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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벌옷

나눔의 기준

by 윤슬기

"아빠는 왜 신발이 세 개야?"


6살 아이가 묻는다. 하나는 평소에 신는 운동화, 하나는 슬리퍼, 나머지 하나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만 신는 구두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대답하기로 한다.


"빛이야, 하나는 아빠가 평소에 매일 신고 다니는 거지? 또 하나는 신발을 빨면 말리는 동안 신을 게 필요하겠지?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있는 거야. 신발이 없는 사람한테 언제든 빌려줄 수 있잖아."


사실 구두는 불편해서 신기가 싫은데, 내겐 남들에게 예의를 갖추느라 신는 신발이니 '다른 사람을 위해 있다'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럼 난 왜 이렇게 신발이 많아?"


내 대답을 가만 듣고 있던 빛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넌 여기저기서 물려주는 곳이 많잖아. 그리고 넌 발이 계속 자라고 있잖아. 너도 크면서 계속 나눠주면 돼."


아빠의 설득력 없는 말에도 빛이는 뭔가 다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 나 유치원에 여벌옷 가져가야 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은 학기 초에 여벌옷을 위아래로 한 벌 제출한다. 음식물을 흘리든, 양치하다 옷이 젖든, 물감이 묻든, 옷을 버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왜? 지난번에 가져갔잖아. 젖었어?”


이상하다. 옷을 갈아입었으면 기존에 입었던 옷을 가져와야 하는데 가방엔 물병뿐이고, 입고 있는 옷을 보니 아침에 입은 그대로다. 빛이가 대답한다.


“아니. 같은 반에 친구가 바지에 오줌을 쌌는데 옷이 없는 거야. 내가 바지는 집에도 똑같은 게 있어서 그냥 가지라고 줬고, 양말은 선물 받은 거라 나중에 돌려주라고 했어. 근데 엄마한텐 비밀이야.”


같은 옷이 두 벌 있다고 한 벌 나눠준 것도 감동이고, 선물 받은 걸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참 귀하다.


"잘했네! 아빠 생각도 그래. 원래 두 벌 있으면 한 벌은 그렇게 나눠주는 거야."


자신감을 얻은 아이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어. 그리고 그러면 친구랑 나랑 세트로 똑같이 입고 올 수 있잖아!"


이 작은 아이에게도 '나눔의 기준'이 분명하다는 점이 좋다.




빛이야, 엄마한테 비밀로 해달라니까 비밀은 지키겠는데, 막상 엄마한테 얘기하면 엄마는 더 기뻐하면서 칭찬해 주실걸?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데 잘 참아볼게. 그리고 엄마한테 얘기는 안 하지만, 아빠가 글 올리면 엄마가 보는 건 어쩔 수 없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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