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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순례길 5-2
아홉 마리 용을 타고 싶어

7번 국도 순례길 5-Day 2. 양포항~구룡포항 16.2km

by 일곱째별


아홉 마리 용을 타고 날아오르고 싶어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도보순례 둘째 날


새벽 다섯 시면 눈이 떠진다. 전기패널이 꺼져있다. 침대가 아닌 바닥에 요를 깔고 얇은 이불을 덮고 잤다. 외풍이 세서 앉아있으면 어깨와 등이 시리다. 배가 고파 초코파이를 먹었다.


여섯 시 오십 분에 다시 잤다. 바깥바람이 세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와 세수하고 스트레칭. 요 아래 깔아놓은 양말 두 켤레가 바싹 말랐다. 빨랫줄에 걸어놓은 버프 둘과 속옷도 말랐다.

영하 9℃. 어제에 이어 내복 바지 둘에 바지, 위에도 내의에 폴라티에 후드티에 회색 지퍼형 셔츠,

아침 식사로 따뜻한 물에 소형 포장된 에이스 한 봉과 플랑 과자. 홍삼액, 홍삼단, 비타민 C를 먹는다. 텀블러에 정수기 온수를 받아 전날 황분희 부위원장님이 주신 생강 원액을 섞는다. 전날 마셔보니 맹물보다 목 넘김이 훨씬 좋았다.

전날 안내하는 분은 방이 하나 남았다더니 고요한 기척으로 봐서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목욕탕은 수요일 휴업이었다. 따라서 근처 식당도 휴업이다. 나는 전날 묵었으니 운이 좋았다.


9:40 출발.

시작부터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아프다. 전날부터 그랬다. 참고 걷는다.


10시 신창 2리 창바우마을이란 곳에 다다랐는데 바다가 매우 예뻤다. 처음 보는 동해처럼. 풀빌라로 가려진 바다만 보다가 수평선이 보이게 쫙 펼쳐진 바다를 본 게 얼마 만인가. 그곳은 해송피크닉장이었다. 차박이나 캠핑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나중에 다시 와서 캠핑해 보고 싶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런 깨끗한 곳이었다. 풍경이 좋아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로 쌓아놓은 둑에 앉아 바다와 파도를 보았다. 잠시 후 발을 옮기는데 저만치 인부들이 공사를 한다. 난간 공사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곳이 막 개발되는 때에 온 것이었다.


신창 창바우마을 앞바다


신창 1리 지나 죽하를 지나는데 마을 지붕이 온통 주황색이었다. 나는 주황색을 좋아하지만, 마을에서 일괄적으로 주황색 지붕을 하라고 지시하면 하기 싫을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한 집만 딱 밤색 지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그 동네에서 제일 부자처럼 보였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주황색 지붕 마을


영암 3리를 지나 대진리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인터넷에서 봐 둔 평 좋은 칼국수집이 있었다. 도로 옆으론 덤프트럭이 쌩쌩 지나는데 나는 바득바득 걸었다. 칼국수를 먹기 위해서. 아침 식사도 과자로 때웠으니 배가 고팠다. 다 와서 헤매다 정오 전에 마침내 찾은 칼국수집. 그런데 이상하다. 유리문 안을 보았더니 우산 더미가 쓰러져 있다. 우환 있는 집 같았다. 당연히 영업은 안 했다. 두 시간 만에 갑자기 허기와 피로가 몰려왔다.

거기서부터는 비실비실 모포 2리와 1리를 지나 구룡포읍으로 고개를 넘어 올랐다.


파도도 얼고


정오가 조금 지나 구룡포휴게소에 곤지암 할매 소머리국밥 간판이 보였다. 만 원짜리 소머리국밥을 시켰다. 요즘 식당 음식에는 만 원 미만이 없다. 시뻘겋게 언 얼굴로 뜨거운 국물에 밥을 조금씩 말아먹는 나를 보더니 여주인이 말한다.

“필요한 거 있으면 더 드릴게요.”

고맙다. 밥을 다 먹어가자,

“커피 드시고 몸 녹이고 가세요.”

어제오늘 좋은 식당을 만난다.

“차도 안 다녀요. 너무 추워서.”


주인만 말하고 나는 미소 외 할 말이 별로 없다. 이 추운 겨울에 차도 안 다녀서 장사도 안 되는 영하에 여자 혼자 길을 걷는 게 일반적이진 않으니까. 하지만 입은 옷이나 몸자보를 보아서 대충 무슨 일 하는 사람인지 알 순 있으니까. 옷을 다 입고 ‘이주만이 살길이다’ 노란 조끼를 입자,

“아~ 그 옷이 보호가 되겠네요. 여자 혼자 다니면 아무래도 위험하잖아요.”

그렇구나. 이 옷은 입고 다니기 어려운 옷인데 이 옷이 오히려 나를 보호해 주는구나.

나서는 나를 향해 여주인이 말한다.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싶은데…….”


