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움과 바다

이층집 정원일기 7

by 일곱째별


탈핵을 자본으로부터의 탈출로 여겨 비움 실천을 했었다. 가진 것들을 아주 많이 버렸다. 그리고 차 한 대로 전국을 다녔다. 그러다 임시지만 직장을 갖게 돼 정착했다. 차 한 대에서 방 둘과 거실 하나에 주방까지 있는 꽤 넓은 집으로 공간이 스무 배쯤 확장되었다.

한 사람에게 적정한 평수는 4~5평이라는데 이 집은 내게 너무 크다. 처음엔 소리가 울렸다. 공간마다 커튼을 설치했고 책상과 테이블이 들어왔지만 아직 안정감이 많지 않다.

종강을 하고 계획했던 산행은 장마로 무산되고 거절했던 계절학기 3주가 다 지났다. 여행도 순례도 못 하고 돈도 못 벌고 그렇다고 글을 쓰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로 세계가 불안한 상태다.

뉴스에 따르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7월 4일(현지시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 저장된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려는 일본의 계획이 IAEA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 냈다고 한다.


어딜 가도 현수막이 붙어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와 괴담론이다. 여당 의원들은 아직 오염수 해양 투기 전인데 국내 수산물을 날로 먹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故 아베 총리가 후쿠시마 수산물을 먹는 행위로 기자회견을 했던 것과 비슷하다. 자국민 안보를 우선해야 할 정치인의 국적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일은 여야가 힘을 모아 막아야 할 일이지 정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의 밥상과 건강을 위해서. 해산물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실은 방학하고 밥을 지은 적이 거의 없다. 등반용품으로 구매했던 음식도 거의 그대로이고, 새로 산 쌀은 봉지도 뜯지 않았다.


얼마 전 이다가 강화도 감자와 양파와 노각을 보내주었다. 며칠째 감자만 쪄먹는다. 미니압력솥에 밥을 하면 두세 끼가 나오는데 밥이 남아 그냥 두면 쉬고, 냉장고에 넣으면 딱딱해져서 볶거나 끓여 먹어야 한다. 제비꽃한테 사달라고 한 밥통은 예쁘긴 한데 밥을 담아놓으면 전기를 써야 한다. 밥 조금 때문에 전기 코드가 꽂힌 걸 보는 게 싫어 밥통을 잘 쓰지 않는다. 여름 지내려고 사달라고 한 밥통인데 전기 아끼자고 밥을 안 먹는다니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도톨이 사준 세탁기도 한 달에 두세 번밖에 쓰지 않고 거의 손빨래를 한다.


이렇게 전기를 아끼는 내가 요즘 걸핏하면 캠핑용품 검색을 한다. 커피를 조금 마셔도 잠은 안 오고 독서도 집필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휙휙 보내는데 드는 생각은 자본주의에 홀리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 쾌락에 사로잡히면 맘몬(재물)신을 섬기게 된다.

그럴까 봐 고르기만 하고 정작 사지는 못한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석 달 넘어 책꽂이를 주문했다. 물품가의 절반 정도가 배송비다. 그래도 서울에서 본 비슷한 제품보다 십여만 원 정도 저렴하다. 서울에서는 배송비를 생각하면 아예 주문하지 못한다.

명색이 작가가 책꽂이도 없이 택배 받은 종이상자에 책을 넣고 지냈으니 작은 책꽂이 하나 산다고 흠이 될 건 없다. 그런데도 물건을 주문하고 나면 마음이 복잡하다. 소비에 대한 불편감이다. 소비는 자본주의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는 소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과소비와 물질 위주의 삶이 문제인 것이다.

또 하나는 이동에 대한 불안감이다. 짐이 많아지면 옮기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상자에 세워 넣었다가 그대로 차에 실으면 편리하다. 부피가 큰 물건은 차에 싣기에 곤란하다. 최소한으로 살려고 하는데 자꾸만 짐이 는다. 그러다 기사를 하나 읽었다.

https://www.cc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5682


내 친구와 그의 친구들이 나왔다. 리산, 온도, 산책, 후. 새벽만 빼고 만나본 사람들이다. 계절마다 옷이 두 벌씩이란 친구를 보고 오래된 옷과 물건들을 왕창 버렸었다. 2019년 가을이었다.

