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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기 Aug 25. 2022

잃어버린 건 물건일까 추억일까?

이집트 호텔에서의 추억

피라미드에서 온갖 사기행각과 

극심한 호객행위로 영혼까지 털렸다.  

이집트에서는 정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나일강 근처에 묵었던 호텔은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자 가격이 급상승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좀 더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다음 날 일찍 짐을 챙겨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으나,

오버부킹이란다.  


“다른 숙소에 연락해뒀으니

하루만 거기로 다녀오세요.”  


그래도 주인이 자신의 실수라며 

택시까지 불러준다.  


‘오! 생각보다 좋은데.’


임시로 하루 묵게 된 호스텔은 15층에 위치해

카이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만족스러웠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구경하다가

사진을 한 장 찍으려는데,


‘휴대폰이 없다!’

‘마지막으로 쓴 게 어디였더라…’

‘아! 택시 안!’  


정신없이 로비로 달렸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다행히 아까 그 택시 기사와

숙소 주인이 한창 대화 중이다.


‘택시 기사가 발견했다면 이미 챙기지 않았을까?’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최대한 아무 일 아닌 듯 말했다.  


“택시에 뭘 좀 두고 내린 것 같은데요.”  

뭘 두고 왔냐 묻기에 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Just my cell phone.”


워낙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도 많고,

피라미드에서 이미 그들의 진가(?)를 경험했다.  

돌아보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싸구려 물건이라는

인상을 풍기려 최대한 노력한 것 같다.


택시 기사는 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택시 구석에 떨어진 휴대폰을 찾아 주워줬다.  


‘와 대박! 폰이 그대로 남아 있다니!’


속으로 환호했지만

차분히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후우…, 말도 안 돼. 아오… 어휴….”


혼자 타고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15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얼마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다음 날,  전날 오버부킹되었던 숙소로

다시 옮기기 위해 준비했다.  

하루만 쉬었다 가는 거라

어제는 아예 짐도 안 풀었다.  


배낭을 그대로 짊어지고 나가려다  

습관적으로 배낭 뒤쪽을 쓰윽 만져봤다.


“노트북이 없는데?”


아내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혼비백산이 되었다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봤다.

‘전날 호텔에 두고 왔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가능성을 둘 수 있는 곳은 거기밖에 없다.

일단 달렸다.


재빨리 체크아웃을 하고,

얼른 택시를 잡아 호텔로 갔다.

리셉션이 있는 3층까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저장된 수많은 사진들, 기록들, 정보들….’

‘없으면 새로 사야 하나? 노트북 없이 여행할까?’

‘여기 없으면 찾을 희망이 없는데,

 그냥 건강하게 여행하고 있는 것에 감사할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리셉션에 보이는

두 사람 중 한 명을 붙잡고 급히 물었다.


“혹시 여기 두고 간 노트북 있나요?”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아. 끝났구나.’


그런데 갑자기 다른 한 사람이  

서랍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찾아 꺼내준다.

겨우 몇 초 사이였는데,

그 순간이 완전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땡큐! 땡큐!”


전날 택시 기사에게 보였던 차분함 따위는 없었다.

소리를 지르며 감사를 표했다.  

악명 높은 이집트에서 

이틀간 정말 놀라운 기적이다!



‘당신이 가진 보물 1호는 무엇인가요?’  


보통 사람들은 이 질문에 값비싼 물건보다는

의외로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외장하드가 고장나면

자료 복원에 더 신경을 쓰는 것처럼,

물건 자체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어찌 보면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휴대폰, 노트북인데…  

우리가 그렇게까지 마음을 졸인 이유도,

되찾았을 때 소리를 지르며 기뻐한 이유도,  

그 안에 담긴 소중한 기억들 때문일 거다.


내면의 삶이 풍요로운 사람들이

왜 소유보다는 경험과 기억,

존재의 가치에 더 무게를 실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564일간 67개국 공감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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