남주인이 재빨리 낚시용품과 식당을 동시에 운영하는데 (어떻게 그러냐고)라고 막아 나선다. 아이가 있는 부부는 쉴 틈이 없다.


내 또래 기혼 여성이 나처럼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안락한 가정과 가족의 도란도란함과 보호받음을. 그래도 그 안에 있는 여성이 잠시나마 나를 부러워한다니 기분이 좋았다.


들어가는 물길도 어는


성동리, 구평리 지나 장길리 정자에서 잠시 쉬며 물을 마셨다.

강으로 통하는 하천도 얼어붙은 겨울 오후에 초록 푸른 노란색이 섞인 바다는 새하얀 포말을 얹고 출렁인다.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이니 색도 오묘하고 얼지도 않는다


하정리에서 내내 고민하던 지점이 나왔다. 포항과 구룡포로 나뉘는 갈래 길이었다. 7번 국도 순례라면 굳이 해파랑길로 빙빙 돌아갈 필요가 없다. 게다가 자전거길은 꼬불꼬불 돌아 길이가 더 늘어난다. 포항으로 가는 직선 도로로 간다면 여정을 이틀은 줄일 수 있다.


갈림길


구룡포 길을 택했다. 살모사 바위를 지나 길 건너에 커피숍이 보였다. 부동산도 겸하는 듯했다. 몸을 보호해야 해서 커피 아닌 다른 걸 마실까 하고 메뉴판을 보니 가격을 올려 덕지덕지 붙여놓은 가격표가 불결했다. 여자의 얼굴을 슬쩍 보니 세파에 찌든 게 역력했다. 그런 기운에 닿고 싶지 않았다. 실내가 따뜻해서 좀 쉬고 싶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짐을 챙겨 나왔다.


다시 길 건너 조금 가다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 건설 중인 아파트가 보였다. 다시 온다면 바다뷰 아파트가 다 지어져 있겠지. 적어도 바다와 건물 사이에 길이라도 두는 건 양심 있는 행위이다. 바닷가 절벽에 지어 길에 다니는 사람이 못 보게 풍경을 독점하는 건축 행위는 법적으로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


구룡포에서는 배를 만든다


병포리를 통해 구룡포항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구룡포는 번화했다. 전통시장도 규모가 컸고 오가는 사람도 차도 많고 도로도 넓었다.

거리로 따지면 이날 삼정 해수욕장까지 가도 됐다. 그런데 나는 이날 구룡포항에 머물 작정이었다. 왜냐면 봐 둔 숙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숙소는 항구 맨 끝에 있었다.


세 시밖에 안 됐는데 도착 지점이 가까워져 오니 기운이 빠지고 다리도 아프고 손도 아팠다. 스틱의 플라스틱 손잡이가 땅 짚는 충격을 퉁퉁 고스란히 손으로 전달해 엄지와 검지 사이 혈관이 부어올랐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그때 지리산 화대종주 때 들고 간 중고 스틱이 떠올랐다. 그 스틱의 손잡이는 코르크였던 것 같다. 잡았을 때 아프지 않았다. 그제야 그 스틱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느껴졌다. 그걸 구해다 준 도반에게도.


아픔


택시 타는 곳을 지났다. 그런데 몇 발자국 가다 다시 돌아갔다. 할머니 한 분이 땅바닥에서 귤을 팔고 계셨다. 그 추운 날에.

“할머니, 그 귤 얼마예요?”

“만 원에 이거 다 드릴게.”

몇 개만 사려고 했었다. 무게가 나가는 건 짐이고 혼자 귤을 몇 개나 먹을 수 있겠나. 그런데 할머니가 상자에 깔린 귤을 검은 비닐봉투에 다 담으신다. 다 팔고 집에 가시겠다고. 얼핏 봐도 스무 개 남짓이다. 말리지 못하고 만 원권 한 장을 건넸다. 귤은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스틱 들고 비닐봉투 드니 기운이 부쳤다. 비척비척 숙소를 찾아갔다.


다 팔아야 집에 갈 수 있는 귤


호텔 223. 7만 원의 비교적 저가 호텔인데 예약하지 않았어도 자리가 있었다. 프런트의 남자에게 귤을 드려도 되느냐고 묻고는 다섯 개를 드렸다.

이 층 방을 배정받았다. 문을 열자마자 “와-”탄성이 나왔다. 전면 통창으로 테트라포드와 바다와 하얀 시트 침대와 아일랜드 식탁 위 세면대와 포트와 커피와 차와 위생용품 그리고 간유리로 분리된 욕실과 화장실. 하얀 실내화 두 켤레와 동그란 탁자와 의자. 직사각형 방에 이렇게 있을 게 다 있을 수 있구나. 완벽한 미니멀리즘 생활이 가능할 듯한 깔끔함. 그곳에서 며칠 살고 싶을 정도였다.


이틀째 내의는 물론 목폴라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이곳에선 세탁해서 자연 건조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말릴 헤어 드라이기가 있다. 샤워하고 속옷, 양말, 버프, 두꺼운 내의와 폴라까지 싹 세탁했다. 머리를 말리고 침대 시트 위에 누웠더니 서쪽 창끝에서 얼마 남지 않은 햇빛이 강렬하게 비추었다. 무척 쾌적해서 밖에 나가기 싫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해서 외출했다.