http://www.gilmokin.org/index.php?mid=board_02&page=4&document_srl=9528


그러던 내가 넓은 공간을 채우려고 혹은 정리하려고 뭔가를 사고, 바깥 생활에 필요한 캠핑용품을 고르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의 이유도 자본이다. 일본은 돈을 아끼기 위해 핵 오염수를 인류가 함께 쓰는 바다에 버리겠다고 한다. 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동의하고 있다. 바로 옆 나라 여당도 찬성하고 있다. 그들 말대로 인체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까? 부합한다는 안전 기준은 과연 어떤 기준일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쓰나미라는 천재지변에 의한 것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담당자가 원자로에 냉각수로 바닷물을 넣는 스위치를 선택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폭발 직전의 순간, 바닷물을 부으면 복원할 수 없는 발전소에 들어간 자본을 아까워한 인간이 초래한 사고였다. 자본이 아까워 사고를 발생시키고 또 저장할 수 있는데도 자본이 아까워 방류 아니 투기하겠다는 일본의 이기주의.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 강국들과 국제원자력기구 IAEA. 그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한 나라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함께 쓰는 바다가 오염된다는 건 도래할 사실이다. 소금 없이 할 수 있는 요리가 거의 없듯이 누구도 바다와 상관없이 살 수 없다. 바다가 병들면 먹이사슬을 타고 지구 전체가 앓게 된다.


7월이다. 비우려고 버리다가 다시 사는 나 역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최소한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 집에 있는 것들을 버리지 않기 위해 먹기에 힘써야겠다.


노각을 무쳤다. 껍질을 깎고 세 등분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소금에 절인 다음, 고추장, 고춧가루, 매실청, 설탕, 파, 깨를 넣고 무쳤다. 노각 무침과 감자로 저녁 식사를 했다.


노각 무침이 입맛을 돌게 했나 보다. 다음 날 오랜만에 밥을 했다.

백미 반 컵, 오분도미 반 컵, 마지막 완두콩 와르르. 쌀을 씻어 30분쯤 두고 그 사이 된장찌개를 끓였다. 유통기한 지난 두부는 부침과 찌개용으로 조리해 놓고는 맛이 약간 이상해서 버리고 말았다. 냉장고를 보니 오이가 봉투에서 물러 있었다. 껍질을 깎고 숭덩숭덩 잘라 먹으려고 하는데 오이에 칼이 미끄러졌다. 왼손 가운데 손가락 끝에 칼날이 닿았는데 피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보니 손톱 일부가 잘려 있었다. 단단한 손톱이 아니었으면 손가락을 크게 벨 뻔했다. 며칠 만에 밥을 먹고 커피도 못 마실만큼 오후가 훌쩍 지나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집회가 있는 날인데 나는 강경으로 향했다. 지난번 군산까지 자전거 순례했던 지점으로 갔다. 거기서부터 반대 방향인 부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오후 4시가 넘어 돌아올 시간을 감안하면 멀리 가진 못할 게 뻔했다. 금강종주자전거길 부여 24km 지점에서 돌아왔다. 3시간이 걸렸는데 해가 길어 출발지점까지 돌아왔을 때 어둡지 않았다.


비로소 배가 고팠다.

그래도 샤워와 빨래를 먼저 했다. 속옷 둘, 양말 두 짝, 다리 토시 두 짝, 자전거 팬티, 반 바지, 긴팔 옷, 마스크, 장갑. 몇 시간 사이에 빨랫감이 지나치게 많다.

밥을 먹고는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내가 얻어먹은 것들이다. 어찌 된 게 수산물은 하나도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노트북에 있는 유일한 영화 <RAYON VERT>를 보았다. 7월의 영화다. 주인공 델핀이 나와 닮았다기에 보게 된 영화. 이제 나는 델핀처럼 아무 때나 울진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는 점은 같다.

델핀은 채식주의자다. 나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음식의 근본을 따지는 편이다. 친구들이 보내준 채소는 모두 안심하고 먹는다. 내게 먹을 걸 보내준 이들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 노각, 완두콩, 자주감자, 감자, 양파, 죽순. 너무 못 그려서 덧칠을 하다 보니 기존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왔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온 바다와 해도 넣었다. 바다에 대한 생각이 매우 많은 나날이다.



keyword
이전 05화여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