여성의 하루는 이해가 안 될 정도다. 남자들 주위를 서성이는 것 말고는 뭐가 있나? 채털리 부인 코니(엠마 코린)는 정말 산책 말곤 하는 게 없다. 그전에 남편은 성불구자가 되었고 아내에 대한 집착만으로 가득해가니 하루 종일 남편 시중드느라 지쳐 있다. 우울증에 안 걸릴 수 없을 노릇이다. 집안은 감옥 같아 답답해서 숨 쉬기도 힘들 테니 산책만이 생명 보존의 길이다. 그러다 사냥터 지기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유부녀의 불륜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전쟁으로 인한 참상, 가부장제의 결혼과 아이에 대한 보수적인 관념, 노동자와 계급 차별주의 등 다양한 내용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사랑과 육체적인 욕망만을 그린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워낙 코니와 올리버(잭 오코넬)의 투샷이 강렬해서 다른 것들은 그저 스쳐 지나간다. 특히 비 오는 날 벌거벗은 아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장면이 아닐까?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하굣길이었다. 교복을 입고 삼선 슬리퍼를 신고 우산 없이 비 쫄딱 맞으며 빗물이 만든 고랑에서 첨벙거렸다. 그때가 내 인생 가장 철없지만 행복했던 때였다. (써 놓고 보니 코니와 올리버의 씬과는 차이가 있네.) 그 당시엔 나름 굴레라 느껴지던 교복이 젖든 말든 깔깔거리며 빗속을 뛰어다닌 건 자유를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코니와 올리버는 코니의 남편과 올리버의 아내에게서의 속박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를 원했다. 정신과 육체가 일치하는 진실한 사랑으로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의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모티브로 썼다고 한다. 본인 스승의 와이프와 함께 영국을 떠나 돌아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글 쓰면서. 사랑하는 이와 자유롭게. (진심으로 쓴 소설인가 보다.) 나의 옆지기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언제나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현되기 힘든 꿈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자본주의의 한 일원으로 돈 버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클리포드와 같은 삶이 살짝 비치지만 다행히 가정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그래서 가끔 가족이 함께 자연으로 캠핑 갔을 때 가장 행복해한다. 아이를 독립시킨 후엔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자는 게 우리 부부 현재의 꿈이다. 그때쯤엔 코니와 올리버와 같은 애정 어린(진한) 삶을 기대해도 될까? 그만큼 어린 나이는 아니겠지만 나이 들면 다시 아이 같아진다니까 희망을 걸어보자.
▶영화정보
타이틀 = 채털리 부인의 연인 (Lady Chatterley's Lover) 2022 감독 = 로레 드 클레르몽
출연 = 엠마 코린, 잭 오코넬, 매슈 더킷, 페이 마르세이, 엘라 헌트, 조엘리 리차드슨
제작곡가 = 영국, 미국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상영신간 = 126분
원작 = D.H. Lawrence가 쓴 동명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