아직 해가 남아있어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에 가보았다. 구룡포에는 세 번째 온다. 2012년 겨울 ebs <한국기행> 때 답사하러, 2020년 여름 나아리에서 도보순례하러 삼척으로 가던 길에 밥 먹으러, 그리고 이번. 그런데 근대가옥거리에 있는 그 계단을 올라가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양옆으로 돌기둥이 서 있는 그 계단을 올라갔다. 왼쪽 61, 오른쪽 59개의 그 돌기둥은 1944년에 세워졌는데 구룡포항을 조성하는 데 기여한 일본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다음 해 패전으로 일본인이 떠나자 주민들을 이름에 시멘트를 바르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세웠단다. 그런데 그 위에 충혼각을 세우면서 후원자의 이름을 다시 돌려세운 돌기둥에 새겼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갔다. 구룡포라 아홉 마리 용이 있었다. 아홉 마리 용. Nine Dragons. ND.


龍용의 승천-새빛 구룡포


계단을 내려와 근대가옥거리로 무얼 먹을까 둘러보며 걸어 들어갔다. 모리국수 전문점 할머니 본가가 있었다. 모리국수가 뭔지 먹어보고 싶었는데 2인분만 된다고 한다. 1인분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두 가지뿐. 그 중 홍게라면을 주문했다. 도보순례에 라면이라니 부실했지만, 홍게를 믿어보기로 했다. 잠시 후 할머니가 홍게라면을 가져오셨다. 그러더니 홍게를 가져가 싹 발라오셨다. 먹기 편하라고. 이번 순례에선 친절한 식당 주인만 만나서 좋았다.

“혼자 여행 오셨어요?”

여자 혼자인 것도, 한파인 것도, 손님 없는 가게에서 혼자 먹는 것도 모두 질문을 유도할 만하다. 여행이든 순례든 만 천 원짜리 라면을 다 먹어보다니. 하지만 항구에서 홍게 한 마리 먹어보는 것도 좋았다. 라면이 홍게를 만나 호강하네.


할머니 본가 홍게 라면


식후에 골목을 다시 걸어 나오는데 동백서점이 보여서 들어가 보려고 했더니 출입문은 까멜리아에 있었다. 카페와 문구 선물 가게가 연결돼 있는데 온통 동백투성이이다. 나는 그 드라마를 안 봐서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해서 동백을 한 점도 사게 되지 않았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옆 편의점에 들렀다. 고급스러운 숙소 때문이었는지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이제 이틀, 긴장을 풀면 안 되는데 스페인 산 모스카토 한 병과 페루산 오징어 버터구이와 과자 예감과 아침에 먹을 북어 국밥을 샀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온 적 있고 ‘페루’에 가려다 말았고 토지 서문에 나오는 ‘예감’에 귤까지 더해서 풍성한 안주에 모스카토 두어 잔을 마셨다. 한 병 다 비우면 다음 날 순례에 지장 있을까 봐 자중해서 남겼다.


깜깜해지자 아까 봤던 저멀리 공사 중 아파트도 바다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초록색 등대가 켜졌다. 얇은 커튼을 쳐도 초록빛이 투과돼 방까지 들어온다. 반짝반짝.


방에는 커다란 TV가 있었다. TV 없이 산 지 근 20년이 된다. 한번 틀어보았다. 채널을 넘기다 보니 오디오 채널이 있었다. 그런데 틀자마자 나오는 곡이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였고 다음 곡은 최유리의 ‘’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십여 년 만에 가본 노래방, 그것도 몇 달 전 처음 가본 코인노래방에서 내가 불렀던 곡들이었다.


와인에 음악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채널을 돌렸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37-최종회를 했다. 그 드라마를 보니 근대가옥거리가 왜 동백 천지인지 알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동백이 엄마가 동백이 남자에게 말한다.

“혼자 두지 마. 걔 그만 혼자 있게 해.”

동백이는 좋겠다. 그렇게 말해 주는 엄마가 있어서. 나도 누가 뒤에서 그렇게 든든히 받쳐주고, 사람마다 찾아가서 나를 부탁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실제 주인공은 열 살 연하남과 결혼도 했다.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동백이는 행복해 보인다.

(밤 10시가 다 되어 조연출(AD)에게서 문자가 왔다. 최종 추가 자막 검수 건이었다. 구성이 머릿속에 있으므로 대본을 보지 않고도 체크해 줄 수 있었다. 실무 능력에 관한 한 나도 행복하다.)


ND 타고 창바우마을에서 캠핑하고 싶은 나는 양포항에서 구룡포항까지 꽁꽁 언 길을 16.2km를 걸어와 잠이 푹 들었다.

또 꿈을 꾸었다.




새벽이면

아홉 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곽재구 시 <와온 바다> 마지막 연


초록빛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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