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9일
지난 7월 말,
비전트립을 위한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주일에 스무 살 새내기 Y가 찾아왔다.
“쌤, 저도 비전트립 가고 싶어요!”
‘신청기간 끝났는데? 진작 신청하지 그랬어.’
순간 장난기가 올라와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은
그 간절한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 앞에 쏙 들어갔다.
장난치려던 마음을 눌러 담고 대신 질문을 하나 던졌다.
“왜 이제 와서 갑자기 가고 싶어졌는데?”
“저 원래부터 가고 싶긴 했는데
학교 수업도 있고, 엄마도 못 가게 하실 것 같고 해서
그냥 이번엔 못 가나보다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기도회 때 진짜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신기하게 때마침 엄마가
‘너도 비전트립 가보지 않을래?’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말씀드려봐야겠다 해서 왔어요.”
이미 신청기간은 한참 지났고,
원칙대로라면 받지 않는 것이 맞겠지만,
저 말을 듣고 누가 안 데려갈 수 있을까.
안될 거라고 생각해서 두드려보지도 않으면
삶에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용기 내어 두드리면 없던 길도 생긴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가자! 근데 지금 당장은 티켓이 없을 거야.
어떻게든 한번 알아보자.”
이제 내가 하나님 마음을 두드릴 차례인 것 같다.
며칠 뒤면 D가 이스라엘로 떠난다.
개인적으로 먼저 한 달 정도 여행을 하고
일정에 맞춰 튀르키예로 넘어와 합류하기로 했다.
선발대, 혹은 정탐꾼을 보내는 기분이랄까.
우리도 곧 가게 될 거라는 기대와 설렘을 준다.
D가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그저 관광을 목적으로 가는 거였으면 팀 분위기상
비전트립 이후로 일정을 미루라고 했을 것 같지만,
진지하게 삶의 길을 묻고자 떠나는 여행이기에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응원하며 보낸다.
많은 청년들이 의지하는 든든한 맏언니이자
비전트립 준비에도 누구보다 힘써온 D이기에
한 달간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바르게 잘 성장해가는 것,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
결국 비전트립도 그 때문에 가는 거니까.
이 여행을 위해 D는 직장을 그만뒀다.
3월에 함께 끊은 항공권(환불불가)도 포기했다.
이 갈급함이 어떻게 응답받을지 기대된다.
삶의 쉼표를 찍고 떠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그곳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기를 축복한다.
우리가 처음 100만원에 끊었던 항공권 가격은
140, 170으로 치솟더니 220만원을 훌쩍 넘어갔고,
지금은 그마저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 몇 주간 아무리 들여다봐도
티켓은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제발 딱 한 장만 더….’
해외 배낭여행 경험이라도 좀 있는 청년이었으면
다른 비행편을 알아봐서 스스로 찾아오라 하겠는데
올해 갓 대학생이 된 경험 없는 막내 Y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미리 끊어둔 항공권을 포기하고 먼저 여행을 떠나는
D에게 연락했다.
“Y꺼 티켓을 구해야 하는데 돈 좀 더 주고라고
티켓 양도할 수 있는 방법 있는지 알아봐줄래?”
역시나 양도는 어려웠다.
애초에 비용을 아끼려고 환불이나 양도가 안 되는
티켓을 끊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나마 여행사를 통해 답변 받은 가능성 한 가지는
취소한 티켓이 다시 떴을 때 빠르게 재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대기예약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뭐라도 해봐야했다.
우선 D가 사이트에서 자신의 티켓을 취소했고,
그때부터 티켓이 뜨는지 수시로 검색에 들어갔다.
취소한 여행사사이트에서 항공사에 취소요청을 하고,
항공사에서 취소처리 후 다시 항공권 판매를 요청하면
여행사에서 다시 사이트에 티켓을 판매하는 구조라
언제 항공권이 올라올지 예측할 수가 없다.
며칠째 잠복근무 서는 형사처럼,
Y, D, 나까지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항공권 판매 사이트만 그저 바라보는 중이다.
그렇게 5일째가 되는 오늘,
Y가 캡쳐화면을 하나 보내며 묻는다.
“이거 우리 가는 비행기랑 같은 비행기 맞죠?!”
맞다.
진짜로 떴다.
빠르게 끊었다.
“저 진짜 튀르키예 가용~~ 꺄아아앙~~”
1,873,200원.
이 상황에 가격이 뭐가 중요한가.
남들보다 거의 80만원 더 주고 끊은 티켓이지만,
80억 주고도 못 살 경험을 하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Y는 비전트립의 막차를 탔다.
같은 시각.
극적으로 티켓을 구한 Y 못지않게 신난
또 한사람이 있었으니, D였다.
“저 비행기표 그냥 다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절반 정도 환불됐어요!”
환불불가 티켓이라 당연히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절반이 넘게 환불됐다고 한다.
그렇게 잠시 신나하던 D는
이렇게라도 후원할 수 있어 기쁘다며
환불받은 전액을 비전트립에 후원했다.
꽤나 큰 금액이다.
처음엔 '그냥 너 여행할 때 써~'라며 말렸지만
환불받은 기쁨보다 후원하는 기쁨이 더 큰 것 같아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그 마음이 참 귀하다.
D의 이번 여행이
후원한 그 기쁨보다 더 큰 기쁨으로
선물처럼 다가왔으면 좋겠다.
주일에 교회 카페에서 Y의 엄마와 마주쳤다.
인사를 하며 서로 무슨 얘기를 할지 이미 아는 듯
눈으로 절반의 대화를 마쳤다.
“Y 티켓 구한 거 들으셨죠? 너무 잘 됐어요!”
“팀에 폐 끼칠까봐 걱정했는데 진짜 다행이에요.
그러게 남들 할 때 진작 좀 끊지.”
“학교 수업 때문에 부담이 컸었나보더라고요.”
“그러니까요.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예상했던 반응과 조금 다른 느낌이랄까.
순간 이전에 했던 Y의 말이 기억났다.
‘엄마가 못 가게 하실 것 같아서….’
Y는 학교 수업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엄마 역시 같은 이유로 반대하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전혀 달랐다.
보내고 싶지만 스스로 선택하길 기다리는 마음.
우린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러면서 그 마음을 잘 묻지도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계속 물어야겠다.
그분의 마음을 제대로 알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