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라 가는 버스
운전대를 잡으면 사람이 변한다지만, 난 운전대를 잡아도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 아니, 않았다.
왜 사람은 운전을 할 때 평소와 달리 거친 모습이 될까? 그건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폭주는 내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으면 느낌이 좀 다르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무게감으로 나도 모르게 신경이 더 곤두선다.
게다가 육아와 함께 잡는 운전대는 조금 더 다르다. 에너지 소모와 스트레스의 기본값이 있고, 거기에 추가적인 자극이 주어지면 '화'의 방향은 상대 차를 향한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받아들였을 법한 타격임에도 갑자기 '쌔앵' 치고 들어오는 차를 보며 입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와c. 운전을 저렇게 한다고?"
도로의 흐름을 방해하는 차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뒤에 아이가 타고 있으니 크게 화도 못 내고, 삐져나오는 감정을 누르다 못해 혼자 소심하게 한마디씩 중얼댄다.
“하아. 앞 차 왜케 운전을 못해?”
막지 못해 한 번 새어 나온 감정은 남은 감정들까지 줄줄이 끌고 나온다.
"저렇게 갑자기 서면 뒤차들 다 놀래서 브레이크 밟고, 기름도 낭비고, 환경오염에, 국가적으로도..."
언제부터 그렇게 국가적으로 생각했다고, 대단한 애국자 납셨다.
빛이와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또 혼잣말로 궁시렁댔다.
“아, 이 시간에 차가 왜 이렇게 막히지?”
뒤에 앉아있던 빛이가 대답한다.
“앞에 차가 '운전 못해 차' 아니야?”
이런. 말조심해야겠다.
사실 말조심 이전에 기다릴 줄 아는 여유와, 받아들일 줄 아는 온유함,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 넉넉한 마음이 내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
굳이 말조심하지 않아도 되도록.
난 밤이 되면 또 다른 운전대를 잡는다.
대형면허는 없지만 무면허로 버스를 운전한다. 하루가 저무는 게 늘 아쉬운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꿈나라 가는 버스다.
"빨리 타세요. 버스 출발합니다아~"
불이 꺼지면 난 누워서 두 팔과 두 다리로 이불을 높이 든다. 원래 더 놀고 싶어 불을 못 끄게 난리 치던 빛이는 이제 잽싸게 '이불버스'에 올라탄다. 언니를 따라 기어 오는 2살 하늘이까지 탑승하면 버스가 출발한다.
"오늘 빛이는 어디로 가실 건가요?"
"전 무지개 꿈나라요!"
"네. 출발합니다. 안전벨트 잘 매시고요. 내리실 때 벨 눌러주세요."
미끌미끌한 얇은 이불버스가 출발하면 난 팔과 다리를 마구 휘젓는다. 어둠 속에서 발생한 정전기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멋진 불꽃놀이를 이룬다.
"지금은 별나라를 지나고 있습니다. 혹시 내리실 분 계신가요? 없으시면 그냥 지나갑니다~ 그다음은 무지개 꿈나라 역입니다."
"띠이. 벨 눌렀어요~"
빛이는 하늘이를 데리고 버스를 빠져나간다. 나갈 때 이불까지 훔쳐 달아나며 자지러지게 웃는 것도 하나의 코스다. 하늘이와 다음 목적지를 상의한 빛이는 다시 이불을 들고 돌아온다.
"버스 왔습니다아~ 다시 만들어 주세요오~"
"알겠습니다. 빛이랑 하늘이랑 이번엔 어디로 가실 건가요?"
"모래놀이 꿈나라요!"
"네. 출발합니다. 모래놀이 꿈나라엔 뭐가 있지요?"
"조개랑, 불가사리랑..."
그렇게 모래놀이 꿈나라로 가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우유구름 꿈나라와 바다수영 꿈나라 등을 몇 번 오가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진짜 꿈나라에 도달한다.
하루가 끝나는 것으로 밤을 맞아들이는 것과, 꿈나라 여행을 떠나며 새 하루를 시작하는 건 선택의 문제다. 이런 작은 선택들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늘 희망을 품는 아이들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꿈을 꾼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