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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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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Feb 26. 2024

thanks to sold out

품절에 감사합니다


작년 말에 세운 올해 소망 중 하나는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

정착지도 아닌데 육중한 피아노를 들여놓을 순 없으니 아쉬운 대로 디지털피아노를 주문했습니다.

다음 날 전화가 왔습니다.

화이트 색상이 인기 상품이라 품절되었다고.

고르고 고른 거라 다른 상품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입고되면 주문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아쉬운 마음에 기타를 주문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 또 전화가 왔습니다.

주문한 제품이 단종되었다고.


지난주의 일이었습니다.



어젯밤에는 자전거 의류 속옷과 상의를 주문했습니다.

지난 1월 도보순례 때 영하 10도 한파에도 땀 때문에 두 겹씩 흠뻑 젖는 내의 때문에 고생했기에 스포츠 의류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거든요.

오늘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주문한 약기모저지 버터크림색상이 품절되었다고.

올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순례 때 입으려고 주문한 노란 색상이었습니다.

주문했던 상품을 전부 취소하고 계좌이체했던 금액을 전액 환불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원하던 물건을 못 사게 되었는데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실 물건을 고르고 주문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남을 위한 건 턱턱 잘 사도, 자신을 위한 건 사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여러 날 많은 시간을 고심하다 마침내 결정하고 구매하기까지는 에너지 소모가 정말 많습니다.  

주문했다 취소한 적도 여러번입니다. 하지만 세일 상품이라 괜찮은 제품은 금세 재고가 소진되는 게 결정적으로 소비를 충동합니다.

현금 결제하는 순간 잔고는 줄어들고, 망설임이 끝나 속시원하지만, 보지 않고 사는 물건일수록 그 물건이 내게 오면 정말 마음에 들지 안 들지도 의문이고, 그것과 익숙해지기까지도 시간이 걸립니다.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피곤했을 겁니다.   


원하는 걸 막상 못 얻게 되면 그것이 정말 필요한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있으면 조금 편리하고 없으면 다소 불편할 뿐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땀에 펑 젖은 옷을 입고 입김에 푹 젖은 버프를 하고 손 시려운 얇은 장갑에 딱딱한 스틱을 짚고도 한겨울에 7번 국도를 완주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조금만 스포츠용품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준비성이 있었다면 그런 고생은 안 했겠지만요.


괜찮습니다.

없어도 삽니다. (buy가 아닌 live^^)

이런 일이 반복되니 아직 소비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움실천은 어디로 갔을까요?

조금 해이해졌을 때 경각심을 갖게 해 주는 제 안목(고르는 족족 품절인)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전화로 안내해 주고 즉시 환불해 주는 업체들에도 고맙습니다.




* 사진은 지난 겨울, 입장 불가였던 눈 쌓인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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