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남길 것인가
책을 읽으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한마디 하자고 이렇게 길게 쓴 거야?'
300페이지가량의 책을 읽었는데 결국 남는 건 일찍 일어나라는 얘기고, 베스트셀러라 해서 특별한 통찰을 기대하며 열심히 봤는데 결론은 꾸준히 운동하라는 뻔한 내용이다. 동기부여 영상 30초로도 충분히 표현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기억'이다.
30초 영상을 보면서 다짐한 '나도 운동해야겠다'라는 마음은 30초면 사라진다. 아니, 다음 영상으로 넘기는 순간 이미 잊히고 없다.
그러나, 3시간 동안 받아들인 '꾸준히 운동하자'라는 한 문장은 온몸에 여운으로 스민다. 충분한 시간 생각하며 받아들인 기억은 마음을 움직이고, 가득찬 마음은 몸을 움직이게 한다.
아이들과의 기억을 '글'로 남기는 이유다.
휴대폰에 저장된 아이들 사진을 한 장씩 넘긴다. 중간중간 섞인 영상의 재생버튼도 눌러가며 추억을 되새긴다.
분명 영상이 상황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이상하게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장면 너머의 기억까지 스친다. 간혹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작은 종이 한 장의 흔적은 훨씬 더 깊은 기억의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준다.
'사진 뒷면에 적힌 간단한 메모'
길지도 않은 몇 개의 글자들이 뇌를 자극하는 순간, 추억의 폭죽이 터진다. 사진이나 영상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객관적 기록은 발달하나, 삶에 남는 기억은 점점 퇴화되는 것 같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님이 쓴 한 문장이 떠오른다.
'사진은 순간을 남기고, 글은 기억을 남긴다.'
다 마신 후에도 입가에 향긋함이 맴도는 커피처럼, 향기로운 추억에 머물게 하는 그런 기억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