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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순례길 5-3
고독은 아무나 하나

7번 국도 순례길 5-Day 3. 구룡포에서 흥환간이까지 24km

by 일곱째별
고독은 아무나 하나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도보순례 셋째 날

새벽에 오른 엄지발가락이 쑤셔서 깼다.

어릴 적 엄마가 밤에 손톱 깎으면 고양이가 먹고 똑같은 사람이 돼서 온다고 깎지 말라고 하셨는데, 발톱이 빠질까 봐 전날 밤에 짧게 깎은 것이 염증이 되려나 보다. 황급히 마데카솔을 발랐다. 다시 자고 일어났더니 다행히도 통증이 없어졌다. 걱정도 사라졌다. 몸뚱이밖에 믿을 게 없는 도보순례에서는 몸의 감각에 아주 예민해진다.


해가 뜰 때쯤의 하늘은 연노랑 위에 연푸름 빛으로 변한다. 맞은편 건물이 주황색으로 빛 반사하는 것으로 동쪽 어딘가에 해가 떴음을 안다.

비로소 갈매기가 난다. 영하 7℃. 이틀째 갈매기도 웅크리고 앉아있던 혹한.


전날 사다 놓은 황태국밥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전자레인지 없어도 오래 두니 먹을 만하다. 밥을 먹으며 바다의 테트라포드를 바라보는데 까만 새 한 마리가 바닷물이 차올라도 가만히 있는다. MBTI P의 결정판인 나를 보는 듯하다. 의연한 까만 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흘 만에 아침 샤워를 했다. 그만큼 실내가 따뜻하다. 잘 마른 내의를 입고 비치된 드립백 원두커피를 숭늉처럼 연하게 마신다. 뜨거운 물로 컵과 텀블러를 소독하고, 텀블러에 물 끓여 넣고 홍삼단을 섞는다. 쓰다.


호텔이 좋아서 나가기 싫었다.

그래도 나가야 한다.

9시 반쯤 호텔을 떠났다.

15분 후 구룡포 해수욕장을 지나, 10시쯤 구룡포 주상절리를 지나는데 건강종합검진 시 추가로 검사했던 산부인과에서 문자가 왔다. 확인 후 꼭 전화를 달란다. 불안한 것보단 추운 게 나아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장갑을 벗고 전화를 했다. 아무 이상이 없단다. 이상이 있을 리 없었지만 안심이 되었다.


10시 4분 삼정리 해수욕장, 20분 후 석병 1리.


꽁꽁 언


11시 10분, 호미곶이 7km 남았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호미곶에서 11.5km를 더 가는 흥환간이해수욕장. 최장거리 코스다.


그만 지었으면. 바다를 가리지 말았으면.


11시 반, 다무포 하얀마을 고래마을은 마을 전체를 하얗게 칠해서 파란 바다와 잘 어울리는 예쁜 동네였다.

포항역으로 가는 9000번 버스가 계속 지나갔다. 그게 그렇게 마음이 놓였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으니까. 돌아갈 수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거니까.

강사 1리에서 2리를 지나 도로로 나왔다.

정류장에서 잠시 쉬는데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셔서 물으신다.

"어디 이주 말하는 거예요?"

"월성 핵발전소 주변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요."

아~ 오늘의 임무 성공. 한 분이라도 궁금해 하시면 그걸로 됐다.


12시가 지나 도로 옆에 밭이 있고 그 앞바다 쪽으로 소나무들이 서 있다.

‘아~ 이곳에는 제발 풀빌라가 생기지 말기를…….’

곧이어 ‘호미곶 해국자생지’라는 푯말이 나왔다. 해국 덕분에 해송도 땅도 지켜졌던 것이다.

거기서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갔다.


지켜야 할 땅


시커먼 바위 위로 하얀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겨울 바다가 펼쳐졌다. 이제까지의 바다와는 다른 느낌으로 야성이 깨어나는 듯했다. 무차별적으로 무지하게 개발되지 않은 도로를 걷다 보니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엔 인지하지 못하다가 가만 들어보니 이 노래였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축배를 올리세.”


가끔 나도 모르는 말과 행동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건 무의식 어디쯤에서 풀려나온 실마리겠지. 그런데 그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는 게 아니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가사를 들어보니 작별 노래가 아니라 다시 만날 노래였다.


야성을 깨우는 겨울바다


12시 반이 넘어가고 대보 1리였다.

