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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어울리는 삶

6살 사춘기?

by 윤슬기

빛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지 한 주가 지났다.


아이는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한 것 같다. 아니, 적응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일상의 연장선 상 달리고 있다. 집에 오는 길에 '오늘은 어땠어?' 물어보면 항상 그날 가장 웃겼던 일을 말해주고, 신나게 놀았던 이야기를 한다.


하원 후에는 새로 사귄 같은 반 친구와 늘 놀이터 직행이다. 뛰고, 기어오르고, 매달리고, 지칠 때까지 놀아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사실 아이들은 안 지치는데 내가 지친다. 태양도 아이들을 비추다 지쳐서 떨어진다.


놀이터마저 지쳐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침에 빛이가 눈을 비비며 기어 나온다. 어제도 신나게 뛰어노느라 피곤했는지 비쩍 마른 몸이 무겁다.


"빛이야, 밥 먹을래?"

"아니."


웬일이지. 아침마다 고기를 구워야 할 만큼 밥을 잘 먹는 아이가 식사거부라니. 그러나 이어지는 빛이의 한마디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에 밥은 내 몸속이랑 어울리지 않아."


밥 대신 빵과 시리얼이 먹고 싶다는 얘기뭐 저렇게 근사하고 어렵게 하는지.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뒤로하고 냉동실에 얼려둔 빵을 꺼낸다.


"그래. 너랑 잘 어울리는 걸 찾아가는 것도 필요해."


음식도, 일도, 사람도.




"나도 빵!"


빵 봉지 소리만 듣고도 눈치챈 동생 하늘이. 언니 따라쟁이 아니랄까 봐 역시나 빵을 요구한다. 어젯밤 피곤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예약취사 맞춰둔 게 억울해진다.


'그냥 잘 걸.'


언니 덕에 뜻밖의 빵을 획득한 하늘이만 신났다. 그와 달리 빛이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


"빛이야, 뭐가 그렇게 심각해?"

"음식이 잘 안 넘어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난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평소처럼 슬쩍 장난을 걸어 본다.


"음식이 잘 안 넘어갈 땐 이렇게 목을 주물주물해서.."

"퉤!"


내가 빛이의 목에 손을 대는 순간, 빛이는 씹고 있던 빵을 다 뱉어내며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는 펑펑 울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뭐지? 사춘기인가?'


물어보 않았지만 순간 온몸이 느꼈다. 이 작은 아이도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느라 굉장히 예민해져 있음을. 늘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싶던 아이의 내면에서는 엄청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유치원생'이 되었다는 자부심과 자존심 때문에 참아낸 눈물도 있을 테고, 칭얼대는 동생 때문에 차마 터뜨리지 못한 '첫째의 설움'도 분명 있었을 거다.


그래도 눈물이 터져서 다행이다. 주기적으로 장을 비워내야 독소가 쌓이지 않고, 고름도 차오르면 깨끗이 짜내듯, 눈물도 제때 쏟아내야 마음이 건강하다.


어린아이는 이렇게 인내와 표출, 참음과 비움을 배워간다.




빛이야, 네 마음 충분히 이해해. 아빠도 너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느라 엄청 씨름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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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