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지

이층집 정원일기 8

by 일곱째별


비가 흩뿌리다 말다

나가란 건지 말라는 건지


콩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낮에 한 번

초저녁에 한 번


낮에 나갔다가 내 옷차림이 시골에 어울리지 않음을 알았다.

초저녁에도 나갔지만 역시 또 옷차림이 눈에 뜨임을 알았다.

날이 덥고 습하니 얼마 없는 옷 중 무난한 게 그리도 없나. 차라리 앞치마를 입고 나가는 게 낫겠다.


나갔다 올 때마다 입었던 옷을 모두 빤다. 땀이 나기도 하고 콩이가 닿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텃밭에라도 들르면 알 수 없는 수만의 벌레들이 발과 옷에 붙기 때문이다.


텃밭에 갔더니 통통하고 귀티 나는 자줏빛깔의 가지가 땅에 닿아있다.

어서 따주길 바라는 듯.

가지 네 개를 따왔다. 쓰러진 상추에 남아있는 멀쩡한 이파리도 뜯어왔다.

식물 입장에서는 시들어 땅에 닿아 뭉그러져 죽어가는 것보다 사람에게 먹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라며 감사하게 먹기로 한다.


가지를 썰어 생으로 한 조각 먹어보니 달콤하다. 밀가루 옷을 입혀 가지전을 부치면 막걸리랑 함께할 사람이 그리울 것 같아 간단하게 팬에 버터와 유채유를 두르고 부쳤다. 소금만 뿌렸는데 매우 맛있었다.

늦은 밤 다시 가지 하나를 썰어 유채유에 부치고 이번엔 마늘버터 스프레드를 뿌렸다. 인공 단맛이 가미되니 맛이 좋지 않았다. 가지의 순수한 맛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가지가 알려주었다.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라고. 아무것도 첨가하지 말라고. 그래도 충분히 괜찮다고.


이층집 정원일기 - 가지.jpg


keyword
이전 06화비움과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