그 추운 바닷가에서 황토색 개 한 마리가 짖었다. 인사하고 지나가는데도 계속 짖는다. 가다 말고 멈췄다. 가까이 가보려 했더니 더 짖는다. 꼬리를 아래로 착 감은 게 겁을 먹은 듯 보였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를 것 같았다. 배낭에 먹을 건 과자와 귤뿐. 당분 많은 과자는 개에게 좋지 않지만 개 간식을 갖고 다니진 않으니까. 마지막 과자 버터와플과 귤 한 개를 먹기 좋게 까서 던져 주었다. 역시 먹었다. 굶주리고 있던 게 틀림없다. 목줄이 그물에 얽힌 듯했다. 하지만 내가 풀어 줄 순 없었다. 얼굴이 참 잘생긴 개였다. 내가 넓은 정원에서 살면 데려다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하지만 그 개 주인이 있기를. 버린 게 아니길. 그래서 데려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발 주인 만나기를!
혹시 몰라서, 개가 있던 지점 앞입니다


서둘러 걸었다.

12시 50분,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미곶’ 해돋이 광장에는 빨간 파카가 앉아있었다.

“영상~”


바다를 보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 날 쳐다본다. 그리고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온다.

“누님”


울산의 영상이었다. 울산 북콘서트가 끝난 날 밤에 전화해서 하루 함께 걷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이틀 지나서 연락 왔을 땐 이제 구룡포라 너무 멀어서 못 온다고 했는데도 사흘째 기어이 왔다.

오겠다는 사람에게 혼자 걸을 거니 오지 말라고 할 순 없었다. 만나서 물어보았다.

“안 와도 되는데 왜 왔어요?”

“제가 북콘서트에 갔으면 안 왔죠. 근데 그날 못 가서 미안해서 왔지요.”


작은 백 하나 크로스로 두르고 온 영상은 자연스럽게 내 배낭을 가져다 멨다.

그리고 내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오~ 사진 실력이 남달랐다.


오후 1시 반, 그날 묵기로 한 펜션 주인이 알려준 월녀의 해물포차에 들렀다. 해물 뚝배기와 해물 칼국수 둘 다 먹고 싶었다. 영상이 칼국수를 나눠주겠다고 해서 해물 뚝배기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영상은 부탁한 파스와 요즘 품귀 현상이라는 테라플루를 두 통이나 포장 제하고 주었다. 매일 밤 테라플루를 먹고 잔다는 내게 감기 바이러스엔 약이 없다고, 테라플루를 먹으면 페닐라민말레산염이 다른 감기약에 비해 10배가 더 많은 20mg이기 때문에 잠들기엔 좋다고 한다.

영상은 약사다. 나는 약을 받고 귤을 주었다.

그날 갈 펜션 주인도 추천한 해물 뚝배기엔 전복이 두어 개 있었다. 칼국수까지 먹으니 든든했다.


오후 2시 5분 출발.

자전거 길이 굽이굽이 길어 직선거리로 나왔더니 독수리 바위는 못 보고 통과했다.

호미곶은 면민이 작사한 ‘호미곶 내 고향’이란 면가도 있었다. ‘한흑구 문학관’이 있는 구만리를 지나 해변 길이 아닌 도로를 따라가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저만치 굴이 있는데 잘못 온 것 같았다. 영상이 지도 앱을 보더니 맞다고 한다. 짧은 터널이었다. 길치인 나 혼자였으면 무서워서 당황했을 길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오르막길이었다. 영상이 ‘업힐’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전거 동아리를 만들어서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

업힐 다음에는 다운힐.


걷다가 영상은 이렇게 좋은 길을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 느낌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맞다. 천천히 따박따박 걸어가야 보이는 풍경이 따로 있다. 그 기쁨을 아는 사람만이 걷는다. 일단 그 맛을 알면 또 걸을 수밖에 없다.


오후 3시, 몽돌 소리 자글자글한 해변에 잠시 앉아 소리를 감상했다. 걸을 때도 쉴 때도 영상은 뚝 떨어져 있는다. 바람직한 거리다.


오후 3시 반쯤 대동배 1리 마을에 들어서는데 군복 같은 옷을 단체로 입은 분들이 기다란 망원 렌즈로 새를 찍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제주도 성산 일출봉 근처에서 보았던 철새 흰뺨검둥오리였다.


흰뺨검둥오리


오후 4시쯤 虎尾(호미) 사랑숲에서 잠시 쉬었다.

