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전날
입학식 전날 밤, 유치원 첫 등원을 앞둔 6살 빛이의 말수가 줄었다.
'더 놀자아~ 안 자고 시퍼어~'
원래 같으면 매일의 알람처럼 떼쓰는 목소리가 들릴 시간인데, 평소엔 귀찮다가도 막상 알람이 안 울리니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유치원에 대한 기대와 떨림으로 감정이 오르내리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짠하기도 하다. 빛이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난 입에 달린 모터를 가동한다.
"빛이야, 너 내일 유치원 가기 전에 아침밥 뭐 먹을까? 뜨거운 밥 위에 치즈가 살살 녹는 치즈밥? 달걀간장밥? 간장달걀밥? 달걀치즈밥? 볶음밥? 짜장밥? 시리얼? 고기를 구워줄까? 구워서 고기를 줄까? 미역국에 밥 말아 줄까? 밥에다 미역국 말아 줄까?"
잠시나마 정신을 딴 데로 돌리는 '아무말 대잔치'다. 늘 그렇듯, 빛이는 내가 예로 든 답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달걀밥에다가 치즈는 올리지 말고 따로 줘."
입이 좀 풀린 김에 2절.
"그리고 너 내일 유치원 갈 때 걸어서 갈 거야, 뛰어서 갈 거야, 걷다가 뛰어갈 거야, 뛰다가 걸어갈 거야, 페달 없는 두발자전거 탈 거야, 페달 달린 네발자전거 탈 거야, 씽씽이 타고 갈 거야, 유모차 타고 갈 거야, 아니면 아빠가 엎고 갈까? 안고 갈까? 목마 타고 갈까?"
아빠의 속사포 랩을 끊으며 빛이가 치고 들어온다.
"강아지처럼!"
역시나 예시에 없는 답이다.
"그럼 네 발로 뛰어가겠다고?"
"응!"
힘찬 대답 뒤에 깔깔대는 만족스런 웃음이 뒤따른다.
청개구리의 피를 타고났는지 모르겠지만, 늘 항목에 없는 답을 말하는 아이의 반응이 좋다. 세상이 주는 '보기'의 틀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너만의 길을 맘껏 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