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집 정원일기 6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하산하고 있을 터. 호우주의보가 내려 이번 주 입산을 포기했고, 다음 주에 할 특강을 미리 했다.
비가 오면 계단 청소를 한다. 샤워한 물을 욕조에 받아놓고 다음 날 대야에 담아 계단에 부어서 여름날 열기를 식히기도 하지만 비가 오면 계단 청소하기에 딱이다.
특강도 했고 최종 퇴고도 했고 계단청소도 하고 나니 심심하다. 누구를 불러 김치전을 부쳐 먹고 싶지만 연락할 사람이 없다. 아무도 근처에 살지 않으니까.
그릇이 없어 냄비에 밀가루와 물과 우유를 붓고 달걀도 깨뜨려 넣었다. 썰어놓은 김치를 숭덩숭덩 넣으니 좀 묽다. 밀가루를 더 부었다. 팬을 가열하며 압착 유채유를 넉넉하게 부었다. 그리고 반죽을 통째로 들이부었다. 비를 맞고 따온 쑥갓을 얹고 파도 좀 썰어 올렸는데 뒤집어보니 두껍다. 접시에 담아 먹어보니 역시나 아무 맛이 없다. 두 번에 나눠할 걸, 먹을 사람이 나뿐이니 한 장에 한 게 피자도 전도 떡도 아닌 이상한 부침이 되어 버렸다. 김치부침개를 이렇게 못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결국 부침개에 김치를 얹어 먹었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는 맛있게 먹기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식을 남기진 않는 편이다.
며칠 전 식당에서 남은 걸 싸 온 게국지는 먹을 때마다 감사하는데, 종강 때 먹고 남은 도넛과 콜라는 지나치게 달다. 단맛을 싫어하던 내가 어느덧 심심하면 단 음식을 찾는다. 살이 찐다는 증거다. 비만의 요인인 밀가루 음식을 끊어볼까 했는데, 어제 특강하고 오는 길에 유기농매장에 들러 석 달 만에 식빵을 사버렸다. 친구 네서 보리수 잼을 만들어 식빵에 발라먹는다는 소리에 잼도 없으면서 이상한 충동구매를 했다. 식빵을 사면서 쌀 2kg과 혼합 10곡 1kg도 샀다. 이사 올 때 선물 받은 쌀이 거의 떨어지고 있었다. 몇 년 간 한 달에 쌀 1kg 정도씩을 먹었다. 전북농민회장은 그렇게 쌀을 안 먹으면 농민들은 어떡하냐고 투덜댔지만, 다시 하루 두 끼를 유지하며 당분간 소비하지 않는 생활을 해야겠다.
어제 처음으로 여름 고무신을 꺼내 신고 앞치마를 입고 콩이와 산책을 했다. 해 질 녘이면 그렇게 걷는데, 비가 오면 자전거도 못 타고 산책도 못 하니 더 심심하다. 어젯밤 거실 창틀에 들어온 청개구리가 온종일 난간에 붙어있다. 심심하지도 않은가?
종일 오던 비가 잠시 그친 듯해 우비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나갔다. 온종일 나만 기다린 콩이가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콩이는 나란히 걸으며 자꾸만 목줄을 쥔 나를 쳐다본다. 함께 걷는 게 정말 좋다는 표정이다. 아니면 주인 있는 개임을 즐거이 확인하는 듯하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시골길, 야산은 우우웅 나도 숲이라고 과시하듯 무서운 소리를 내고, 고인 물엔 커다란 연꽃잎이 떠있고, 야생초와 들꽃은 바람에 휘영청 휘영청 몸을 흔든다.
산책로 2km의 중간 지점에서 왼쪽 발뒤꿈치가 아렸다. 맨살이 까졌다. 누가 고무신을 편하다고 했는가.
집에 돌아와 이발기로 콩이 미용을 시켜주었다. 무더운 여름을 나기엔 털이 매우 북실거려 산책이 끝날 때쯤 헉헉대기 때문이었다. 싸구려 간식 조금으로 보상하며 털을 밀어주는데 피하던 콩이가 자꾸만 엉덩이를 내쪽으로 댄다. 개가 엉덩이를 사람 쪽으로 대는 건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란다. 콩이는 나를 믿나 보다. 알아듣지도 못할 사람 말로 괜찮다고 중얼대며 서툰 손길로 뭉턱뭉턱 털을 밀어내는 나를. 빗방울이 다시 굵어져 마무리 빗질을 해주곤 잘 자라고 인사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우비를 뒤집어 땀으로 젖은 면을 물로 헹구어 걸고, 몸도 씻는다. 물에 닿은 발뒤꿈치가 쓰라리다. 걸어도 배는 고프지 않고 집안에는 음악만이 가득하다. 청개구리는 그때까지도 꼼짝하지 않고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있다. 심심하지도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