동해면 발산1리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 군락을 지나갔지만 헐벗은 겨울이라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장군바위를 지나 말목장성 비에는 오후 햇빛이 진하게 드리워 있었다. 발산교회 부근에서 길을 약간 헤맸다. 그러나 곧 지름길을 찾았다.


오후 5시 4분, 숙소인 ‘더 클래식 레드’ 도착. 그 동네는 숙박 시설이 많지 않아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 두었다.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곳이라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근처에 식당이 거의 없어 저녁 식사가 곤란했다.


영상과 함께 5시 20분 마을버스를 타고 도구 해수욕장 근처로 나갔다.


20분 후에 ‘영일 가마솥 곰탕’ 집에서 설렁탕을 먹었다. 영상의 차는 그 근처에 있었다. 영상은 그곳에 주차하고 9000번 버스를 타고 호미곶으로 온 것이었다. 숙소로 가려고 영상의 차에 올랐다가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위해서 편의점에 들렀다. 떡국과 초코바와 단백질 바는 나를 위해, 초콜릿 과자 세트는 영상의 아이들을 위해 골랐다.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계산하려는데 카드 쥔 손이 쑥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영상이 어느새 차에서 내려 내 뒤에 있던 거였다.

“세 끼는 사야죠.”

그렇게 약국 휴가 내고 온 영상은 함께 걷고 점심, 저녁, 아침밥까지 사주었다.


돌아오는 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모든 게 가득가득할 것만 같은 환한 밝기였다. 아~ 그래서 낮에 해안도로가 만조로 금세 막혔나 보다. 그래서 도로 옆으로 걸어야 했던 것이고. 음력 그믐달 보름 달빛 아래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꼬불꼬불 협로였다. 게다가 인도도 없었다. 저절로 한탄이 나왔다.

“아~ 내일 걷기 싫다.”

7km 정도 되는 그 위험한 찻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다.


오후 6시 반쯤 영상은 숙소 앞에 나를 내려주고 갔다. 영상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잠시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바다 건너편엔 수평선처럼 포항 공단의 불빛이 가득했다. 호미곶에서부터 여기까지는 육지에 막혀 수평선이 없다. 호랑이 꼬리 호미라서.


6시 40분, 방문을 열었다. 편백 향이 확 나는 연두색 방. 옷을 벗어보니 검정 옷에 소금기가 하얗게 얼룩져 있다. 주인이 보일러를 미리 틀어 놓았지만, 온도 상 옷을 빨면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추운 욕실에서 속옷과 양말과 버프는 빨아야 했다.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듯, 1인용 침대 둘을 보니 얇은 여름 이불이 놓여있다. 집에서는 병아리색 극세사 잠옷에 아이보리 수면 양말을 신고 난방 텐트 안에 들어가 탄소 매트 틀고 자는데 한겨울에 한 겹 옷에 맨발이라니. 좁지만 8만 원의 숙박비 값을 한다 싶었다.


관지의 안부 전화가 왔다.

통화 후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13:12 '금일 고객님 상품이 배송예정입니다.'

설마다 잊지 않고 보내주는 영동 곶감일 듯. 월요일에 전화가 와서 주소가 계속 바뀌어서 이번엔 어디냐고 확인차 물었다. 순간 곶감 좋아하는 친구네로 보낼까 망설였다. 몇 해째 똑같은 고민을 하지만 번번이 내 집으로 배송한다. 과도한 친절은 상대를 부담스럽게 할 뿐이라 참고 만다. 나 없는 집 앞에 곶감이 와 있겠구나. 냉동 보관해야 하는데 며칠을 한 데 있겠구나. 먼저 간 내 배낭과 함께.

이메일이 와 있어 확인해 보았더니 겨울학기 성적처리 안내문이었다. 중남미에 갔으면 성적처리도 못 할 뻔했다.


혼자 고독하게 걸으려 했던 이번 도보순례 계획은 영상의 깜짝 출현으로 어긋났다. 하지만 해파랑길 지도상 두 코스를 수월하게 하루에 걸었고 밥도 잘 먹었다. 그리고 더한 수확이 있었다.

올 8월 25일 나아리 월성원전이주대책위원회 10주년 깜짝 기획이었다.


홀로 고독한 순례자가 되려던 나는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혼자 12km, 호미곶에서 흥환 1리까지 둘이 12km, 도합 24km를 걸었다. 그리고 테라플루를 먹지 않고 잠들었다.


호미곶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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